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뒤 끝에는 언제나 수습할 일거리가 산더미인지라...
어찌 잠시의 짬도 없이 일주일의 반이 지나버렸다.
덕분에 포스팅 시기가 좀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지나칠 수는 없지.
성균관 스캔들 9화와 10화는 역시 예상대로 금상의 순두전강이 중심이었다.
또한, 순두전강의 내용이 하도 흥미진진하여,
분명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이지만) 한국 드라마인데
왠지 미드의 무겁지도 심각하지도 않은 추리물이나 수사물을 보는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좀도둑으로 시작하여 장물의 거래, 난전 상인과 시전 상인의 대립, 자금의 흐름,
정경유착, 부귀의 축적과 세력 강화의 역학 관계, 그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
그리고 어째서 좀도둑이 물건을 훔칠 수 밖에 없는 지경이었는지 그 상황을 밝혀냄과 귀결 도출까지,
잘금 4인방이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며 수사하고 깨달아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도 그들과 함께 뛰고 함께 느끼고 깨닫는 기분이 들면서, 아, 저들 같은 이들이 관리가 된다면
그래도 백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위안이 되겠구나... 싶어 드라마 속이 내심 부러워지기도 했다.
이제 이선준이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시전 상인과 노론의 뇌물 수수 명단이 담긴 비밀 장부를 들고 금상 앞에 섰다.
아비를 발고하는 패륜을 택하는 대신 정의와 법도와 도리를 따르는 참으로 괴로운 상황이 아닐 수 없겠다.
아마도 임금님은 이 점을 높이 사, 이선준을 금등지사 찾기의 선봉장으로 임명하고,
자나깨나 노론 쳐부술 궁리만 하는 문재신을 비롯해, 재미라면 사족을 못쓰는 구용하,
그리고 문재신의 형과 같은 이유로 아비를 잃은 김윤식과 함께 찾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
10화가 끝났으니, 이제 드라마의 절반까지 왔다. (벌써!!)
절반이 오는 동안 차츰차츰 드러나던 인물들의 특성이 확연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특성들을 한 번 정리해 보았다.
1. 여림 구용하 : "왜 이래~ 나 구용하야~~" (송중기 분)
걸음마를 떼고부터 기방을 드나들던 여색지존 구용하. 여인에 대해서라면 빠삭하게 꿰다 못해 지루함마저 느낀다.
어지간히 있는 집 자제라는 건 알았지만 상권이 발달한 운종가에서 큰 상인들에게 가게 세를 받는 갑부의 아들일줄이야.
세상물정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일찌기 깨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눈치 빠르고, 상황 판단 빠르고, 임기응변과 위기 대처 능력 훌륭하고, 눈썰미 좋고, 언변은 청산 유수에, 유들유들하고,
계산속도 있고, 천진한 구석도 있고, 그것도 모자라 용모와 패션 감각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그래, 인정!! 너 구용하다!! 잘 났다, 임마!!)
그러나 출세에는 뜻이 없고, 어딘가 모르게 꼬인 구석도 있으며, 내키지 않거나 귀찮은 일은 피하려 하는 반면,
재미있는 꺼리가 있으면 얼마가 들든 어디가 됐든 무엇이 됐든 쫓아가는 흥미 본위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불의나 비열함에는 반감을 여과없이 표시하는, 그리고 제대로 열심히 하려는 이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자기가 멋지다는 걸 마구 티내는 멋진 녀석이다.
아마 역할로 따지자면 참모나 지략가 쯤 될 것 같다. 아이디어를 내고 상황을 정리하고 브리핑하고 향후의 방향 제시.
그리고 색으로 비유하자면 아무래도 자색(紫色), 그것도 화려하고 밝은 자색이 맞을 것 같다.
입고 다니는 복장의 색들도 자색 계통이 많은데, 자색이 어울리는 사람은 흔치 않기도 하거니와,
그 색은 신비로움이나 고상함 등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여 여림 구용하에게는 딱인듯 싶다.
또한, 자색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간적인 색채인데, 용하 역시 그렇게 어중간하게,
어떤 상황에서도 어지간하면 당황하지 않고 이성을 잃지 않아 차갑고 냉정하다 싶다가도
막상 마음으로 신뢰하는 상대에게는 헌신하는 태도를 보여주니 더욱 어울리는 느낌이다.
2. 걸오 문재신 : "그거 하지 마라. 자꾸하면 습관 된다." (유아인 분)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따르던 형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형을 그렇게 만든 노론 세력에 크게 반발하는 한 편,
그 상황을 묵과하고 침묵하여 안위를 지키는 아비에게 크나큰 실망감과 배신감과 회의를 느껴 아웃사이더가 된 녀석.
10년지기 친구라면서 구용하와는 상반되게 계집만 곁에 있으면 긴장하여 본능적으로 딸꾹질을 한다.
하긴, 너무 달라서 절친이 된 것일까. 서로에게 없는 부분만을 가지고 있다보니 서로를 채우려 더 가까워진 건지도.
말 수가 적고, 말 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상황 판단 보다는 눈이 먼저 뒤집히고, 당황하면 감추지 못하며, 계산속도 없고,
생각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언변도 부족하고, 게다가 융통성마저 부족하며, 차림새는 거칠고 단정치 못하다.
어느 것 하나 용하와 닮은 구석이 없는데도 참으로 신기하게 둘이 친구라니...
그래도 생김새는 빠지지 않는다. ㅎㅎ 순진하고 귀여운 구석도 있고 화 낼때만 아니면 꽤 상냥하기도 하다.
관계에 서툴고, 아니 관계에 관심이 없었는데, 구용하는 오랜 친구고, 김윤식과 이선준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출세는 애시당초 마음을 접고, 반항아 기질로 홍벽서가 되어 도성을 휘저으며,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를 원하고,
선준의 말마따나 의를 행함에 있어 한치의 주저함도 없어 장의 하인수와 대놓고 맞장을 뜨기도 한다.
윤식이 여자라는 걸 알고, 윤식의 아비 일을 알게 되면서 윤식의 성균관 입학 이유를 부풀려 오해하기도 하지만,
쨌든 여린 체구로 불행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씩씩한 윤식에게 더욱 애틋한 마음과 함께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역할로 보자면 행동대장 격이다. 지략가가 작전을 내 놓으면 곧바로 뛰쳐나가 적을 교란하는 선봉대,
혹은 본격적인 일을 하는데 앞서 토대를 닦기 위한 파일롯 선행자이다. 시범조교라 해도 좋을 것이다.
색으로 보자면 붉은 적색(赤色), 그것도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암적색일 것 같다.
입고다니는 옷들의 색이 아웃사이더 답게 모다 칙칙한데, 대사례때 유달리 암적색의 복장을 했던 것이 잘 어울렸다.
아마도 상처에 밴 핏자국을 감추기 위함이었을텐데, 그 목적과 더불어
암적색의 느낌은 이글거리는 불꽃같은 성미지만 천방지축하지 않는 진중함과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표현하는 듯 하다.
"자꾸하면 습관된다"는 형의 말을 되새기면서 그 말이 습관이 되어버린 재신은
활활 타올라버리지 않고 자신을 다잡는다.
3. 가랑 이선준 : "내 원칙과 법도를 따를 뿐이오." (박유천 분)
조선시대 엄친아의 전형적 표본이다. 글 읽고 무예를 닦아 학업에 정진하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만 할 줄 아는,
여색이나 놀이와는 거리가 한참, 백만광년 쯤 떨어진,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기는 문재신을 훨씬 능가하는 답답서생이다.
얼굴도 반반하고, 집안 빵빵하고, 남 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 본인 능력도 좋고 주변의 신망도 두터우니
유아독존 소리 듣는 것도 당연. 법도와 예를 중시하고, 주관이 뚜렷하여 한 번 뜻한 바는 절대 고집을 꺾지 않으며,
이루고자 마음 먹으면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의지 관철에, 자존심은 하늘을 찔러 항상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삶이 활기 있거나 재미있지는 않았을 터. 뻣뻣하고 까칠하기가 이를 데 없어 친구도 없고 무미건조하며,
그저 아무 탈 없이 과거에 급제하여 정해진 출세 길을 밟아 적당히 혼사도 치르고 했을 터였는데,
어쩌다가 재주넘는 곰 윤식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왕서방이 된 선준은
윤식으로 인해 많은 생각과 생활의 변화를 겪게 되고, 자기만의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고,
점점 더 삶이 활기차고 재미있게 되어 유아독존에서 벗어나 윤식을 벗으로 두고 싶어하고 마음으로 그를 위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고지식하고 삼강오륜의 가치를 중히 여겨 조금이라도 무례하거나 어긋난 상황을 못참아하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니, 자기 세상에서는 전부 였으나 그 외의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노론의 자식임을 부끄러워하고,
자기의 품은 뜻과 자기가 처한 현실과의 괴리에 갈등하며, 그 동안 안정적이었던 정신적 기반이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특히나 임금님이 내세우고 있는 탕평의 뜻이 자신의 이상과 맞음에, 장의 하인수를 비롯한 노론 유생에 더하여
종국에는 아비를 등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니, 참으로 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타개해 나가리라.
예쁘게 차리고 화장한 윤식을 보고 적지않이 당황하여 심난해 하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재미나다. ㅎㅎ
역할로 보면 타고난 리더이다. 리더는 참모가 낸 의견들을 취합하고 행동대장이 마련한 토대 위에
가장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의사결정을 내린다. 말하자면 최종 결정자이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자이다.
색은 청색(靑色), 그것도 아주 짙고 맑은 빛깔의, 유생들의 청금단령 색이나 코발트 빛과도 같은 푸른 청색이 어울린다.
선비의 정신을 뜻하는 곧고 바름의 상징인 청빈(淸貧)과도, 충성과 기개를 뜻하는 푸르름과도 맥을 같이 한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장 옳다고, 의라고 생각되는 결정을 앞으로도 해 나갈 것이다.
4. 대물 김윤식 : "살아야 하니까. 사람답게 살고 싶으니까." (박민영 분)
실체는 여자다. 그것도 실제 김윤식의 친 누이, 김윤희이다. 몰락한 남인 가문의 어려운 생활에 글재주를 팔았다.
글을 팔아 쌀을 사는 것이 죄라면, 글을 팔아 관직을 사는 것은 죄가 아닌가라는, 당돌하고도 치부를 찌르는 문장에
선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사방팔방 자신을 찾아다니게 만들어 기어이 과장에 들여놓고 성균관 유생으로 만들어져
자의반 타의반으로 남자들 틈에 껴 고된, 한 편으로는 즐겁고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당찬 여인이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았다면 선준의 예정되었던 삶과 마찬가지로, 글은 취미 삼아 쓰고, 여인의 행실을 배우고 익혀
마땅한 집에 시집을 가서 큰 뜻을 품어볼 생각은 해 볼 기회도 없이 다른 여인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았을 터인데,
코가 꿰어도 단단히 이선준 같은 놈에게 꿰어 뜻도 품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되었다.
아직은 아비를 잃게 된 연유를 모르지만 곧 재신이나 임금님 혹은 정박사가 알려주게 될 것이라 보이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금등지사를 찾는 데 큰, 아마도 결정적인 공헌을 하리라 예상된다.
실체는 여인이지만 생활력이 강하고, 어디서도 기죽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배포도 크고, 담대하고, 그야말로 여장부에 어지간한 사내놈들보다 의젓하고 시원시원하니, 그야말로 대물감이다.
생존본능만큼 절실한 게 있을까. 살아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윤식은, 아니 윤희는 보통사람 몇배의 힘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곱고 여린 외모는 숨길 수가 없어, 대번 여림 용하의 관심을 받고, 재신의 딸꾹질을 유발하며,
이제는 나무토막 같던 선준마저도 호흡이 흐트러지고 손이 떨리도록 만들었다. 이쯤되면 초선도 무색해져 울 일이다.
하긴, 남장 차림도 그렇게 예쁘장했는데, 치장을 해 놓으니 완전히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여림이나 걸오는 좋은 사형들이지만 가랑에 대한 마음은 점점 여인이 사내를 대할 때의 심정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힘이 없어도 의가 아닌 것에는 굴하지 않고, 약하고 힘에 부쳐도 극복해 나가는 윤식으로 사는 윤희의 앞날을 응원한다.
역할은 집행자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리더가 최종적으로 내린 의사 결정을 따르고 잘 수행하고 결과를 낸다.
성실한 태도와 굳은 의지로 본격적으로 착수한 일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어 들이는 것이다.
색은 황색(黃色). 밝고 연한 봄 햇살같은 따뜻하고 아늑한 황색이 어울릴 듯 싶다.
모든 것을 감싸 안을 듯한 포근함, 포용력,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운을 전해주고 사람들은 그 곁에 있고 싶어진다.
그래서 윤식의 곁에는 사람들이 항상 둘러싸고 함께 웃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 보았는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그저 재미로 봐 주시면 좋겠다.
순두전강의 마무리는 어찌 될 것인지.
처음 물건을 훔쳤던 반촌 소년은 나타날 것인지, 장의 하인수는 또 어떤 수작을 꾸밀지,
그 장부를 펼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인지, 다음주를 기다려 본다.
이상 이스론의 두런두런 열네번째 마침. 2010. 0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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