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이해

[스크랩] 3대 묵죽화가

최흔용 2010. 4. 5. 10:30

 


이정(1541-1622)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묵죽화가(墨竹畵家)이다.

자는 중섭(仲燮), 호는 탄은(灘隱)이다.

세종의 4세손이며 익주군(益州君) 이지(李枝)의 아들로서 석양정에 봉해졌다.

묵죽화(墨竹畵)에 있어서 그는 유덕장,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꼽힌다.

그는 묵죽화뿐만 아니라 난초, 매화에도 조예가 깊었고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적에게 오른팔을 크게 다쳤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힘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대나무는 잎과 줄기가 잘 어울리게 그렸으며, 강인성이 돋보이는 굵은 통죽도 많이 그렸다


이정의 〈묵죽〉의 대나무가 마치 그림자 같다.

중국 오대(五代)의 여류 화가였던 이부인(李夫人)이 달빛을 받아 창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를 묘사한 것이 묵죽의 시초라고 전해지는데,

뒤에 비친 담묵(淡墨)의 대나무는 안개에 싸인 듯 거리감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오른쪽 하단에 쓰인 관지(款識)에는 "천계임술춘(天啓壬戌春)..."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때는 1622년으로, 그의 말년이 정확치 않은 상황에서 그가 81세까지 생존해 있었음을 알려준다.

만년의 능숙한 필치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진한 먹과 엷은 먹을 적절히 조화시켜 달빛 아래 교교히 서 있는 대나무의 꼿꼿한 기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유덕장




가운데 줄기가 부러진 왕죽(王竹) 두 그루를 그렸는데,

마디마디에서 나온 잔 줄기와 잎들이 성글고 고절(高節)한 느낌을 주고 있다.


죽절(竹節)은 을자상포식(乙字上抱式)으로 그렸고,

죽엽(竹葉)은 방사상엽법(放射狀葉法)을 써 수일(秀逸)하게 그렸다.


이정(李霆)의 대그림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가운데 줄기가 부러진 왕죽(王竹) 두 그루·을자상포식(乙字上抱式)의 죽절(竹節)·방사상(放射狀)의 죽엽(竹葉) 등이 너무나 닮았다.

다만 토파(土坡)는 이정(李霆) 그림이 복잡하고 크다.

이런 그림을 볼 때 예술가에게 있어서 스승의 작품과 닮지 않은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된다.


 

 

 




본관 평산(平山). 자 한수(漢). 호 자하(紫霞) ·경수당(警脩堂).

신위는 당시 이름난 집안에서 태어나 1799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812년 서장관으로 청(靑)나라에 가서 중국의 학문과 문학을 실지로 보고 안목을 넓혔는데,

특히 중국의 학자 옹방강(翁方綱)과의 교류는 그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림은 산수와 함께 묵죽에 능하였다.


강세황에게 묵죽을 배웠다고 하는데, 이정(李霆), 유덕장 등과 함께 우리 나라 삼대 묵죽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묵죽화 외에 산수화와 상징화도 그렸으나, 역시 묵죽화가 제일이다.

묵죽법은 문호주파법(文湖州派法)을 따랐고 서법은 동기창법(董其昌法)을 따랐다.


정축년(丁丑 1817)년 가을에 그린 이 8폭의 대나무 그림은 농담묵을 써서 그렸는데,

제 2,3,4,5,8폭에는 바위도 그렸다. 한마디로 죽석도(竹石圖)인 셈이다.

그런데 바위는 팔대산인(八大山人)의 석법을 따른 듯 하다.

끝 폭에는 '정축추일 자하사(丁丑秋日 紫霞寫)'라고 쓰여있고, 도장이 찍혀있다.



출처 : 난사랑
글쓴이 : 창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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