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래는 여산인(礪山人)으로 자는 원복(元復), 호는 소산(蘇山)이다.
1827년에 문과에 합격하였고,
1841년(헌종7년)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에서 사간원(司諫院)이 되었다.
<잠영보(簪纓譜)>에 의하면 "묵죽(墨竹)을 잘 그렸고 겸하여 글씨를 잘 썼다."고 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주헌(柱獻)도 묵죽에 능하였다고 한다.
송상래는 신위(申緯)와 교분이 두터웠으며, 따라서 그의 묵죽에도 특히 농묵과 담묵의 조화와 풍성한 죽엽의 묘사 등에서 신위의 묵죽화 영향이 어느 정도 간취되고 있고,
<묵죽도6곡병>의 비교적 가느다란 죽간에서도 그 영향을 알 수 있다.
또한 각 폭마다 농묵(濃墨)과 담묵(淡墨)의 호 방한 필치로 그린 대나무들이 메아리치듯 반복되어 나타나 탄은 이정(灘隱 李霆)의 기법도 연상케 한다.
각 폭마다 긴 제발이 있어 묵죽화의 내용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해 주고 있다.
제3폭의 풍죽(風竹)과 제6폭의 독필(禿筆), 즉 끝이 뭉툭하게 닳아 버린 붓을 사용한 탄은의 설죽(雪竹)을 마음에 두고 그린 묵죽에서는 더욱 박력있는 필치가 보인다.
각폭에는 같은 주문방인(朱文方印)과 타원형 인장이 연이어 찍혀 있으나 고르지 않은 화면의 특성으로 판독하기 어렵다.
출처 : 난사랑
글쓴이 : 창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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