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백미, 근정전
근정전, 마당에 서있는 것이 품계석이다.
지난달에는 근정전의 대문인 근정문까지 갔습니다. 이제 경복궁의 백미인 근정전으로 들어가 봅시다. 제가 근정전을 경복궁의 백미라고 하는 것은 근정전이 경복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근정전은 이름 그대로 勤政-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부지런하다는 뜻을 가진 건물입니다. 근정전은 주로 임금이 문무백관과 조회를 하고 임금의 즉위식 그리고 세자 책봉식, 임금과 세자의 혼례를 치루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외국사신의 영접행사와 왕족의 어른을 위한 잔치를 하거나 나라의 공을 세운 이들을 위한 잔치를 하는 곳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곳이니만큼 경복궁의 어떤 곳보다 정성을 들여 만든 곳이며 그만큼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근정전 앞마당은 아마 여러분들도 한번씩은 다 보셨을 겁니다. 조선시대 사극 드라마 타이틀에 항상 나오는 곳입니다. 왕이 고뇌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는 건물이 바로 근정전입니다. 근정문을 지나면 근정전이 한눈에 보입니다. 탁트인 마당에 근정전이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그리고 눈썰미가 있는 분이라면 근정전 뒤로 산 두 개가 근정전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왕산이고 하나는 북악산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풍수지에 입각해서 건물의 위치를 정합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그 건물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짓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근정전을 그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근정전의 처마는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서 산이 없어도 안되며 건물이 없어도 이렇게 멋있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근정전을 자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근정전 마당은 돌로 만들었습니다. 돌마당 가운데에는 어도(임금이 다니는 길)가 있고 그 좌우로 품계석이 서있습니다. 품계석은 정일품에서 종구품까지 있습니다. 임금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으로는 문반(文班), 오른쪽으로는 무반(武班)이 도열합니다. 이 품계석에 도열할 때 관리들은 모두 화려한 예복을 입습니다. 아마 드라마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만약 기관차 승무원들이 조선시대에 있었다면 어디쯤에 서있었을까요? 조선시대에 열차가 있었다면 아주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마도 앞쪽에 서있지 않았을까요?
근정전 마당을 걷다보면 바닥에 큰 쇠고리를 볼 수 있다. 무슨 용도였을까요? 근정전은 앞에서 말한대로 행사장이었습니다. 행사장에는 햇빛과 비를 가릴 차양이 필요합니다. 요즘에야 천막이 보편화되었지만 몇 년 전만해도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차양을 썼답니다. 궁중의 큰 행사를 할 때도 차양을 쳤습니다. 근정전 바닥의 쇠고리는 차양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썼답니다. 마찬가지로 근정전 기둥에도 쇠고리가 달려있습니다. 이처럼 궁궐 곳곳에는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거릴 것들이 많답니다. 이런 것이 궁궐을 찾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근정전 마당의 쇠고리, 그냥 보면 용도를 모르지만 차양을 칠 때 쓴다.
근정전 마당을 지나 근정전으로 가려면 계단을 지나야합니다. 계단은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계단 위의 평평한 곳을 월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근정전은 두 개의 월대 위에 서있는 것이죠. 계단은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만든 구조물입니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계단을 단순한 구조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군신간의 위계질서와 상하를 구분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두었습니다.
황제를 올려 부르는 폐하의 폐(陛)자가 계단을 의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이 계단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가 따로 정해져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근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가운데를 보면 널찍한 봉황이 새겨진 널찍한 돌이 있습니다. 봉황은 상상의 동물입니다. 수컷을 봉(鳳)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합니다. 봉황은 성군이 나타나 나라가 태평하면 나타난다고 하니 왕이 다니는 길에 새겨놓을 만한 동물입니다.
근정전을 오르는 계단, 가운데에 봉황이 새겨져있다.
계단을 올라 월대에 오르면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보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드므’입니다. 드므는 월대 모퉁이에 있는데 생긴 것이 가마솥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드므는 안에다 물을 채워둡니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궁궐에 화재가 났을 때 급하게 쓸 수 있는 방화수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화수는 맞기는 한데 그게 불을 끄기 위한 물은 아닙니다. 물론 급하면 드므에 담긴 물로 작은 불씨를 잡기도 했지만 불을 끄기 위한 물은 아닙니다. 그럼 어떤 의미의 방화수일까요? 불귀신이 불을 내려고 궁궐에 다가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라고 만든 것입니다. 물론 옛사람들이라고 불귀신이 불을 낸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궁궐에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일종의 부적인 셈입니다.
드므, 불귀신이 자기 모습을 보고 도망가라는 뜻으로 만들었다.
관람객이 휴지를 던져서 유리로 덮었나?
근정전 안에도 일제에 의해 훼손된 곳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보면 그것이 훼손된 것인지 조차 모르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한 상태입니다. 근정전을 들어서면 양 쪽으로 회랑이 있습니다. 지붕이 있는 긴 복도처럼 생긴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원래 복도가 아니라 행각이었습니다. 즉 사무실과 창고로 쓰였던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안쪽으로 벽이 있고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행각에는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의 사무실과 궁궐의 각종 물품을 관장하는 기관의 사무실과 창고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1915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습니다. 일제는 근정전을 조선물산공진회 본부로 사용하였고 이때 사무실과 창고를 헐어 지금의 회랑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회랑에는 일제가 전국에서 강탈한 유물을 전시하였습니다. 북한산에 뜯어낸 진흥왕 순수비도 이곳에 전시하였다고 합니다.
근정전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경복궁의 핵심 건물이며 궁궐의 큰 행사를 치루는 곳입니다. 우리가 조정(朝廷)이라고 하는 곳이 바로 근정전 마당입니다. 일제로서는 이곳을 차마 없애지는 못하고 이처럼 전시실로 만든 것입니다. 그때 만든 회랑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근정전 옆 회랑, 원래 사람이 다는 복도가 아니라
사무실과 창고였으나 일제가 이를 헐었다.
근정전에는 볼 것이 많아서 한번에는 다 소개를 못하겠네요. 다음호에는 근정전을 지키고 있는 돌짐승과 돌사자를 보고 근정전 안을 들여다보죠. 매번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사는 서울 한복판에 전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훌륭한 궁궐이 있습니다. 한번 가보세요. ^^
푸른하늘 200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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