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세계

[스크랩] 당신이 그리는 그림은 집오리입니다.

최흔용 2009. 7. 29. 13:49

◑ 당신이 그리는 그림은 집오리입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모든걸 통달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선생이라도 제자에게 배울점이 있는 법이고,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에게서 취할 것이 있는 법이다.

옛말에 ‘경당문노(耕當問奴)’라는 말이 있다. ‘경(耕)'은 ‘논밭을 갈다’라는 뜻인데, 그래서 경지(耕地)라고 하면 ‘갈아먹을 수 있는 땅’, 즉 ‘농사가 가능한 땅’이라는 뜻으로 쓰이며, 문노(問奴)는 종에게 묻는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를 정리하면 ‘경당문노(耕當問奴)'는 ‘농사를 지으려면 마땅히 종에게 물어야 한다’라는 말이 된다. 농사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는 농노(農奴)이다. 그가 비록 신분에 있어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농사(農事)에 관하여는 그가 전문가임으로 그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조금은 생소한 말이만 전문가풀제(專門家─制, expert pool system)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는 전문가를 활용하여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 인력은행제도를 말하는 데, 중소기업기술지도인력풀제 또는 기술인력풀제라고도 하며 간단히 인력풀제·인재풀제라고도 한다.

다시말하면, 중소기업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전문가를 활용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제도를 말하는 데, 이제 시대는 점점 세분화되어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홀대하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간에는 '국수장국 잘하던 솜씨가 수제비국 못 끓이랴'는 식으로 유능한 한 사람이 모든걸 독식하고, 독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통설이 깨어진지 이미 오래이다. 고기를 잡는 법은 어부에게 묻고, 기술은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묻고, 경제는 경제를 아는 사람에게 묻고, 정치는 정치를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옛말에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이 있는데, 손아랫사람이나 지위나 학식이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는 말로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는 배움의 태도를 일깨워주는 대목이 있다.

춘추(春秋)시기, 위(衛)나라 대부(大夫)였던 공어(孔圄)라는 사람이 있었는 데, 그는 매우 겸손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칭송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배움에 있어서는 신분고하를 따지지 않았으며 모르는 일이 있으면 불원천리(不遠千里)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 가 도움을 청하는 겸양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높게 평가하여 공어가 죽자, 위나라 군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호학(好學) 정신을 배우고 계승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문(文) 이라는 봉호(封號)를 하사하였다.

동시대 인물로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자공(子貢)은 왜 사람들이 공어(孔圄)를 높히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허술하기가 그지없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결점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필요 이상의 선대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이에 자공은 스승인 공자에게 공어의 시호(諡號)를 왜 문(文)이라고 해야되는 묻게 된다.

그러자 공자는 말하길 "그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敏而好學, 不恥下問). 그래서 그를 문(文)이라 하였던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불취하문(不恥下問: Not ashamed to ask of one's inferiors)인데, 흔히 하문불치(下問不恥)라고도 쓰이며, 이는 분발하여 학문을 함에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구하는 정신을 형용한 말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자격이 없으면서도 자신을 과대 포장하려는 사람은 큰 일을 할 수없는 법이다.

옛말에 '각곡유목(刻鵠類鶩)'이라는 말이 있다. 고니를 조각하다가 이루어내지 못하고 집오리가 되었다는 말인데, 높은 뜻을 갖고 어떤 일을 성취하려다가 중도에 그쳐 다른 사람의 조소를 받는 것을 말한다. 요즘 되다만 사람들이 너무 많다. 행동거지(行動擧止)를 보면 집오리를 그리는 게 분명한 데 고니(Bewick's swan)를 그리고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변에서 조차 당신의 그림은 집오리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고니라고 부추겨 수정이 불가능한 그림을 그리도록 사주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까운 사람들이 잘하던 목회를 접고 정치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잡놈들이나 하는 것인데 아직도 인생을 더 배워야 할 섫익은 사람들이 기고만장(氣高萬丈)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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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얼고 동기회
글쓴이 : 박현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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