하고싶은말

친구(1986년옥순언니가좋다며보내온글)

최흔용 2008. 8. 7.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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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 마시고 싶다고 말 할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겟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는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아도 말이 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 수록 영원을 꿈꾸고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수 있으면 된다.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도 쳐 주고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이 한두사람과 끊어 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 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나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잘수록  많은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것은 별로 없다.   만약에 내가 한두곳 한두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 두고 되새길 자산이 되었을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닥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마음을  지울줄도 알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 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것이다.     

   우리는 힌눈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 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 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느끼려  애 쓸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위해  비록 진실 일지라도  타인을 팔지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수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로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를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때  나를 찾을 것이다.  나는 때론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 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는  웃음도 만들어 낼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것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마실때는 백작부인처럼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스러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묶음 꽃을사서  그에게 안겨 줘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데도  차길을  건너도 나의 모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사이에 고추가루가  끼었더라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사력이 어두워 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리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서기 1986년 7월 10일  "선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