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세계

[스크랩] 무궁화

최흔용 2009. 7. 2. 18:55

 

무궁화 


오키나와에 여행 갔을 때 일이다. 호텔 주변 울타리에 무궁화를 빽빽이 심어 놓은 것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게 보였다. 처음에는 무궁화와 비슷한 꽃이겠지 하고 들여다보았다. 다섯 개의 아름다운 꽃잎, 수술이 굵은 모습을 보니 무궁화꽃임에 틀림없었다. 우리가 보던 것보다 더 붉고, 나뭇잎은 코팅한 것처럼 윤기가 흘렀다. 발육상태도 아주 좋았다. 주변에 이름 있는 관광지의 입구에도 무궁화로 울타리를 삼았으니 오키나와 사람들은 무궁화를 몹시 좋아하는 모양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무궁화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자료를 이곳저곳 뒤지면서 무궁화에 대한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시리아의 수리아 지방이다. 무궁화는 파미르 고원과 천산산맥을 거쳐 알타이산맥을 지나 한반도로 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앙아시아 도처에 무궁화가 산재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하늘을 공경하던 우리 민족은 밝은 광명(光明)의 세계를 유난히 좋아하여 해가 떠오르는 곳을 찾아 그 머나먼 여로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점과 관련지어 보면 무궁화의 이동경로도 우리 민족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이 분명하다.

무궁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금기󰡕에,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란 진술이다. 한반도를 근역(槿域)이라 부르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지 않을까. 4세기 중엽 한반도에는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무궁화꽃이 꽃숲을 이루었으리라. 그러기에 신라의 화랑도들이 무궁화꽃을 머리에 꽂고 다녔던 것이겠지. 그러면서 무궁화꽃처럼 깨끗한 마음을 지니려고 마음을 갈고닦고, 꽃심처럼 붉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붉은 피를 바치겠다고 맹세하였나 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바로 무궁화꽃 때문에 가능했었는지 모른다.

무궁화는 그 당시의 기록에서 보듯이 너 나 없는 마을 공동체 안길 골목길이나 집 울타리에 꽃을 피우는 관상용의 나무로 우리 민족과 함께 했다. 모든 꽃은 고작 한 보름쯤 피지만, 무궁화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3개월 내지 4개월이나 연속으로 핀다. 꽃이 곱고 고결해서, 사람들은 무궁화를 위인의 풍모라 찬미하였다. 예쁜 여인의 얼굴을 무궁화처럼 곱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혼례 때 활옷에 무궁화 수를 놓았다. 무궁화는 꽃의 수가 많아서 다산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중국의 전설은 무궁화를 더욱 사랑하게 한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정원에 핀 오상고절의 국화꽃을 보면서 말없이 상념에 잠겼다. 언뜻 큰 바람이 불어 닥치니 왕궁 정원엔 온통 국화꽃잎으로 수를 놓았다. 마침 부서지는 석양빛을 받아 꽃잎은 황금색으로 빛났다. 국화꽃은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내고 가을바람 서릿발 속에서도 꽃의 자태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생명을 다하여 소멸할 때에도 아름다운 자태로 남으니 그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뒤이을 자손들에게도 정원을 뒤덮은 국화꽃잎처럼 자신의 후광이 이어지기를 축원했다. 여왕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꿈속에서 여왕은 하늘의 명을 받고 서쪽 하늘나라의 꽃밭을 관리하고 있었다. 자신의 명에 따라 꽃들을 마음대로 피울 수도 있고 지게 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동지섣달에 모든 꽃이 피도록 명령했다.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니 정원이 매우 화사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피지 않는 꽃이 있었다. 하인에게 그 꽃이 무슨 꽃이냐 물었다. “동이족의 꽃인 무궁화입니다. 오로지 하늘의 명에 따라 끊임없이 피고 지는 무궁한 영화의 나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다. 다음날 어전 회의가 있어 고구려 정벌에 대하여 신하들과 의논하게 되었다. 여왕은 어젯밤 꿈이 생각나서 고구려 정벌에는 자신이 없었다. 선왕도 정벌에 실패했고 자신도 그 일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구려 정벌에 대한 야욕은 무궁화 앞에 손을 들고 말았다. 이처럼 무궁화는 우리 민족을 지켜주는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일제 강점기에서 일본인들은 무궁화가 불순한 사상을 퍼트리는 매개체가 된다고 여겼다. 불령선인이 민중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데에 사용한다 하였다. 수종이 튼튼하고 아름다운 무궁화를 다 없애 버리고, 못생기고 진드기가 많이 생기는 것만 남겨두었다. 사람들에게 눈병을 옮긴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은 신작로라는 식민지 지배에 필요한 물자 수송을 하는 대로를 많이 뽑으면서 일부러 그 주변에는 벚꽃을 심었다. 결국 무궁화 자리에 들어선 벚꽃은 군국주의 장식물로 허세를 부리게 된 것이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금도 벚꽃축제, 군항제로 벚꽃 잔치를 벌이며 야단법석이다. 벚꽃은 4~5월에 분홍색 또는 흰색의 꽃을 활짝 한 보름 정도 피우다가, 바람에 한꺼번에 마른눈처럼 떨어져 길바닥을 지저분하게 한다. 사람들은 ‘꽃은 피어서 열흘 붉지 않는다’ 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벚꽃을 보고 벚꽃처럼 짧고 화려하게 굵게 살아야 한다면서 좋지 않은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다.

샤론의 장미, 무궁화꽃.

사람들은 무궁화를 가나안 복지 중에서도 가장 기름진 샤론 평야에서 피는 꽃처럼 아름답다고 찬미한다. 한 빛깔로는 모자라 분홍 ․ 보라 ․ 자주 ․ 순백 등의 꽃잎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무더운 여름 더위에 하루 이틀 피기도 어려울 텐데 100여 일 동안이나 피었다 진다. 계절에 구애됨이 없이 계속 피는 꽃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추위에도 강하고 꽃이 피는 기간이 길어 관상용이나 울타리에 많이 심어왔다. 우리 민족성과 매우 닮았다. 무궁화는 해 뜨는 아침에 피었다가 해 지는 저녁에 지는 모습을 보면 광명한 세계를 소원하는 우리 민족의 평화로운 마음과 같다.

 어느 관청을 찾아갔을 때 일이다. 사무실 안에 일곱 송이 무궁화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화분이 보였다. 반가운 생각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대와는 달리 나무 잔가지 꼭지에 조화로 된 무궁화꽃을 꽂아 놓은 것이 아닌가. 무궁화는 병충해에 약하다는 잘못된 선입견이 우리를 꼴불견으로 만들고 있다.

무궁화 조형물은 공권력의 상징이다. 국회의원, 지방의원 배지 등을 보노라면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에게 무궁화에 대한 친밀감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국가 행정력을 동원해서 일반 국민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무궁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무궁화 숲을 조성하고, 무궁화 꽃 잔치를 열자. 벚꽃 잔치는 있는데 무궁화꽃 잔치가 없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이다. 홍콩의 국기에는 목련꽃이 도안으로 채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단체의 상징 깃발에도 무궁화꽃으로 소망을 담았으면 좋겠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국기와 국가에 대하여 친밀감을 갖게 되었던 것처럼 나라의 꽃인 무궁화를 더욱 사랑했으면 좋겠다. 400여 종류의 무궁화꽃을 볼 수 있도록 무궁화 식물원을 만들어 한국의 부활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무궁화를 잡고 빨려가는 빛

   내일도 꽃을 머리에 이는 화동

   해오름 동산에 꽃이 강물처럼 핀다.


   너 나 없는 마을 천리를 평화롭게 하는 꽃

   계절이 뛰어가도 사라지지 않는 미인의 얼굴

   하늘이 기르는 꽃

   하늘의 뜻을 받들어 피는 꽃




 

 

 

 

출처 : 현대문예제주작가회
글쓴이 : 세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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