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실사 /
융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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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은 융릉과 건릉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융릉은 정조의 아버지이자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와 부인 혜경궁홍씨가 함께 묻혀있는 곳이다. 본래 사도세자의 무덤은 양주 배봉산,지금의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었다가 정조가 수원성을 축조하면서 천하의 길지로 알려졌던 지금의 화산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융릉과 건릉은 모습이 거의 똑같다. 능입구에 홍살문이 서 있고 넓은 잔디묘역중간 왼쪽으로 약간 치우진 곳에 제사를 지내던 제실이 있다. 능은 제실 위 높은 언덕에 모셔져 있다.
능에는 상석과 망주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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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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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효행사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찰이다. 조선의 명왕으로 손꼽히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중창을 하고 왕궁의 원찰로 삼은 곳 이어서다. 단순히 왕의 원찰이라는 것보다도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기위해 정성을 드리던 곳이 바로 용주사였다. 수원화성과 융건릉 그리고 용주사는 정조가 새로운 정치를 펴기 위한 하나의 터전이자 비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용주사는 정조가 세운 절은 아니다. 실제적인 창건역사는 훨씬 앞선다. 용주사의 시작은 신라 문성왕때다. 갈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이 되어 내려오다가 병자호란때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융건릉으로 옮기면서 바로 옆에 있던 이 절을 다시 일으키고 원찰로 삼았던 것이다. 특히 억불정책을 단행하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용주사에는 곳곳에 정조의 효성어린 마음과 손길이 여태껏 남아있다. 정조의 아버지가 되는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28세의 나이로 창경궁에서 뒤주에 갇힌채 비명횡사 하게 된다. 이를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감동을 받아 먼저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천하제일의 길지라 하는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고, 곧이어 바로옆에 있던 갈양사를 중창해 용주사라 부르도록 했다. 또한 보경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게 된다.
이후 용주사는 안성과 남양등에 31본산 중 하나로 융성하게 되고 지금도 60여개의 말사와 암자를 거느린 절로 불교계에 큰 위치를 점하고 있다 관리사무소 T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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