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피라미드에도 전기 사용됐다?
- 사실입니다^^ 피라미드는 어떻게 세워졌는가?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정점에 위치한 기자지역에 세계최고, 최대규모이면서 가장 정밀한 석조건축물이 우뚝 서있다. 주류고고학계에서도 4천5백여년전에 (비주류학계에서는 5천여년전이전이나 7천5백여년전까지라는 주장도 한다)건설됐다고 인정하는 건축물이다. 쿠푸왕 피라미드는 엄청난 수의 둘과 벽돌을 쌓아올려 만들어졌다. 도대체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어떻게 건설했을까? 정답은 아직까지 그 방법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류학계든, 비주류학계든 정확하게 이런 방법을 썼다, 혹은 이랬을 것이다라는 추측만 난무할뿐, 이렇다 할 힘있는 "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도. 예를 들어 '미라'라든지 다른 소장품 같은 건 연대 측정이 어느정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방법이 탄소동위원소분석법(라디오카본 데이팅:방사성탄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으로, 방사성 탄소 14C는 거의 일정한 농도로 모든 유기물에 함유되어 있다. 생물이 죽으면, 새로운 14C가 몸에 공급되어야만 하므로, 그 양은 시간과 함께 반감기에 따라 감소한다. 그 감소량에서 연대를 구하는 방법)이다. 쿠푸왕피라미드 건축방법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알려진 게 없고, 우리가 이해될 만한 어떠한 정보도 없으므로 여기에서는 "주류학계"와 "비 주류학계"의 주장을 같이 논해보기로 한다. [읽기전에 알아둘 일] ※ 주류학계 주장의 글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겠지만 , 비 주류학계 주장의 글은 현실에 맞지 않거나 황당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알려지지 않고, 알 수 없는 것이니, 어느 쪽의 주장을 믿고 ,믿지 않고는 여러분이 판단하기 바라고, 두 학계의 주장의 방법을 비교해서 논해봅니다. 주류학계의 주장 ■ 주류학계의 피라미드 건축법 1. 기초 만들기 피라미드의 완성 후 위로부터의 막대한 하중을 견디기 위해 암반 위에 세워졌다. 건설지에 가로 세로로 수로를 파고, 수면의 높이에 맞춰 지표의 요철을 깍는다. 마지막에 도랑을 메워 암반을 수평으로 한다. 2. 방위를 잰다 피라미드의 네 측면은 거의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올바른 북쪽 위치 측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건설지에는 원형의 벽이 만들어지고, 밤이 되면 관측자가 그 중앙에 서서 주극성 안에서 어떤 특정한 별을 선정한다. 그 별이 벽 위에 나타난 위치와 진 위치에 표를 하고, 정확한 남북 방위를 측정한다. 3. 현실을 만든다현실이나 통로의 벽에는 화강암이 사용되었다. 이것들은 돌쌓기와 병행하여 만들어졌다. 현실 천장의 합각머리 모양의 지붕은 현실에 모래를 채우고, 그 모래를 다시 빼내는 방법으로 꼭 겹쳐지게 하였다. 4. 경사로를 만들고 돌을 쌓아올린다크고 무거운 석재를 높은 곳으로 운반하는 데에는 햇볕에 말린 흙벽돌로 만든 경사로가 이용되었다(경사로의 형태에 대해서는 나선형 등 몇몇 설이 있다). 기울기가 항상 일정해지도록, 돌을 높이 쌓아올라감에 따라 경사로도 길게 만들었다. 5. 캡 스톤을 끼운다6. 화장석을 연마하여 완성. 화장석을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깎아서 연마해 간다. 이렇게 하여 번쩍이는 듯한 아름다운 피라미드가 완성된다. 쿠푸왕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풍부한 기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고고학자들은 기하학의 요람이 이집트임에 동조하고 있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기하학이 발달한 이유의 하나로 나일강의 범람을 제시한다. 쿠푸왕피라미드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비록 현대인들에게 거대한 피라미드에 많은 비밀이 간직돼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들에 의해 당시의 기술로만 건설된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논할 때마다 우선적으로 대두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신석기 후반으로 볼 수 있는 고대이집트에서 어떻게 커다란 피라미드를을 건설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피라미드를 만든 공구를 알아보자. 이집트인이 사용한 공구는 단단한 돌덩어리, 나무에 묶는 원형 망치나 도끼류, 날카롭게 갈은 칼과 같은 돌 종류와 동과 은 금속류로 만든 칼이나 가위이다. 구리와 같은 연한 금속의 경우 현재의 합금과 같이 몇가지 불순물을 사용해 강도를 높이는 방법을 알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연장의 대부분은 단단한 석재였다고 추측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원시적인 공구로 대형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돌 항아리의 숫자와 가공 기술을 근거로 특수한 기술을 가진 공구가 사용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피라미드의 건설에 사용된 돌덩어리의 거의 대부분이 석회암이라는 점을 간과한다. 석회암은 석화물질이 물밑에 쌓여 굳어진 퇴적암으로, 경도가 가장 무른 활석 다음으로 가공하기 쉬운 재료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초보적인 공구로도 충분히 자신들이 원하는 규모로 재단하거나 가공할 수 있다. 한 예로, 시카고 대학의 레너 교수는 50명도 채 안되는 인원과 3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0.75톤에서 3톤에 달하는 1백86개의 돌로 8층짜리 피라미드를 고대의 연장만으로 건설했다. 즉, 고대인들이 충분히 피라미드를 고대의 공구만으로도 건설할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확인을 했다. 어떤 사람은 피라미드 안에 단단한 화강암이 사용됐는데, 이것을 어떻게 가공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화강암도 돌의 형태와 결을 잘 알면 쉽게 가공할 수 있다는 것을 석공들은 잘 알고 있다. 화강암이 석회암 보다 단단한건 사실이지만, 화강암은 6각의 얇은 판모양의 운모, 기둥 모양의 석영, 두꺼운 판모양의 장석 등3가지 성분이 비균질적으로 섞여 있어, 어떤 때는 화강암이 설탕처럼 쉽게 조각나기도한다. 쿠푸왕의 치세가 시작되고 나서 17년이 되었을 때 바로 그 높이까지 건조된 것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높이는 146.5m이므로 완성되기까지는 20여년 정도가 걸렸을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조의 노동력은 농민이었다. 왕은 나일강의 증수로 경지가 물에 잠기는 시기에 농민을 노동자로 고용한 것이다. 농한기에 식량과 의복, 일을 지급한다는, 말하자면 일종의 실업 정책인 것이다. 피라미드는 마치 모래 위에 세워져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기자대지의 단단한 암반 위에 건설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50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피라미드 건조는 파라오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에 즉위하면 곧바로 착공을 시작했을 것이다. 우선 건설지가 선정되고, 설계도나 축소 모형도 작성되었다. 장소가 결정되면 우선 기초 다지기부터 시작하고 수로를 사용하여 암반을 수평으로 하고, 별을 관찰하여 정확한 방위를 측정하였다. 피라미드 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국내에서 농민들이 징용되고, 마침내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나일 강이 증수하여 경지가 물에 잠기게 되는 기간 동안 농민들은 피라미드 건설에 종사하였다. 노동자들에게는 주거와 의복, 식사가 제공되고, 피라미드 건설은 농한기에 실시되는 국가 사업이었다. 또 나일 강 수위의 상승은 석재를 운반하기에 적합하였다. 피라미드의 건재는 주로 석회암이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아스완산 화강암도 사용되었다. 석회암은 기자 부근의 투라에서 좋은 질의 것이 채굴되었다. 대 피라미드는 약 270만개로 어림되는 석재를 사용하였다. 돌을 파 내는 일은 엄청난 작업이었을 것이다. 청동제의 끌과쇄기로 돌을 파내고, 현장에 운반되고 나서 모양이 다듬어 졌을 것이다. 석재의 운반에는 나무로 만든 썰매가 사용되었다. 돌을 어떻게 해서 쌓아 올렸는가는 피라미드의 큰 수수께끼 중의 하나인데, "람프"라는 경사로를 이용했다는 것이 유력한 주장이다. 햇볕에 말린 흙벽돌로 만들어진 람프에는 썰매가 잘 미끄러지도록 석고를 뿌리거나, 역레일을 만드는 등의 고안이 되어 있었다. 썰매에 실린 석재는 기울기 10분의1(10m 에 1m 오르는 기울기)의 경사로로 운반되고, 위치를 결정할 때에는 산륜이 사용되었다. 기울기는 항상 일정하게 되도록, 높이가 높아지면 경사로의 길이도 연장된다. 내부의 구조도 돌을 쌓아올리면서 만들어 나갔다. 정상에 캡 스톤을 끼우면,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쌓아올린 석재를 발판으로 하면서 단을 깎고 표면을 연마하여 마침내 피라미드를 완성시킨 것이다. 여기까지가 주류학계가 주장하는 가장 현실적인 피라미드 건축법이다. 하지만 이 주장도 최근에는 근거없는 것으로 취급되고, 인정하지 않는 추세이다. 비 주류학계의 반박 많은 고고학자들은 당시가 절대왕권 체제로서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시간을 무제한으로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피라미드의 건축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요점은 석기와 간단한 청동기 도구로 석회암을 채굴하고, 통나무와 지렛대, 그리고 윤활유를 사용해서 돌을 운반했으며, 완만한 경사로를 피라미드 상부까지 건설해서 돌을 쌓아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언뜻 생각하기에는 가능할 것 같아도 건축의 규모를 헤아려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주류학계에서는 왜, 피라미드의 건축자인 파라오 쿠푸가 암석을 사막에 있는 공사장으로 운반하게 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못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원래는 그 지역에 천연의 암벽 협곡이 있었는데 거대한 공사로 인해 암석을 다 써 버렸다는 것과, 궁색하긴 하지만, 파라오가 여름 궁전에서 작업이 진척되는 것을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라는 가정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힘으로, 어떤 "기계"와 기술을 사용하여 암석층을 수평으로 다듬었을까? 어떤 방법으로 건축가는 갱도를 파나갔을까? 그리고 무엇으로 갱도 안에 불을 밝혔을까?(주류학계의 방법대로 밑에서부터 건물 외벽과 안에 있는 현실을 같이 쌓아 올렸다고 하지만 어느정도 진척후에는 갱도 안의 내각을 맞추거나 갱도 앞에서 뒤까지의 길이를 직선으로 맞추려면 작업을 갱도안에서 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왕들의 계곡에 있는 암석 묘지...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용지니요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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