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이해

[스크랩] 폴 세잔느

최흔용 2009. 4. 30. 16:05

 

 

 

 

 

 

세잔 (Paul Cézanne 1839∼1906)

프랑스 화가. 부슈뒤론주 엑상프로방스 출생. 근대 미술사상 거장의 한 사람이다. 소년시절부터 계속 E. 졸라와 교우관계가 있었다. 아버지의 희망으로 엑스의 법과대학에 진학하였으나, 화가가 될 결심을 하고 1861년 처음으로 파리에 갔다. 그 뒤 10년 동안은 초기에 해당되는데, 이 사이에 미술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일반 미술학원 아카데미스위스에 다니면서 C. 피사로와 J.B.A. 기요맹을 알게 되고, C. 모네·P.A. 르누아르와 어울렸다. 이 교우 가운데서 F.V.E. 들라크루아·G. 쿠르베·E. 마네 등 반관전적(反官展的)인 입장의 혁신적인 경향에 눈을 뜨고 무거운 분위기의 원숙한 정물화·초상화 등을 그렸다. 《검은 대리석의 탁상시계가 있는 정물》이 대표작이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과 파리코뮌의 동란기를 마르세유 근처 어촌에서 지낸 세잔은, 1871년 가을 피사로와의 교우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인상주의의 원칙을 배웠다.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 《교사자(絞死者)의 집》 등 3점, 1877년의 제3회전에 《쇼케상(像)》 등 16점을 출품하고, 인상파 핵심인물의 한 사람이 되었다. 초기작품에 비해 화면은 더 작고 밝아졌으며, 필촉(筆觸)도 섬세하면서 신중하고, 때로는 정성을 들인 색조분할(色調分割)도 이루어졌다. 문학적인 주제에 대신하여 수욕도(水浴圖)가 등장한 것, 시각이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으로 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그 뒤 세잔은 인상파전에 참가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는 2번의 출품에 대한 세평이 좋지 않았고, 살롱응모에 관하여 인상파 내부에서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880년 무렵부터 자화상과 부인상이 많아졌다. 수욕도도 남녀를 다른 구도로 계속 그렸고, 《푸른 꽃병》으로 대표되는 정물화도 색채의 아름다움, 마티에르의 변화, 구도상의 연구 등으로 주목할 만하다. 《에스타크의 바다》 《소나무가 있는 생트빅투아르산》 등의 연작도 남프랑스의 밝고 여유 있는 큰 공간을 평면성과 공간감을 잘 그려 파악한 작품들이다. 1890년부터 수년 사이에 《붉은 조끼의 소년》과 《트럼프를 하는 사람들》 등의 연작, 《온실의 세잔부인》 등의 걸작을 잇따라 그렸다. 1895년말 파리에서 가진 세잔전은 그 무렵의 젊은 화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인상파이면서도 훨씬 지적이고 신선한 야성미가 넘치는 세잔예술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세잔은 수채화를 많이 그리게 되었고, 제작의 간편함과 색채의 투명감 탓으로 수채화 기법이 유화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림물감은 엷게 칠해져 엷은 물감의 층이 복잡하게 겹쳐져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컷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유화나 수채화에서 칠하고 남은 여백이 많아졌는데, 그 여백조차 일종의 표현력을 지니고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 말년의 작품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이 기법은, 사물의 형태를 복수의 시점에서 보는 구도상의 연구와 어우러져, 입체파와 추상미술 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미술은 V. 고호·P. 고갱·G. 쇠라뿐 아니라 세잔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01년 엑스 교외에 아틀리에를 세우고, 1906년 10월 15일 교외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뇌우로 졸도, 22일 사망하였다.

연표
AD 1839 남프랑스의 엑스앙프로방스에서 부유한 모자상인의 가정에서 장남으로 출생
1852 엑스의 중학교에 입학. 이곳에서 E.졸라와 알게 되었다.
1858 대학입학자격을 얻고, 엑스의 법과대학에 입학. 뒤에 중퇴
1861 화가가 되기 위해 처음으로 파리로 가다. 아카데미스위스에 다니다. 이곳에서 C.피사로·J.B.A.기요맹과 어울리고 그 뒤 파리와 엑스에서 생활하다.
1869 거의 파리에서 지내고 뒤에 아내가 된 오르탕스 피스케와 만나다. 《검은 대리석의 탁상시계가 있는 정물(~70)》
1873 피사로 등과 제작. 인상주의를 배우다. 《교사자의 집》
1874 제1회 인상파전에 출품
1875 《쇼케상》
1876 《에스타크의 바다》제작, 차츰 인상주의적 경향이 심화되다.
1877 제3회 인상파전에 출품하였으나, 평이 나빠 그 뒤 불참
1882 살롱에 첫 입선
1883 그 뒤 주로 에스타크에서 제작. 《푸른 꽃병(~87)》
1885 《소나무가 있는 생트빅투아르산》의 연작에 착수
1886 졸라의 소설 《제작》이 발표된 후 졸라와의 교제가 끊어짐. 오스탕스 피스케와 정식으로 결혼. 부친 사망, 막대한 유산 상속
1890 《붉은 조끼의 소년(~95)》
1891 《트럼프를 하는 사람들》연작에 착수
1895 첫 개인전 개최. 호평을 얻다.
1898 《대수욕도(大水浴圖, ~1906)》
1899 앵데팡당전에 첫 출품, 명성이 급속도로 높아지다.
1905 살롱 도톤에 《대수욕도》외 10점을 출품, 논의의 대상이 되다.
1906 교외에서 작업중 뇌우를 만나 폐렴에 걸려 사망
출처 : │▒▒▶ 그림을 배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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