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鄭敾, 1676-1759)
정선(鄭敾, 1676-1759)의 본관은 광산(光山:光州)이며,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 또는 난곡(蘭谷)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나 김창집의 권고로 도화서에 들어갔으며, 후에 양천(陽川)을 비롯 세 개의 현에서 현감을 지냈고, 또 종4품의 사도시첨정(司導寺僉正)을 지냈다. 화기법상으로는 전통적 수묵화법(水墨畵法)이나 채색화(彩色畵)의 맥을 이어받아 자기 나름대로의 필묵법(筆墨法)을 개발하였다. 실경산수를 대성시킨 화가로 한국회화사상 중요한 인물이다.
*동리채국도(東離採菊圖)·유연견남산도(悠然見南山圖)
도연명의 〈음주 飮酒〉 시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옛 선비들의 문인화에 대한 관념은 시와 그림은 표현의 방법은 달라도 그 뿌리가 같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시적 감흥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는가를 살펴본다.
*시화일체 사상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동양화의 시화일체사상(詩畵一體思想)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시화일체사상은 시와 그림은 그 기교는 달라도 화가가 붓을 먹물에 담그기 전에, 그리고 시인이 글을 쓰기 전에는 시인과 화가의 정서가 다를 바 없다는 사상이다.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郭熙)는 “그림은 소리 없는 시이고,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다(畵是無聲詩 詩是無形畵)”라고 했고, 소식(蘇軾)은 “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畵中有詩 詩中有畵)”고 했다. 이것은 모두 시화일체의 의미를 교묘하게 드러낸 말이다.
또, 고려말의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 翁稗說》에 이문순공(李文順公)이라는 사람이 〈노자도 鷺 圖〉를 두고 지은 시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림은 사람마다 간직하기 어렵지마는 시는 곳곳마다 펼 수 있다. 시를 볼 때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면, 그 시는 만고에 전할 수 있으리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시를 감상할 때 그림을 대하는 것 같아야 그 시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시와 그림은 그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강조해서 한 말이다.
또, 정조 때 사람으로 시와 그림을 다 잘했던 조희룡(趙熙龍)은 《석우망년록 石友忘年錄》에서,
“시화를 어찌 쉽게 구별할 수 있으랴, 그림으로써 시에 들어가는 것이 동일한 이치지만, 지금 사람들은 시를 안다고 해도 그림을 잘 모른다.”
라고 하면서 그림의 시적 정서와의 관련성을 강조하였다.
*도연명 문학의 영향
조선 시대의 문학은 당·송(唐宋)의 문학, 그것도 도연명(陶淵明)의 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도연명은 동진(東晋)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 불렀다. 그는 명리를 바라지 않고, 독서를 좋아하고, 술을 즐겨 마셨으며, 국화 심기를 즐겨 했다고 한다. 집안이 구차하여 한 때는 관직에 있었으나, 관리란 직책이 자신의 생리에 맞지 않아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은거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후세에 광범위하고 비상한 영향을 끼쳤는데, 당송의 시인 왕유· 맹호연(孟浩然)·소식·두보(杜甫) 등이 모두 도연명의 뒤를 따랐다. 조선 시대의 시가 문학은 당송의 영향을 받았고, 당송의 문학은 도연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자연스럽게 도연명의 시취(詩趣)에 빠져들곤 하였다.
*작품 내용 분석
현존하는 조선 시대 회화 작품 중에는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 더러 있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으로 정선(鄭敾)의 〈동리채국도 東籬採菊圖〉와 〈유연견남산도 悠然見南山圖〉가 있다. 두 폭 모두 선면(扇面)에 그린 것인데, 도연명의 〈음주 飮酒〉 시의 내용 일부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음주〉 시는 도연명의 대표적 시가로써, 전원 생활을 주제로 하여 현묘(玄妙)하고 유원(悠遠)한 은자(隱者)의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시의 내용은 이러하다.
오두막을 짓고 인경에 있으나,
(結廬在人境)
수레, 말소리 시끄러움 없도다.
(而無車馬喧)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나,
(問君何能爾)
뜻이 머니 사는 곳도 절로 아득하다.
(心遠地自偏)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採菊東籬下)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悠然見南山)
산 기운은 해가 지니 아름답고,
(山氣日夕佳)
날던 새들 짝지어 깃을 찾아드네.
(飛鳥相興還)
이 가운데 참뜻이 있거늘,
(此中有眞意)
하려 할 말을 잊도다.
(欲辨已忘言)
이 시 중에서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採菊東籬下)”
라는 부분을 주제로 삼은 것이 〈동리채국도〉이며,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悠然見南山)”
라는 시구를 취한 것이 〈유연견남산도〉이다.
말하자면 이 두 그림은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라는 내용을 두 폭의 화면에 나누어 가시화(可視化)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동리채국도〉를 살펴보자. 사립문이 열려 있는 동쪽 울타리[東籬]가 있고, 그 울타리 밑에는 도연명이 채국(採菊)했을 국화가 자라고 있다. 나무 그늘 밑 바위 위에 한 선비가 앉아 있는데, 그 옆에 방금 꺾은 국화 송이가 놓여 있다. 그리고, 〈유연견남산도〉에는 늙은 소나무가 서 있는 높직한 바위 위에 한 선비가 앉아 있고, 그 선비의 시선은 먼 산을 향해 있다. 이 장면은 말할 것도 없이 “유연한 마음으로 남산을 바라본다”는 시구의 내용을 시각화한 것이다.
*감상
그러나 도연명의 〈음주〉 시의 세계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이 그림이 단순한 인물 산수화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반대로 있다. 시의 내용을 알고, 도연명의 시적 정조(情操)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을 통해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말소리, 수레 소리 들리지 않는 은거지에서, 저녁에 날아드는 새, 해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인생의 참뜻을 터득하고자 했던 은일처사 도연명을 새삼 떠올리고, 그의 유현한 시적 세계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화일체의 세계이다.
*출처;디지털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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