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나,
3년전, 여름 나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반 고흐가 삶을 마감했던 오베르(Auvers)라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30킬로미터쯤 떨어진 이 작은 마을에서 고흐는 권총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놀랍도록 예민한 그의 영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삶이었더고 그래서 그는 쉬고 싶었다고, 내가 대신
변명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상처 투성이의 그의 아픔을 전혀 기억할 수 없거나 혹은 까마득히 잊고 싶었는지, 오베르의 거리는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그가 오베르에 와서 그린 그림들 속에는 사랑의 관계가 이미 깨어진 것 같은 절망의 그림자와
불안의 극치가 배어 있으며, 혼자뿐일 것 같다는 두려움이 넘쳐 흐릅니다.
아무리 그려도 원하는 그림이 되지 않았을 때의 자책감 또한 그에게는 무서운 공포였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곳에서 그는 70여일을 매일같이 그림만 그리다가, 미친듯이 그림만 그리다가, 어느 무더운 한 여름날에 혼자 떠났습니다. 슬픔의 깊은 늪에 빠진 동생 테오도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다가 얼마 뒤에 형을 쫓아갔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너무나도 존재 의미가 컸으므로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고흐가 자기 내면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대상이었으며, 경제적으로도 무작정 의지했던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부였던 동생 테오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축복해주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이 그의 두 어깨를 짓누르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동생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하다가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어쩌면 마음 놓고 사랑했던 동생에게만은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미리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자기의 가족뿐만 아니라 고흐의 현실까지 책임져야 했던 동생의 아픔은 무엇으로도 세상에 남겨져 있지 않지만, 나는 그저 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형을 사랑했던 그의 충격과 죄의식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생각하면 가슴속으로부터 눈물이 흐릅니다.
오배르마을의 신록은 새로운 생명이 느껴지는 신비의 연두빛으로 가득했습니다. 고흐가 그토록 찾던 순수의 노란색이 보일 듯 말 듯 자꾸만 어른거려서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초록의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여름의 햇살은 무척이나 눈부셨지만, 눈 감으면 무언가 "어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숲의 상처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보이는 것인가."
나도 모르게 '마종기'님의 (상처 2)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공동묘지 뒤쪽으로 난 나즈막한 언덕길 끝으로는 돌담장이 병풍처럼 둘려져 있어 조용하면서도 무척이나 아득했습니다. 그곳에는 빈센트 반 고흐와 동생 테오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두 개의 무덤이 있습니다.
동생 테오가 죽은 다음에 테오의 부인이 형 고흐의 무덤 옆에 테오를 눕혔다고 합니다.
단순한 비석뿐 아무런 장식이 없는 형제의 무덤은 , 아니 그들의 상처는 아이비 잎으로 풍성하게 덮여져 있었습니다. 담장 너머로는 반 고흐가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이 그가 누워 있는 무덤의 황량한 배경이 되어
멀리 보였습니다.
그 빈 들판 위로 바람이 불고, 세상의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상처 2 /마종기
오래 먼 숲 헤쳐온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낸다.
산다는 것은 책임이라구,
바람이라구, 끝이 안 보이는 여정,
그래, 그래 이제 알아들을 것 같다.
갑자기 다가서는 바람의 허리.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고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알지?
겨울밤 언 강의 어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숲의 상처들.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보이는 것인가,
지워버릴 수 없는 그해의 뜨거운 손
수분을 다 빼앗긴 눈밭의 시야,
부정의 단단한 껍질이 된 우리 변명은
잠 속에서 밤새 내리는 눈 먼 폭설처럼
흐느끼며 피 흘리며 쌓이고 있다.
글 둘,
오베르 슈와즈 가는 길 안내
파리 북역에서 기차를 탑니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아멜리아가 사진을 줍는 그 역)
이곳에서 Mery역에 사는 표를 끊고 파리 국철인 SNCF를 탑니다.
(유레일 패스를 보여주면 공짜로 끊어줍니다)
오베르 슈와즈역으로 바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도중에 갈아타야 되기 때문에
그냥 메리 슈와즈역에 내려서 고흐마을로 유명한 오베르 슈와즈까지 걸어갔습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됩니다)북역에서 메리역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더군요
오베르 슈와즈... 이곳은 대강 이런 느낌입니다.
사진처럼 한가하고
넉넉하고
아담하고
예쁜 마을
역에서 내리면 정말 조그마한 마을이구나, 싶을 정도로 여유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메리역에서 Loise강을 건너서 쭉~직진해서 오면 오베르의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고흐의 그림 속 바로, 그 오베르의 교회지요
사진 속에 정면에 있는 건물이 바로 오베르의 교회인데 아래 쪽에 반 고흐 동상이 있습니다.
교회 오른편으로 좀 더 내려가면 반 고흐 동상이 있습니다.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아주 작고 조용한 공원인데, 입구도 따로 표시를 안해놔서 처음엔
이 곳이 공원인가? 싶더군요
오른 편에 있는 동상이 캔버스를 등에 지고 있는 고흐동상입니다.
운좋게도 이 곳에 왔을 때 파리 도서관에서 일하는 여자분께 길을 물어봤더니
묵묵히 가이드를 해주시더군요,
(이 곳이 고흐 공원이다 저 곳이 드비니 미술관이다 등등...)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신의 보스도 한국인이다~
자기는 고흐를 너무 좋아해서 이 곳에 자주 온다~
뭐 대강 이런 대화를 나누고 조용한 이 고흐 마을을 함께 했죠.
공원에서 조금 더 오른편으로 내려오면 반 고흐가 죽기전까지 묵었던 라부씨 여관이 나옵니다.
반 고흐의 방으로 유명하죠
막상 그 집 앞에 가보면 생각보다 초라한 그의 거처에 웬지 숙연함이 느껴집니다.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 이곳을 일본인이 개인적으로 많은 돈을 투자해서 고흐가 살아 생전에 있었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놨다고 하는데, 일본인들의 문화사랑은 뭐랄까.....
그냥 사랑의 단계를 넘어서 투자 수준이랄까 ㅜㅜ;
마을 곳곳을 둘러보면 고흐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과 안내책자가 일본어로 써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런 게 국력의 차이일까, 쉽더군요
참고로 고흐집 옆길로 들어가면 드비니 미술관과 드비니의 아뜨리에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 위의 사진처럼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가 판넬로 제작되어
그림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 뒤편으로 보이는 그림 속 한 장면...
오베르 슈와즈에 온 걸 참 잘했구나...싶더군요
시간이 남았다면 1번부터 일일히 찾아 보겠지만 숙소를 파리에 잡아 놓은터라.......
이곳은 고흐의 그림 中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위의 사진과 그림을 비교해서 보세요)
사진에 나오지 않았지만 드넓은 밀밭에 정말로 까마귀들이 무리지어 날아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바라 본 노을의 장관이란........
밀밭 뒤편 건물은 바로 고흐가 묻혀있는 공동묘지 입니다
"흐음... 이곳에 고흐의 무덤이 있는 건가?"
참고로 고흐의 무덤은 두 군데에 있습니다.
바로 이곳, 고흐가 삶을 마감했던 오베르 슈와즈,
그리고 동생 테오와 고흐의 출생지인 네델란드인데 오베르 슈와즈가 더욱 알려진 것은
고흐가 삶을 마감했던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 넓고 수 많은 화려한 묘비 중에 고흐의 무덤은 동생 테오의 무덤과 함께
이렇게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가져다 놓은 해바라기와 밀 한묶음,
여행 중에 봤던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오베르 슈와즈에서 참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마을 사람들이 너무도 친절하다는 것입니다.
길을 물으면 하나같이 사람좋은 미소를 날리면서 서로 가르쳐주겠다면서 나선다거나
고맙다고 인사하면 손 흔들어주며 잘가라고 인사해 주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찾아가는 곳이 몇시에 문을 닫는지.. 뭐 이런 것 까지,
일일히 가르쳐주더군요
길가면 자동차 타신 분들이 손을 흔들면서 지나가고, 인심좋은 시골사람들을
보는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노을지는 하늘을 등지고 다시 메리역으로 갔습니다.
9시가 넘은 시간인데 메리역은 문을 닫았더군요
(그렇지만 옆문으로 입장은 가능합니다)
메리역은 표검사 하는 곳이 따로 없어서
나올 때도 표가 필요하고 들이갈 때도 표가 필요없지만
파리 북역은 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메리역 갈 때 표를 가지고 있다가
파리 북역으로 들어올 때 사용하면 됩니다
편법이겠지만.....
나는 표를 2개 받긴 했어요
메리역에서 북역 올 때 펀칭하는 곳을 몰라서 그냥 탔는데 나올 때 조금 난감하더군요
그래서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북역에서의 그 표를 사용해서 무사히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그리고 인상깊었던 오베르마을이 그리워집니다.
테오가 고흐에게 쓴 편지 中에서...
나는 지금까지 형을 지원하는 일을 그만둘까 생각했던 것이 한 두번이 아니야
하지만 형은 예술가야
그것도 아주 드문 재능을 가진 예술가...
그런 형을 모른척 한다는 것은 동생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돼
그러니까 나는 형을 계속 지원할 거야
언젠가 형은 반드시 후세에 남을 멋진 작품을 만들게 될티니까
예술가를 지원하지 않은 것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야
내가 형만큼 섬세하지 못하지만 이따금
형이 느끼는 감정에 나도 휩싸이면서 도저히 풀길없는 많은 생각을 하게 돼
용기를 잃지 마, 형
그리고 내가 얼마나 형을 그리워하는지 잊지 말길......
photo by edit cantabile 2008.7.11
http://planet.daum.net/choral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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