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란도(不作蘭圖)
몇 개 안되는 난초 잎을 그린 그림이지만 거기에 깊은 뜻이 있다. 그 뜻을 화폭에 가득 화제(畵題)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데,
이 화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더불어 문인화에서 화제가 가지는 의미도 살펴본다
*김정희의 작품세계
김정희의 자는 원춘(元春)이요, 호는 추사(秋史), 또는 완당(阮堂)이다. 이밖에 김정희는 〈부작란도〉에 보이는 만향(曼香), 구경(謳竟), 선객노인(仙客老人)을 비롯해서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과월(果月), 과농(果農), 노천거사(老泉居士), 동국유생(東國儒生), 동이지인(東夷之人) 등 무려 200여 개의 다양한 호를 썼다.
추사는 서법으로 천하에 유명하고, 또 예법(隸法)으로 난을 그려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넘치는 그림을 그려 뭇 선비 화가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많지 않지만 난을 주로 하고 간혹 절지(折枝), 산수(山水)도 보이는데, 필세가 호방하고 가식이 없다.
*작품 분석
‘不作蘭花二十年…(부작란화이십년…)’이라는 화제의 ‘부작란(不作蘭)’을 인용하여 〈부작란도〉라고 이름 붙여진 이 그림은, 추사가 그린 〈세한도〉와 더불어 문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담묵의 몇 안되는 필선으로 한 포기의 난을 그렸는데, 잘 그리려고 애쓴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붓 가는 대로 맡겨진 필선이 난의 모습으로 변해 있을 뿐이다. 난 주위의 여백에 추사 특유의 강건 활달하고 서권기 넘치는 필체로 쓴 화제가 가득하여 그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예 작품인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처럼 그림에 문학적인 요소을 가미하는 형식은 이미 당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의 남종화적 그림들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그림은 그 속성상 일단 자연물의 외형적 묘사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한계성 때문에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심회나 사상을 명료하게 들어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래서 동양화에서는 시각적인 묘사만으로는 부족한 사상이나 심회의 표현을 위해 화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추사는 〈부작란도〉에서 난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자신의 심회를 화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화제 내용
지금부터 〈부작란도〉의 화제 내용을 중심으로 추사가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不作蘭花二十年 偶然寫出性中天 閉門覓覓尋尋處 此是維摩不二禪 若有
人强要爲口實 又當以毘耶 無言謝之 曼香”
(난 그림을 그리지 않은지 20년, 우연히 하늘의 본성을 그려냈구나. 문을 닫고 깊이 깊이 찾아 드니, 이 경지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不二禪)일세.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강요한다면 마땅히 비야리성(毘耶離城)에 살던 유마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이 사절하겠다. 만향)
이 화제를 통해서 우리는 추사가 자기의 난초 그림의 화의를 불이선(不二禪)에 견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불이(不二)’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유마힐소설경 維摩詰所說經》 제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 나온다. 특히 ‘불이’에 관한 문수보살과 유마거사 간의 문답은 승려가 아닌 선비들에게도 깊은 감동으로 받아들여졌던 대목이다. 유마가,
“절대 평등한 경지에 대해 어떻게 대립을 떠나야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라고 질문을 던졌다. 문수가 대답하기를,
“모든 것에 있어서 말도 없고, 설할 것도 없고, 나타낼 것도, 인식할 것도 없으니 일체의 문답을 떠나는 것이 절대 평등, 즉 불이(不二)의 경지에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문수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유마에게 물었다. 이 때 상황을 경(經)에서는,
“유마는 오직 침묵하여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고 기록하고 있다.
모든 행동이나 언어의 표현은 소위 신 위에서 가려움을 긁는 것과 같아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나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유마는 침묵으로 웅변했던 것이다. 이 유마의 침묵은 도가(道家)의 무(無)나 도(道)의 경지와 통한다. 추사는 그런 경지를 한 포기의 난을 그리며 생각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 쓴 화제이다.
“以草隸奇字之法爲之 世人那得知 那得好之也 謳竟 又題”
(초서와 예서, 기이(奇異)한 글자를 쓰는 법으로써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으며, 어찌 좋아할 수 있으랴. 구경이 또 쓰다)
초서, 예서, 그리고 흔히 쓰이지 않는 괴벽한 글자[벽자(僻字)]를 쓰는 법으로 난을 그렸으니 보통 사람들이 그 뜻을 어찌 알고 좋아하며 즐길 수 있겠는가를 묻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해 버리고 만다. 어쩌면 오만이라고도 볼 수 있을 이런 마음은 옛 선비들이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던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선비들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고답(高踏)을 추구하며 은일을 즐기는 것을 절의와 명분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그런 경지에 있는 자신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꼈던 것이다. 때로 이 자부심이 지나쳐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을 백안시하는 자만심을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 쓴 화제가 있다.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 仙客老人”
(처음에는 달준에게 주려고 그린 것이다. 다만 하나가 있을 뿐이지 둘은 있을 수 없다. 선객노인)
이 화제는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를 말하고, 하늘의 본성을 사출해 낸 득의 작은 하나가 있을 뿐이지 둘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只可有一 不可有二’를 난 그림은 하나이면 족하지 두 번 그릴 일이 아니다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앞의 화제의 내용에 나오는 유마의 불이선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도 있다.
불가(佛家)에서 ‘불이(不二)’를 말할 때 ‘불이’는 즉 ‘일(一)’로써 법성(法性) 또는 진여(眞如)를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불이’는 두 개가 대립하고 있으면서도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있으며, 그 조화 속에서도 대립의 양상은 없어지지 않는 절대 평등, 절대 조화의 개념이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화제가 있다.
“吳小山見而 豪奪可笑”
(오소산이 이 그림을 보고 얼른 빼앗아 가려 하는 것을 보니 우습도다)
그림의 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림만 탐내어 가져가려는 미련함에 웃음을 짓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림의 깊은 뜻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본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꼴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할 바엔 소산 스스로가 그 뜻을 터득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럴 것 같지도 않으면서 그림만 탐내어 빼앗아 가려고 하니 가소롭다는 것이다. 추사의 자부심과 자만심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다.
*감상과 평가
우리는 이상의 화제를 통하여 추사가 크지 않은 난 그림 한 장을 통해 ‘불이’나 ‘유마의 침묵’과 같은 경지를 말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감상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안다는 것과 직접 느낀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시화일체의 기본 정신은 시와 그림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거나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받쳐 주고 채워 주며 서로를 분명히 해주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작란도〉는 화제가 강조하는 내용에 비해 난 그림이 감상자에게 호소하는 힘이 약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점을 떠나서 보면 〈부작란도〉는 화면 전체에 서권기와 문자향이 충만되어 있고, 김정희의 선비다운 교양과 인품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문인화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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