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인은 운명이 기구하다.> <가인>은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다. 우리말에도 미인일수록 팔자가 사납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가인박명>을 말하는 것이다. 출전은 소식(蘇軾)의 시 <가인박명>.
佳;아름다울 가 人;사람 인 薄;얇을 박 命;목숨 명
두 볼은 뽀얀 우유처럼 촉촉이 젖어 있고,
머리칼은 옻을 칠한 듯 칠흑처럼 새까매라.
주렴 사이로 내비치는 여인의 눈빛,
마치 구슬인양 영롱히도 반짝이네.
원래 여승의 옷은 하얀 명주로 만드는데,
지금 이 여인도 그런 옷을 입고 있구나.
입술의 자연스런 바탕을 더럽힐까 봐,
붉은 입술 연지는 바르지 않았어라.
여인의 오나라 말씨 부드럽고 교태로워
여전히 아이 같은 치기가 남아있네.
하지만 아직은 알지 못하리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살이 근심을.
예부터 전하기를, 아름다운 여인 중에는
운명이 기구한 사람 많다고 했지.
각주구검(刻舟求劍)
<배에다 새겨 놓고 검을 찾다>. 고지식하고 완고하거나 물정에 어두울 때 쓰는 말이다. 출전은 《여씨춘추》
「찰금(察今)」편.
刻;새길 각 舟;배 주 求;찾을 구 劍;칼 검
전국 시대 때 어떤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도중 그는 검을 실수로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얼른 단검을 떨어뜨린 뱃전에다 칼로 표시를 해 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 검이 떨어진 곳은 여기니까.......」
이윽고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닿았다. 그는 표시를 한 뱃전 밑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검을 찾을 리가
없었다.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을 풍자한 이 우화는 매우 유명하다. 너무 엉뚱한 비유라서 세상에 이런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음에 덮여서 이런식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푸르른 버들 꽃이 속절없이 지겠구나.
어떤 연유로 여승이 된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시이다. 여인의 청초한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고 있다.
<천지를 걸고 단번에 승부를 건다.> 자신의 전 운명을 걸고서 단번에 결판을 내는 것을 말한다. <건곤일척의 승부>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출전은 한유가 지은<과홍구(過鴻溝;홍구를 지나면서)>라는 시. 홍구는 현재 하남성 개봉(開封) 서쪽을 흐르는 강이다.
乾;하늘 건 坤;땅 곤 一;하나 일 擲;던질 척
용은 지치고 호랑이는 피곤해서, 이 강을 기준으로 분할하니
마침내 수많은 생명들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지만 누가 군왕의 말머리를 돌리게 해서
천지를 걸고 단판 승부를 내게 했던고?
이 시에는 유방과 항우에 얽힌 고사가 배경이 된다. 즉 첫 행의 용과 호랑이는 유방과 항우를 말한다. 두 사람은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수없이 전쟁을 치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지치고 피곤한 두 <용과 호랑이>는 <홍구>를 기준으로 서쪽은 유방이, 동쪽은 항우가 차지하기로 했다.
두 사람의 결정은 천하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 했다는 것이 두 번째 행의 뜻이다.
하지만 셋째 행에서, 유방의 말머리를 돌리게 한 사람은 바로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지금 초나라 군대는 지치고 식량도 떨어졌습니다. 이제야말로 초나라를 멸망시킬 때입니다.
그래서 서쪽으로 가던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천하의 운명을 걸고 항우와 단판 승부로 들어간 것이다. 이 싸움에서 항우는 해하성에서 패배한 뒤, 오강(烏江)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결국 <천지를 건다>는 말은 천하를 얻느냐 잃느냐하는 운명을 걸었다는 뜻이다. 요즘은 어느 분야에서나 커다란 승부를 낼 때 <건곤일척>이란 말을 쓴다.
<개와 토끼의 다툼.> 서로 만만한 상대끼리 싸우는 바람에 제3자가 이익을 보는 것으로 어부지리(漁父之利)와 같은 뜻이다. 밭을 가는 농부가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전부지공(田父之功)이라고도 한다. 아울러 쓸데없는 싸움을 뜻하기도 한다. 출전은 《전국책(戰國策)》.
犬; 개 견 兎; 토끼 토 之; 어조사 지 爭; 다툴 쟁
전국 시대 때 제 나라의 순우곤은 해학과 변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세객이었다. 그는 제 나라 왕이 위(魏) 나라를 치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한자로(韓子盧)라는 날쌘 사냥개가 동곽준(東郭逡)이라는 재빠른 토끼를 쫓았습니다. 두 놈은 수십 리를 달리면서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에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하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둘 다 지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마침 그것을 발견한 농부가 힘들이지 않고 횡재를 했습니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래 대치하고 있어서 국력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위나라를 공격한다면, 서쪽의 진나라와 남쪽의 초나라가 기회를 틈타서 농부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위나라를 칠 생각을 버리고 국력을 기르는데 힘을 쏟았다.
5. 결초보은(結草報恩) 풀잎을 엮어서 은혜를 갚다
결초보은(結草報恩)
結;맺을 결 草;풀 초 報;갚을 보 恩;은혜 은
춘추시대 때, 진(晉)나라의 위무자(魏武子)에겐 사랑하는 첩이 있었는데, 그녀에겐 아들이 없었다. 위무자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그는 본처의 아들인 위과(魏顆)에게 분부했다.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첩을 개가시켜라.」
그런데 임종할 무렵이 되자 위무자는 다시 아들에게 분부했다.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첩을 무덤에 같이 묻어 달라.」
위무자가 죽자 위과는 첩을 개가시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위독해지면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저는 아버님이 올바른 정신상태에서 한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뒤 진(秦)나라 환공이 진나라를 공격했다. 전쟁에 나간 위과는 크게 패하여 적장 두회(杜回)에게 쫓기게
되었다. 한창 도망치고 있는데, 넓은 초원에서 한 노인이 풀과 풀을 엮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위과가
그곳을
지나가자, 뒤따라오던 두회는 그만 노인이 엮은 풀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었다. 때를 놓칠세라 말머리를
돌린 위과는 적장 두회를 사로잡아 크게 승리했다.
그날 밤 위과는 꿈에서 낮의 그 노인을 보았는데, 노인은 공손히 인사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이 개가시킨 여인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당신이 아버지의 첫 유언에 따라 내 딸을 개가시켜
목숨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오늘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은 것(結草報恩)입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위태롭게 할 만한 미모> 빼어난 미인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경국> 은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며, <색(色)>은 여인의 용모를 말한다. 출전은《한서》 「외척전(外戚傳)」.
傾;기울 경 國;나라 국 之;어조사 지 色;빛깔 색
이연년(李延年)은 한나라 무제 때 음악을 맡은 관리였다. 그에겐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진정 절세의
미인이었다. 그는 무제에게 누이동생을 추천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은 시로써 노래했다.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 있으니
그 미모는 세상을 뛰쳐나 홀로 우뚝하네.
한 번 돌아보매 성을 기울게 하고
두 번 돌아보매 나라를 위태롭게 하네.
어찌 성을 기울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함을 모를까마는
아름다운 여인은 두 번 다시 얻기 어렵구나.
당시 무제는 50 고개를 넘긴 만년의 나이로 쓸쓸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즉시 이연년의 누이동생을
불렀는데, 그녀의 춤과 아름다움에 이내 매료되고 말았다. 이 여인이 바로 무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이부인(李夫人)이었다.
7. 계륵(鷄肋) 닭 갈비
계륵(鷄肋)
<닭 갈비> 별로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을 뜻한다. 출전은 《후한서》「양수전(楊修傳)」.
鷄;닭 계 肋;갈비 륵
삼국 시대 때 유비와 조조는 한중(漢中) 땅을 차지하려고 서로 다퉜다. 그러나 익주를 점령한 유비가 먼저
한중 땅을 평정해서 군사 배치와 병참을 확보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유비의 세력권이었던 것이다.
조조의 군대는 유비 군대의 강력한 방어 전선에 막히자, 전진하기도 곤란하고 수비하기도 곤란한 상태에
빠졌다. 결국 조조는 부하들에게 <계륵>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참모들 중 어느 누구도 조조의
명령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다.
단지 주부(主簿) 벼슬을 하고 있던 양수만이 조조의 뜻을 정확히 간파했다.
「일반적으로 닭의 갈비는 먹을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버리기엔 아까운 생각이 든다. 조조는 이곳을 버리고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외에도 <왜소하고 허약한 몸>을 가리킬 때 <계륵>이라는 말을 쓴다
곡학아세(曲學阿世)
<배운 바를 굽혀서 세속에 아첨하다>. 자기가 배운 진리의 원칙을 위배하고 세속의 시류나 이익에 영합
하는
것을 말한다. 소위 어용학자 같은 부류들이 <곡학아세> 하는 자들이라 하겠다. 출전은 《사기》
「유림열전(儒林列傳)」.
曲;굽을 곡 學;배울 학 阿;아첨할 아 世;세상 세
한나라 경제(景帝) 때 원고생(轅固生)이라는 뛰어난 학자가 있었다. 그는 강직한 사람으로 옳다고 생각한
일은 어떤 경우에도 직언을 했다. 그의 강직함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두태후(竇太后)는 경제의 어머니로서 《노자》를 매우 좋아했다. 어느 날 원고생을 불러 물었다.
「그대는 노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원고생이 답했다.
「노자란 자는 노예나 종놈처럼 보잘 것 없는 자입니다. 그의 말은 하잘 것 없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태후는 매우 화가 나서, 원고생을 사육장으로 보내 돼지를 잡게 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그가 직언했을
뿐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몰래 날카로운 칼을 주어 돼지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나중에 경제는 그를 다시 청하왕의 태부(太傅)로 임명하였다. 그는 태부의 소임을 다한 뒤, 병으로 사퇴
했다. 경제 다음에 즉위한 무제는 원고생을 다시 불러냈다.
당시 원고생과 함께 부름을 받은 사람은 공손홍(公孫弘)
이라는 젊은 학자였다. 공손홍은 늙은 원고생을 꺼려하면서 흘겨보았다. 그러자 원고생이 말했다.
「지금 학문은 사설(邪說)이 횡행하여 전통 있는 학문은 자취를 감추고 있네. 자네는 올바른 학문에
힘쓰면서 말해야 되네. 절대로 자기가 배운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해서는 (曲學阿世) 안되네.」
9.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출전은 《논어》 「선진(先進)」편.
過;지나칠 과 猶;같을 유 不;아니 불 及;미칠 급
어느 날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둘 중에 누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모자란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낳겠네요?」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다.」
이 일화는 자장(子張)과 자하(子夏)의 대조적인 성격 때문에 나온 것인데, 두 사람의 성격을 말해주는 일화가
《논어》에 나온다.
어느 날 자장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비로서 어찌해야 통달한 사람(達)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말하는통달 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제후를 섬기면 기필코 명성을 날리고, 경대부의 신하가 된다 해도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건 명성(聞)이지통달 이 아니다. 성격이 바르고 정의를 좋아하며, 말과 안색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항상 신중히 생각하면서 남에게 공손한 사람, 그리하여 제후를 받들든 경대부의 신하가 되든
잘못되는 일이 없는 사람을<통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안연(顔淵)」편
공자가 자하에게 말했다.
「너는 군자유(君子儒)가 되어야지 소인유(小人儒)가 되어서는 안된다.」
「옹야(擁也)」편
이 두 일화에서 보듯이, 자장은 매사 적극적이면서도 과시욕이 강한 성격이며, 자하는 사소한 형식에 얽매
이는 소극적인 성격임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이 두 제자의 성격, 즉 자장의 지나침(過)과 자하의
모자람(不及)을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하여 중용을 촉구한 것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리가 결코 변하지 않는 친구 사이를
가리킨다.
출전은 《사기》「관안열전」.
管;대롱 관 鮑;말린 생선 포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관중과 포숙아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나중에 관중은 제나라 양공(襄公)의 아들 규(糾) 아래에서 벼슬을 했고, 포숙아는 규의 동생 소백(小白)을
섬겼다.
얼마 뒤,양공이 반란군에 의해 죽자 관중은 규와 함께 노나라로 망명했고, 포숙아는 소백과 함께 거나라로
망명했다. 이윽고 반란군이 평정되자 규와 소백은 임금의 자리를 놓고 대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관중은 규를 왕위에 앉히기 위해 소백의 암살을 시도했지만,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소백이
먼저
제나라로 들어와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하나인 제환공이다. 환공은 노나라로
망명한 규와 관중을 잡아서, 규는 즉석에서 죽이고 관중은 제나라로 압송했다. 환공은 자기를 죽이려한
관중을
죽일 작정이었지만, 포숙아가 이를 말리며 말했다.
「왕께서 제나라만을 다스리겠다면, 저와 고혜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천하의 패자가 되실 생각이라면
관중을 중용해야 합니다.」
환공은 자기가 신뢰하는 포숙아의 말을 따라 관중을 대부로 임명하였다. 관중은 과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환공을 패자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죽을 목숨인 관중을 오히려 환공에게 추천한 일은 관중에게 변함없는 우정을 발휘한 포숙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관중은 포숙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전에 가난해서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했는데, 내 몫을 더 챙겼다. 그래도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해준 일이 실패로 돌아가 그를 더욱
궁지에
빠트린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는 나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일이란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또 나는 세 번이나 벼슬했지만,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때도 포숙아는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세 번 싸우다 세 번 도망친
일이 있는데, 그는 나를 비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또 공자 규가 죽었을 때도 나는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했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라고 욕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구애받기 보다는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하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
11.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비비고 상대를 보다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비비고 상대를 보다>. 학문이나 그 밖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을 때 <괄목상대>라고 말한다. 흔히
<괄목할만한 수준>이라고 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할 만큼 뛰어나게 발전한 것을 가리킨다. 출전은
《삼국지》「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
刮;비빌 괄 目;눈 목 相;서로 상 對;대할 대
삼국 시대 때, 오나라의 장수 여몽은 집이 가난해 글공부는 못했지만 무예를 닦아서 훌륭한 장수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오나라의 창업주 손권으로부터 책을 많이 읽어 학식을 쌓으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부터 시작한 여몽의 글공부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전쟁터에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은 학식이 깊은 노숙(魯肅)이 그와 토론을 하다가 여몽의 학문이 높아진데
대해 크게 놀랐다.
「난 그대가 무예만 뛰어난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학식이 풍부하다니 놀랍소. 이젠 오나라에 있을 때의
여몽이 아니구먼(非復吳下阿蒙).」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답했다.
「무릇 선비라면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나서 만났을 땐눈을 비비고 상대를 봐야(刮目相對) 하오.」
여몽은 노숙이 죽은 뒤, 손권을 도왔다. 관우의 근거지를 공격해 그를 죽였으며, 갖가지 책략으로 오나라의
기반을 굳건히 했다
교언영색(巧言令色)
<교묘한 말과 겉꾸미는 표정>.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만 번드르르하고 표정만 그럴싸하게 짓는 것을
말한다. 출전은 《논어》 「학이」편.
巧;교묘할 교 言;말씀 언 令;명령 령 色;빛깔 색
공자가 말했다.
「교묘한 말과 겉꾸미는 표정에는(巧言令色) 인(仁)함이 거의 없다. 강직하고(剛),의연하고(毅),
소박하고(木), 어눌한(訥) 자는 인에 가깝다.」
군계일학(群鷄一鶴)
<닭 떼들 가운데 한 마리 학.> 많은 닭들 가운데 학 한마리가 있으면 돋보이듯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걸출하게 뛰어난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인다.
群;무리 군 鷄;닭 계 一;한 일 鶴;학 학
출전은 《진서(晉書)》 「혜소전(혜紹傳)」.
혜소는 죽림칠현의 한 명으로 유명한 혜강(혜康)의 아들이다. 그는 열 살 때 아버지 혜강이 무고죄로
사형당하자 어머니를 모시고 근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혜강의 절친한 친구 산도(山濤역시 죽림칠현의
한 명)는 그의 능력이 아까워서, 어느 날 무제에게 상소했다.
「서경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죄는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지만
매우 걸출한 인물입니다. 그에게 비서랑의 관직을 내려 주십시오.」
무제는 그의 상소를 받고, 오히려 한 단계 높여 비서승(秘書丞)에 임명했다.
혜소가 처음 낙양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사람이 죽림칠현의 하나인 왕융(王戎)에게 말했다.
「어제 사람들 가운데서 처음 혜소를 보았습니다. 우뚝 뛰어난 것이 마치 들녘의 학이 닭 떼들 가운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왕융이 말했다.
「자넨 아직 그의 아버지를 보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걸세.」
혜소는 나중에 반란군에 싸인 황제를 몸으로 지키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권토중래(卷土重來)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다시 돌아오다.> 전쟁에서 한번 패한 사람이 다시 세력을 길러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재차 공격해오는 것을 뜻한다. 지금은 실패에서 재기 할 때, 또는 재기하려 할 때 이 말을 쓴다. 출전은
당대의 시인 두목(杜牧)이 지은<제오강정시 (題烏江亭詩)>.
卷;말 권 土;흙 토 重;무거울 중, 거듭 중 來;올 래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兵家)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부끄러움을 안으로 삭이면서 참는 자가 진정한 남아로다.
강동(江東) 땅 젊은이 중엔 호걸들이 많은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올지 (卷土重來) 아직은 모르겠네.
이 시는 해하성 전투에서 유방에게 패한 항우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항우가 오강까지 도망쳐 오자, 그곳의 관리가 배를 준비해놓고 항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항우에게
말했다.
「강동은 비록 작은 땅이지만, 그래도 수십만 명이 살고 있어서 왕 노릇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자,
빨리 배에 오르시죠. 제가 건너다 드리겠습니다.」
강동은 항우가 군사를 일으킨 고장이다. 그 관리는 항우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항우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나는 강동의 젊은이 8천 명과 이 강을 건넜는데, 지금은 한 사람도 같이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내 무슨 면목으로 강동의 부형들을 볼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한 뒤, 항우는 다시 유방의 군사와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항우의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이 시에서 두목은 항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시의 내용을 풀이하면 이렇다
<승패는 병가들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인데, 당신은 진정 남자답게 한때의 수치를 참아야 했다. 게다가
강동 땅엔 호걸들도 많다던데, 어째서 힘을 길러 다시권토중래 하지 않았는가?>
금란지교(金蘭之交)
<쇠처럼 굳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우정.> 아주 친한 친구 사이를 말할 때 금란지교라는 말을 쓴다. 출전은
《역경》「계사(繫辭)」편.
金;쇠 금 蘭;난초 란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공자가 말했다.
「군자의 도는 나가 벼슬하기도 하고, 물러나 집에 머물기도 한다. 또 침묵할 때도 있고, 말할 때도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면 그 날카로움은 쇠라도 끊어 버리며, 그 하나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난초와 같은 향기를 풍긴다.」
금의야행(錦衣夜行)
<금의야행>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좋은 비단옷을 입었다 해도 밤에는 잘
보이지 않아 남들이 알아주지 못한다. 즉 출세를 하고 부귀영화를 차지했다 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쓸데없다는 의미다. 출전은《사기》 「항우본기」.
錦;비단 금 衣;옷 의 夜;밤 야 行;다닐 행
항우가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쳐들어갔을 때, 함양은 이미 유방이 먼저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항우는 유방에게 투항하여 감시 하에 있던 진나라의 왕자 영(영)을 죽이고, 유방이 손도 대지 않던
진나라 궁실을 불질러 버렸다. 그 불은 3일간이나 타올랐다. 그 뒤 항우는 재물과 아녀자를 데리고 동으로
가려 했다. 그때 항우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
「관중(關中 : 함양을 말함)은 산하가 험난하여 사방이 막혀 있습니다. 게다가 토지도 비옥하니 이곳에
도읍하면 천하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우는 진나라 궁실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고, 또 마음속으로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 강동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부귀를 차지해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錦衣夜行) 것과 같다. 누가
비단 옷 입은 걸 알아주겠는가?」
이 일화에서 보듯이 항우는 꽤 소박한 사람인 것 같다.이는 함양을 도읍으로 삼으라고 항우를 설득했던
사람도 느낀 것이다. 그는 나중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가 관(冠)을 쓴 것 같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이 말을 들은 항우는 그 사람을 삶아 죽였다고 한다.
기사회생(起死回生)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다>. 뛰어난 의술로 환자를 죽음의 상황에서 소생시킬 때,또는 위기 상황에
빠졌다가 상황이 반전되어 사태가 호전될 때, 기사회생이라는 말을 쓴다. 출전은 《태평광기》
起;일어날 기 死;죽을 사 回;돌아올 회 生;날 생
「서른여섯가지 술법을 쓴 것은 매우 효과가 있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으니(起死回生), 인명을 구한
것이 부지기수였다.」
또 《여씨춘추》「별류(別類)」편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노나라에 공손작(公孫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지 물어보자, 그가 답했다.
「나는 반신불수를 고칠 수 있다. 반신불수를 고치는 약을 두 배로 늘리면, 그것으로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起死回生).」
난형난제(難兄難弟)
<형제의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원래는 형제간의 우열을 가리는데서 나온 말이지만, 지금은 사물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 흔히 쓰인다. 출전은《세설신어(世說新語)》.
難;어려울 난 兄;형 형 弟;동생 제
후한 말엽 태구의 현령 진식(陳寔)은 두 아들 진기(陳紀), 진심(陳諶)과 함께 <삼군자>라고 불릴 만큼
덕망이 높았다.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오자 진식은 두 아들에게 밥을 지으라고 해놓고 손님과 토론에 열중했다. 진기와
진심은 밥을 짓다가, 그만 아버지와 손님의 토론을 듣느라 밥 짓는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얼른 솥뚜껑을 열어 보니 쌀은 이미 죽이 돼버렸다. 진기와 진심이 무릎을 꿇고
사정을 말하자 아버지가 물었다.
「그럼 우리들이 얘기하고 있던 내용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느냐?」
두 아들이 토론의 내용을 줄줄 말하자, 진식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죽이라도 좋으니까 내 오거라.」
*
진기의 아들 진군(陳群)과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도 역시 뛰어난 수재였다. 어느 날 진군과 진충은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을 논하면서 우열을 다투었다. 아무래도 결론이 나지 않자, 두 사람은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가서 판정을 구했다. 그러자 진식은 이렇게 말했다.
「진기를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難兄), 진심을 동생이라 하기도 어렵구나(難弟).」
내우외환(內憂外患)
<안으로도 근심이 있고, 밖으로도 걱정이 있다.> 안팎으로 근심걱정에 시달리는 것을 말한다. 출전은
《국어(國語)》.
內;안 내 憂;근심 우 外;밖 외 患;근심 환
춘추 시대 중엽에는 초나라와 진(晉)나라가 대립하고 있었다. 당시 진나라의 대부 낙서(樂書)는 진나라에
항거한 정(鄭)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자신이 장군이 되고 범문자(范文子)는 부장군이 되었다.
그런데 진나라의 군사가 초나라 군사와 충돌하자, 낙서는 초나라와 싸우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범문자는
이에 반대했다.
「오직 성인만이 밖으로부터의 환란이나 안으로부터의 근심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밖으로부터의 환란이 없으면 반드시 안에서의 근심이 있다.」
20. 누란지위(累卵之危) 알을 포개 놓은 듯한 위기
누란지위(累卵之危)
<알을 포개 놓은 듯한 위기.>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하거나 회사가 도산의 위기에 처했을 때
<누란지위>라는 말을 쓴다. 출전은 《사기》 「범수채택열전(范誰蔡澤列傳)」.
累;쌓을 누 卵;알 란 之;어조사 지 危;위급할 위
전국시대 때, 제후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정견(政見)을 실현하려는 무리들이 나왔는데, 이들을
종횡가(縱橫家)라 한다. 범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그는 위나라 대부인 수가(須賈)에게 벼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수가는 위나라의 사절로서 제나라를 가게 되었는데, 이때 범수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교섭을
하는 도중에, 그는 갑자기 위나라의 비밀을 제나라에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범수를 시기하고 있던
수가는 귀국하자마자 재상 위제(魏齊)에게 고해 바쳤다. 위제는 화가 치밀어 사람을 시켜 호되게 매질을 했다.
범수가 죽은 듯이 누워있자, 가마니에 감아 변소에 던져놓고 오줌을 뿌렸다.
나중에 범수는 틈을 보아 도망을 쳐서, 정안평(鄭安平)이라는 사람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리고는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꾸고서 호시탐탐 위나라를 탈출할 기회를 노렸다. 때마침 위나라에 온
진나라 사자 왕계(王稽)가 인재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정안평은 그에게 범수를 추천했다.
다기망양(多岐亡羊)
<갈림길이 너무 많아서 양을 잃어버렸다>.지엽적이고 단편적인데 집착하다가 본뜻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출전은열자 (列子) 설부(說符)편.
多;많을 다 岐;갈림길 기 亡;없앨 망 羊;양 양
어느 날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양을 잃어버렸다. 그는 양을 쫓아가려고 사람들을 모았는데, 양자의
종복까지 청했다.
양자가 말했다.
「양 한 마리를 잃었는데 쫓아가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가?」
이웃 사람이 말했다.
「갈림길이 많습니다.」
한참 후에 양을 쫓아간 이웃 사람이 돌아오자 양자가 물었다.
「양은 잡았는가?」
「못 찾았습니다.」
「왜 찾았는가?」
「갈림길 속에 또 갈림길이 있어 도저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자는 울적한 얼굴로 하루종일 말도 않고 웃지도 않았다.
양자의 모습을 본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 물었다.
「양은 대단치 않은 가축입니다. 더구나 선생님 소유도 아닌데, 어째서 말씀도안하고 웃지도 않으시는
겁니까?」
그래도 양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양자의 제자 맹손양(孟孫陽)이 이 이야기를 선배인 심도자(心都子)에게
말했다. 심도자는 맹손양과 함께 양자를 찾아와 물었다.
「옛날 3형제가 있었는데,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에 유학해 같은 선생 밑에서 인의(仁義)를 배워
돌아왔습니다. 3형제의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인의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맏아들은 <내 몸을 소중히해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것>이라 답했고, 둘째 아들은 <내 몸을 죽여서 이름을 날리는 것>이라 대답하고,
막내는 <몸과 명성을 함께 보전하는 것>이라 답했습니다. 이 세 가지 길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유학(儒學)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습니까?
양자가 답했다.
「한 남자가 황하 물가에서 살고 있었다. 물에 익숙하고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뱃사공 노릇을 해서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그 때문에 식량을 지참하고 제자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반수는 물에
빠져죽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원래 수영을 배우러 온 것이지 빠져죽는 걸 배우러 오지는 않았는데,
돈 버는 쪽과 목숨을 잃는 쪽으로 나뉘어져 그 이해득실이 아주 다르다. 그대들은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다고 생각하는가?
심도자가 이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맹손양이 심도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빙 돌려서 질문을 했고, 선생님은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아서 저는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심도자가 말했다.
「큰 길은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잃어버리고(多岐亡羊),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는 갖가지 방법에만 빠져서
도를 잃는다. 학문의 근본은 모두 동일한데도, 그 끝은 이렇게 차이가 나버린다. 근본의 동일함으로
돌아가면 얻고 잃음이 없을 것이다. 자네는 선생님의 문하에서 선생님의 도를 배우는데도 선생님이 하신
비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은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근본을 돌아보지 않고 너무 지엽적,
방법적인데만 매달려 있으면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의미가 변하여 요즘에는
선택의 대상이 너무 많아 어느 길, 어느 방법을 취해야할지 헷갈릴 경우에도 이 말이 쓰인다.
다다익선(多多益善)
多;많을 다 益;더할 익 善;착할 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출전은 《한서(漢書)》 「한신전(韓信傳)」.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은 초나라의 항우를 꺾고 천하를 통일했다. 당시 그는 초왕(楚王) 한신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자, 그를 붙잡아 왕위를 박탈하고 회음후(淮陰候)로 좌천시켰다.
어느 날 고조는 여러 장군의 능력에 대해 한신과 이야기했다. 그때 고조가 한신에게 물었다.
「내가 어느 군대를 얼마나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한신이 답했다.
「폐하는 10만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럼, 그대는 어느 정도인가? 」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多多益善).」
고조가 웃으면서 말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가 어째서 10만의 장군에 불과한 내게 포로가 되었는가?」
「폐하는 병졸들은 잘 거느릴 수 없지만 장군들은 잘 거느리십니다. 이것이 제가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더욱이 폐하의 능력은 소위 하늘이 주신 것으로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의 출전인한서한신전은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을 근거로 해서 쓰인 것이다 . 회음후열전에서는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익변(多多益辨)>으로 되어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잘 처리한다>는 뜻으로다다익선의 뜻과 큰 차이는 없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 남달리 뛰어난 인물은 보통 사람보다 뒤늦게 이루어진다. 어떤 일에서
뒤늦게 성공한 사람을 가리킬 때 대기만성이라고 한다. 출전은 《노자(老子)》 41장.
大;큰 대 器;그릇 기 晩;늦을 만 成;이룰 성
뛰어난 사람(上士)이 도를 들으면, 그 도를 부지런히 실천한다. 보통 사람(中士)이 도를 들으면, 그 도에
대한 믿음과 의심이 반반이다. 모자란 사람(下士)이 도를 들으면,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해 크게 웃고 만다.
웃지 않는다면 도라 하기엔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앞으로 나가는 도는 물러나는 것 같고, 평탄한 도는 험난한 것 같다.
빼어난 덕은 오히려 골짜기처럼 낮은 것 같고, 너무나 흰 것은 더러운 것 같고, 넓은 덕은 오히려 부족한
것 같고, 건전한 덕은 오히려 나약한 것 같고, 변함없는 덕은 변하는 것 같다. 커다란 사각형은 그 각(角)이
없고, 큰 그릇은 늦게서야 이루어지고(大器晩成), 큰 소리는 그 소리가 미미한 것 같고, 크나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
도는 숨어 있어 일정한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이 도야말로 만물에 힘을 잘 빌려주어 만물을 생성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대기만성>은, 큰 그릇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가 변해서 지금은 <큰 인물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거나 <큰 인물은 늦게서야 완성된다>는 뜻으로
쓰인다. 즉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을 형용할 때 주로 쓰인다.
도원결의(桃園結義)
<복숭아가 피어있는 동산에서 의형제를 맺다.> 이 말은 중국 민중들 사이에서 의형제를 맺을 때 하나의
귀감으로 쓰는 말로, 그 출처는 명(明)나라 때 나온 장편소설 《삼국지연의(三國誌演義)》로서 실제로는
꾸며낸 이야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꾸며낸 이야기는 실제 사실인 양 받아들여져, 후세 사람들은
으레 이 <도원결의>를 그린 그림 앞에서 의형제를 맺곤 했다.
桃;복숭아 도 園;뜰 원 結;맺을 결 義;옳을 의
흔히 사람들은 전한(前漢)은 외척에 의해 멸망하고 후한(後漢)은 환관에 의해 멸망했다고 말한다.
이 환관의 횡포와 흉년으로 민중들의 피폐가 극도에 달했을 때,한왕실을 타도하려고 궐기한 무리가
태평도(太平道)의 교조 장각(張角)이 이끄는황건적 (黃巾賊)이었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여
대군을 형성한 뒤 수도 낙양(洛陽)으로 향했는데, 당황한 한왕실은 전국에서 의용군을 모집하여
이들을 막으려 했다.
당시 이 의용군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였다. 세 사람은 장비의 집에서 군사를 일으킬 것을 모의하고 있었는데,
이때 장비가 말했다.
「우리 집 뒤에 복숭아밭이 있는데, 지금 복숭아꽃이 한창입니다. 내일 그곳에서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낸 뒤 우리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읍시다.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하나로 할 것을 맹세하고서 군사를
일으킵시다.」
유비와 관우도 장비의 말에 찬성을 하였다. 다음날 세 사람은 복숭아밭에서 향을 사르고 두 번 절하면서
맹세를 하였다.
「생각건대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은 다르지만 이미 형제를 맺기로 하였습니다. 마음을 합치고 힘을
모아 위험과 곤궁에 빠진 자들을 구원해,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편안케 하겠습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진 못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고자 합니다. 하늘과 땅은
이 마음을 사실대로 비쳐 보셔서, 만약 의를 배반하고 은혜를 저버리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들이
함께 그 자를 죽이시옵소서.」
이렇게 의형제를 맺어 황건적 토벌에 참가한 세 사람은 나중에 조조의 위(魏)나라, 손권의 오(吳)나라와
함께 촉(蜀)나라를 세워 삼국을 형성한다.
이 <도원결의>는 민중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즉 청(淸)나라의
세조(世祖)는 명(明)나라를 치기에 앞서 몽고를 정복했는데, 그들이 배반할까 두려워해 형제의 동맹을
맺었다. 이 <도원결의>를 모방해, 만주를 형인 유비로, 몽고를 아우인 관우로 해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것을 맹세했던 것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으로, 처지가 어려운 사람끼리 서로 동정하고 돕는
것을 말한다. 출전은 후한 때 조엽(趙曄)이 편찬한《오월춘추 (吳越春秋)》「합려내전(闔閭內傳)」
同;같을 동 病;병 병 相;서로 상 憐;불쌍할 련
오나라 태자 광(光)은 자객을 시켜 오왕 요(僚)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 스스로를 오왕 합려(闔廬)라
칭했다. 그리고는 자객을 천거한 초나라 망명객 오자서(吳子胥)를 중용하여 대부로 임명하였다.
오자서는 초나라 비무기(費無忌)의 참언으로 아버지와 형이 살해당하자 복수를 맹세하고 초나라로
망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오왕 합려에게 자객을 천거한 것도 그의 힘을 빌어 초나라에 원수를 갚으려는
목적에서였다.
오자서가 벼슬하고 있을 때, 초나라에서 또 한명의 망명객 백희(伯喜)가 찾아왔다. 그 역시 비무기의
참언으로 아버지가 살해당한 처지였다. 오자서는 그를 천거해 그 역시 오나라의 대부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때 대부인 피리(被離)가 오자서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저 백희를 한번 본 것만으로 믿는 것입니까?」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같고 있기 때문이요. 왜 하상가(河上歌)에도 있지 않습니까?」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기고(同病相憐)
같은 근심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돌보아주네.(同憂相救)
깜짝 놀라 높이 날아오르는 새는
서로 따르면서 날아오르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앞물결 뒷물결이 함께 흐르네>.」
「하지만 북방의 오랑캐 말은 거친 북풍을 그리워하는 법이고, 남방 월나라의 제비는 따뜻한 햇빛을
그리워하게 마련 아닌가요?」
「정말 이유가 그것뿐입니까? 다른 믿지 못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만, 내가 보는 바로 그의눈길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아서 (鷹視虎步)
사람을 죽일 관상입니다. 결코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요.」
하지만 오자서는 결국 초나라에 매수된 백희의 참언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피리가 백희를
평한
<응시호보>는 난폭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자를 말한다. 자신이 어려울 때는 상대를
중시하다가도 일단 성공하게 되면 그 결과를 혼자 독차지하는 비정한 사람이다.」
두각(頭角)
학업이나 스포츠 등에서 재능과 실력이 남보다 특히 뛰어날 때 <두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두각의
낱말 뜻은 <머리 끝>인데, 출중한 능력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말이다. 출전은 한유가 지은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 자후는 당대의 명문장 유종원(柳宗元)의 자(字)다.
頭;머리 두 角;뿔 각
유종원은 어려서부터 영민해서 모든 일에 통달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젊은
나이인데도이미 완성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과거에 급제해 진사가 되면서 단연 <두각(頭角)>을 나타내었다.
세상 사람들은 유씨 집안에 훌륭한 자손이 나왔다고 말했다.
유종원이 진사에 합격한 것은 21세 때였다. <두각을 나타낸다(見頭角)>에서 <見>은 <현>으로 읽으며
<나타낸다>는 뜻이다.
등용문(登龍門)
<등용문>은 <용문(龍門)에 올라간다>는 뜻이다. 모든 난관을 이기고 목표를 성취했을 때 쓰이는 말이다.
옛날에는 과거 급제에, 요즘에는 입시나 고시에 합격해 입신출세할 때 쓰인다. 출전은 《한서》
「이응전(李膺傳)」.
登;오를 등 龍;용 룡 門;문 문
후한 말기는 환관들의 횡포가 극에 이른 시대였다. 그러나 일부 정의로운 신하들은 환관들의 횡포에
대항해 격렬한 항쟁을 벌이다가 끝내 <당고의 화>(黨錮之禍)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 이 정의로운 신하들 중 우두머리로서 이응(李膺)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홀로 가르침을
지키면서
항상 고결한 품위를 유지했는데, 명성이 점점 올라가 마침내 <천하의 모범은 이응>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특히 젊은 관료들이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그에게 인정받는 것을 그들은 <등용문>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용문>은 황하 상류에 있는 골짜기다. 이곳은 급류가 심해 평범한 물고기는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이 용문 아래서 몰려다니지만 여간해선 용문으로 오르질
못한다.
하지만 일단 오르기만 하면 순식간에 용으로 변한다고 한다.
마이동풍(馬耳東風)
무관심하거나, 남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을 때 <마이동풍>이란 말을 쓴다. 문자적인 뜻은
<동녘에서 부는 바람이 말의 귀를 지나간다.>이다. 유사한 말로는<소귀에 경읽기(牛耳讀經)>가 있는데,
말하는
사람의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출처는 이백이 지은 《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
(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이다. 왕십이라는 사람이 <추운 밤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에 젖음
(寒夜獨酌有懷)>이란 시를 지어 보내오자, 이백이 답한 시이다. 왕십이는 자신의 시에서 아무리 시와
문장에 재능을 갖고 있어도 명리에 급급한 관료들 세계에서는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을 읊었는데,
이백은 답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馬;말 마 耳;귀 이 東;동녘 동 風;바람 풍
「진나라의 왕자유(王子猶)는 간밤에 큰 눈이 오자 문을 열어놓고 술을 마셨소.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
그는 대안도(戴安道)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 배를 타고 그에게로 갔소. 그러나 도착할 때가 되자 그는
그냥 돌아오고 말았는데, 그 이유를 묻자 그는 <흥을 타고 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갔을 뿐 꼭 대안도를
만나려고 했던 것은 아니오.>라고 답했소이다.
즉, 이백은 자기도 이 같은 흥이 일어나서 이 시를 쓴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는 당시 관리들의 권력
다툼질을 따를 수는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읊거나 부(賦)를 짓는 일이 고작인데, 이 역시
아무리 많이 지어도 술 한 잔의 가치도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읊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지은 시를 들으면 누구나 머리를 흔들 걸세.
<마치 동쪽에서 부는 바람이 말의 귀를 스치는 것(馬耳東風)과 같을 뿐이지>.」
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시나 다른 작품에 대해선 아예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태가 그렇다 해도 현재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억지로 부귀영화를 바라지는 말라고 이백은
권고하고 있다.
막역지우(莫逆之友)
<거스름이 없는 친구> 아주 친한 친구 사이를 표현할 때막역(莫逆)한 사이라고 한다. 막역은
<거스름이 없다>는 뜻인데, 서로 간에 마음이 거스르지 않고 잘 맞는 것을 말한다. 출전은 《장자》
「대종사편(大宗師)」편.
莫;말 막 逆;거스를 역 之;어조사 지 友;벗 우
자사(子祀), 자여(子輿), 자리(子犁), 자래(子來) 네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누가 무(無)를 머리로 삼고, 생(生)을 등으로 삼고, 죽음을 엉덩이로 삼을 수 있겠는가? 누가
삶과 죽음, 유(有)와 무(無)가 한몸이란 걸 알겠는가? 우린 서로 함께 벗이 되자.」
네 사람은 서로 바라보면서 웃었다. 서로의 마음에 전혀 거스르는 바가 없어서 마침내 함께 벗이
되었다.
자상호(子桑戶),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이 서로 말했다.
「누가 서로 함께함이 없이 함께하며, 인위적 활동 없이(無爲) 행동할(爲) 수 있겠는가? 누가 하늘에
올라가 운무와 노닐고 무극(無極)의 경지를 떠돌면서 유한의 생을 잊고 무한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세 사람은 서로 바라보면서 웃었다.
마음에 전혀 거스르는 바가 없자 마침내 세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만전지책(萬全之策)
<가장 완전한 대책>. 흔히 <만전을 기한다>는 말로 많이 쓰인다. 출전은 《후한서》
「유표전(劉表傳)」.
萬;일만 만 全;온전할 전 之;어조사 지 策;꾀할 책
조조의 군대와 원소의 군대는 관도(官渡)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소의 군대는 10만이나
되었지만,
조조의 군대는 3만에 불과했다. 당시 형주의 목사 유표는 원소가 도움을 청하자, 이를 수락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또 조조를 도우려고도 안 하면서
그냥 천하의 대세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휘하에 있던 신하가 말했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으면, 양쪽의 원한을 받게 됩니다. 조조가 원소의 군대를
격파한
후 공격해 온다면, 우린 막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조조를 따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것이
<가장 완전한 대책(萬全之策)>입니다.
그러나 의심 많은 유표는 태도를 결정치 못하다가 결국 나중에 화근을 당했다.
30.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단기지교(斷機之敎)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를 해서 맹자를 교육하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단기지교(斷機之敎)
을 단 機;베틀 기
孟;맏 맹 母;어미 모 三;석 삼 遷;옮길 천 之;어조사 지 敎;가르칠 교 斷;끊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를 해서 맹자를 교육하다> <베틀의 실을 끊어서 맹자를 교육하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한 것과 베틀의 베를 끊은 데서 유래한다. 맹자는 당시
부국강병(富國强兵)에 매진하는 제후들에 반대하여 덕(德)의 정치를 역설한 사상가인데, 그가 위대한
사상가가 되기까지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가르침이 있었다고 한다. 출전은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엮은「열녀전(列女傳)」.
맹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홀어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맹자의
집은
처음에는 공동묘지 근처에 있었다. 어린 맹자는 묘지에서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 곡을 하거나
관을 묻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아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본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은 아이를 키울
곳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갔다. 어린 맹자는 이내 장사치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흉내를 내면서
놀았다.
<이곳도 아이를 기를 곳이 못된다.>
이렇게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다시 서당(書堂) 근처로 이사를 갔다. 맹자는 서당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그 흉내를 내면서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아이를 가르칠만한 곳이다>라고
생각해 그곳에서 살았다.
이 일화가 유명한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해서 맹자를 가르쳤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이다.
*
소년 시절 유학을 갔던 맹자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왔다. 맹자의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다가 맹자가
돌아오자 물었다.
「네 공부가 어느 정도 나아졌느냐?」
맹자가 답했다.
「그대로입니다.」
그러자 맹자의 어머니는 칼로써 베를 끊어 버렸다. 맹자는 벌벌 떨면서 그 이유를 물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공부를 그만두는 것은 내가 베를 끊는 것과 같다. 군자는 학문에 힘써 이름을 날리고, 모르는
것은
물어 지식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에 나가서는 위험을 멀리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너는 공부를 그만두었으니, 앞으로는 심부름이나 하면서 생계나 걱정할 것이다.
베를 짜서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짓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여자가 생업을 그만두거나 남자가 덕을
닦다가 타락하면 도둑이 되거나 남의 심부름꾼이 될 뿐이다.」
어머니의 말에 충격을 받은 맹자는 그때부터 쉬지 않고 학문을 쌓았으며,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에 들어가 마침내 천하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맹자 어머니의 이 가르침을 <베를 끊으면서 준 가르침(斷機之敎)>이라고 한다.
명경지수(明鏡止水)
<명경>은 <밝은 거울>, 즉 티끌 한 점 없는 깨끗한 거울이며, <지수>는 물결 하나 일지 않는 고요한
상태의 물을 말한다. 둘 다 사물을 어떤 굴절이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나타낼 때 쓰인다.출전은 《장자》 「덕충부(德充符)」편.
明;밝을 명 鏡;거울 경 止;그칠 지 水;물 수
신도가(申徒嘉)는 형벌로 발이 잘린 사람인데, 정자산(鄭子産)과 함께 백혼무인(伯昏無人)을
스승으로 섬겼다.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하직 인사를 하고 나가면 자네가 뒤에 남아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남아있겠네.」
그 다음 날 또 강당에서 만나 동석하게 되었다.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하직 인사를 하고 나가면 자네가 남아있게나.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남겠네. 지금 내가
나가려는데 자네가 남아 주겠는가 못하겠는가? 또 자네는 집정(執政)인 나를 보고서도 경의를 표하고
피하려하질 않으니 자네가 집정과 동등한가?」
신도가가 말했다.
「선생님의 문하에서 당신이 말한 집정 따위가 있는가? 당신은 자신이 집정인 걸 내세워 남을 업
신여기는 자이다. 나는 <거울이 밝게 닦여있으면(鑑明) 먼지가 앉지 못한다. 먼지가 앉아있다면
거울이 밝지 못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마음이 밝아져 잘못이
없게 된다>라고 들었다.
지금 당신은 백혼무인 선생에게서 대도를 배우고 있지 않은?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그
또한 잘못이 아닌가?」
또 형벌로 다리가 잘린 왕태(王태)에게 배우는 사람이 공자에게서 배우는 사람과 필적하였기 때문에
그 까닭을 공자의 제자 상계(常季)가 공자에게 묻는 내용이 나온다.
상계가 공자에게 물었다.
「왕태는 자기자신을 닦은 터라 자신의 지혜로 자기 마음을 이해했고, 그 이해한 마음으로 불변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자신을 닦은 것일 뿐 남을 위하거나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를 최고라고 여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흐르는 물에 비춰보지 않고 고요히 멈춰있는 물(止水)에 비추어 본다.
마찬가지로 오직 고요한 자만이 고요함을 바라는 뭇사람들을 고요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명경지수>는 이 두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명경>과<지수>를 <명경지수>로 합쳐서 사용하는 것은
밝고 깨끗한 마음(明鏡)이 곧 고요한 마음(止水)이기 때문이리라.
무릉도원(武陵桃源)
무릉도원은 이상향(理想鄕), 즉 유토피아를 말한다. <무릉에 있는 복숭아 숲>이f는 뜻이며
<도원경 (桃源境)>이라고도 하는데, 출전은 도연명(陶淵明)이 지은《도화원시병기(桃花源詩幷記)》이다.
武;굳셀 무 陵;언덕 릉 桃;복숭아 도 源;근원 원
진(晉)나라 때 호남성 동정호 서쪽에 있는 무릉(武陵)이라는 마을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그 어부는
계곡의 냇물을 따라 배를 저어 올라갔는데, 계곡 양쪽 언덕에 펼쳐진 복숭아 숲 쪽으로 가게 되었다.
한창 피어있는 복숭아꽃에 취해 어부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 저어갔다. 가도 가도 복숭아 숲은 끝나지
않았다. 붉은 복사꽃이 하늘하늘 춤추며 파란 풀밭에 내려앉고 있었다.
이윽고 복숭아 숲이 끝나자 산이 나타났는데, 그 산에는 사람 하나 빠져나갈 만한 작은 동굴이 뚫려 있었다.
어부가 배에서 내려 굴로 들어가 보니 갑자기 넓은 땅이 펼쳐졌다. 그곳엔 집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섰으며, 밭들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젊은 남녀들이 즐겁게 밭을 갈고 있었다.
어부는 놀라워하면서 이곳이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옛날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이곳으로 도망 온 사람들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뒤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깥세상의 물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부는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그곳에 며칠 묵었다. 그런 다음 원래 들어오던 길에다 표식을
하면서 무릉으로 되돌아왔다. 되돌아와서 그동안 겪었던 일을 태수에게 보고했다. 태수는 사람들을 시켜
그곳을 찾아보게 했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도원명이 살던 시대는 격변의 시대였다. 중앙정부는 불안정했으며, 지방의 호족과 군벌들은 끊임없이
투쟁을 일삼았다 게다가 한민족과 이민족 간의 전쟁, 남방 민족의 침략 등으로 혼란이 계속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였으니 일반 민중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이 무릉도원은 도원명이 그린 이상향이긴
했지만, 당시 민중들이 간절히 염원하던 이상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 흔히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이 대도의 차원에서 볼 때는 세속적인
효용성을 넘어선 쓸모 있는 것이다. 출전은 《장자》「인간세」편.
無;없을 무 用;쓸 용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초나라의 광접여(狂接輿)가 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봉새여, 봉새여. 덕이 쇠퇴하는 걸 어찌하겠느냐? 오는 세상은 기다릴 수 없고, 지나간 세상은 좇을
수가 없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은 그 공을 이루지만, 천하에 도가 없다면 그냥 살아갈 뿐이다.
지금 이 세상은 형벌을 겨우 모면하는 시대다. 복은 털끝보다 가볍건만 실어 나를 줄 모르고, 화는 땅보다
무겁건만 피할 줄을 모르누나. 그만둘지니, 그만둘지니, 덕으로써 사람을 상대하는 짓은 그만둘지니.
위태롭고 위태롭구나. 각지를 따라 돌아다니는 것은 위태롭구나.
산의 나무는 베어져서 스스로를 해치고, 기름은 불로 이용돼 스스로를 태우누나.계피는 먹을 수 있기에
나무가 베어지고, 옻은 칠할 수 있기에 그 나무가 쪼개진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쓸모 있는 것의
효용성만 알지, 쓸모 없는 것의 효용성(無用之用)은 모르는구나.
34. 문경지교(刎頸之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는 사귐
문경지교(刎頸之交)
둘도 없는 친구 사이를 <문경지교>라 하는데, 말뜻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는 사귐>이란 뜻이다.
생사를 같이 하는 친구 사이인 <생사지교(生死之交)>와 같은 말이다. 출전은 《사기》 「염파인상여열전
(廉頗藺相如列傳).」
刎;목벨 문 頸;목 경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진나라는 조나라의 성을 빼앗고 사람을 죽인 뒤 평화교섭을 하자고 통고해 왔다. 조나라 혜문왕은
두려워서 가지 않으려 하자, 대장군 염파와 인상여가 간했다.
「왕께서 가지 않는다면 조나라가 약하고 비겁하다는 걸 보여주는 꼴이 됩니다.」
결국 왕은 인상여와 함께 진나라에 가서 평화교섭을 했다. 진나라 왕은 주연이 벌어진 자리에서 조나라
왕을 굴복시키려 했지만 인상여의 기지와 용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나라로 돌아온 혜문왕은 인상여의
공을 높이 사 경대부(卿大夫)로 임명하였다. 그러자 대장군 염파는 인상여가 자신보다 높은 벼슬에 오르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조나라의 장군으로 적의 성을 빼앗고 전투에서 승리한 커다란 공적이 있다. 그런데 인상여는 입과
혀를 움직였을 뿐인데 나보다 벼슬이 높다. 게다가 인상여는 비천한 계급 출신이다. 내 어찌 이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기회만 오면 인상여에게 모욕을 주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조정에 들어갈 때도 병을 빌미로 들어가지 않아 염파와 서열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어느 날 인상여가 외출을 했는데, 멀리 염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수레를 옆 길로 돌려 염파가 지나갈
때까지 숨어 있었다. 그는 수레를 옆길로 돌려 염파가 지나갈 때까지 숨어 있었다. 그러자 인상여의
부하들이 말했다.
「저희들이 어른을 모시는 건 어른의 높은 뜻을 추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염장군을
피해 도망치시는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인상여가 말했다.
「너희들은 진왕과 염장군 중 누가 높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진왕이 높지요.」
「나는 진왕을 그의 궁전에서 꾸짖고, 그의 신하들에게도 모욕을 안겨주었다. 내 비록 우둔하다 해도
어찌 염장군을 두려워하리오. 다만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염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운다면 결국 함께 죽음에 이를 것이다. 내가 그를 피하는 것은
국가의 위난을 먼저 중시하고 나의 개인적 원망은 뒤로 돌리기 때문이다.」
염파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웠다. 그는 벌거벗은 몸에 가시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했다.
「비천한 사람이 장군의 관대한 아량이 이토록 깊은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목에 칼을 대도 변하지 않는 사이(刎頸之交)>가 되었다.
문전성시(門前成市)
<문 앞이 시장을 이룬다>. 출입하는 사람이 많아 붐비는 광경을 형용한 말이다. 흔히 잘 나가는 세도가의
집에는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끊이질 않는데, 이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표현한다. 출전은
《한서》「정숭전(鄭崇傳)」.
門;문 문 前;앞 전 成;이룰 성 市;저자 시
한나라 애제(哀帝) 때는 외척이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였다. 그러나 곧고 바른 마음을 가진 신하도
있었으니, 정숭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실의 인척이었지만 외척의 횡포를 자주 애제에게
간하였다. 그러나 애제는 외척들의 힘을 이기지 못해 점차로 정숭을 냉대하였다. 나중에 애제가 미소년인
동현(董賢)과 사랑에 빠지자 보다 못한 정숭은 간곡하게 간하였지만, 오히려 애제의 힐난만 들었다.
결국 그는 병이 들었다.
이때 평소에 정숭을 미워하던 상서령(尙書令) 조창(趙昌)이 애제에게 상소했다.
「정숭은 왕실의 친족과 통하면서 어떤 간사한 일을 꾸미고 있는 듯한 의심이 듭니다. 한번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애제는 이 말을 듣고 정숭을 문책했다.
「그대 집 문은 마치 시장처럼 북적거린다. 어째서 그들과 모의하여 임금인 나를 배척하려 하는가?」
정숭이 대답했다.
「저의 집 문 앞은 시장과 같지만, 제 마음은 고요한 물과 같습니다. 부디 달리 생각하시길 바라나이다.」
그러나 애제는 분노하여 정숭을 하옥시켜 혹독하게 문책했다. 정숭은 옥에서 죽고 말았다.
여기서 정숭이 말한 <저희 집 문 앞은 시장과 같다(臣門如市)고 한 말에서 <문전성시>가 나온 것이다.
동의어로는 <문정약시(門庭若市)>가 있다.
발본색원(拔本塞源)
<나무의 뿌리를 뽑고 물의 원천을 막아버린다>.
拔;뽑을 발 本;근본 본 塞;막을 색 源;근원 원
요즘은 범죄나 사회의 병리현상을 일으키는 요소를 근본적으로 없애려고 할 때발본색원 하겠다는 말을
자주 쓴다
. 요컨대 근원적인 처방을 할 때 쓰는 말이라 하겠다. 출전은 《춘추좌씨전》소공(昭公) 9년 조항에 나오는
주왕(周王)의 말이다.
「나에게 백부가 있는 것은 마치 의복에 갓과 관이 있는 것과 같고, 나무에 뿌리가 있고 물에 원천이 있는
것과 같고,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군주가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백부께서 갓을 부수고 관을 쪼갠다면,
또 나무의 뿌리를 뽑고 물의 원천을 막아 버린다면(拔本塞源), 지혜로운 군주를 끝까지 저버린다면,
설사 오랑캐라 할지라도 어찌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겠는가?」
이 글에서 보면 <발본색원>의 원래 뜻은 나무를 잘 자라게 하고 물을 잘 흐르게 하는, 요컨대 긍정적인
생명 현상을 북돋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하는 부정적인 의미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는 부정적인
요소를 뿌리 뽑는 근본 처방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바뀐 것이다.
방약무인(傍若無人)
<주위에 사람이 없는 듯이 행동한다.> 주변의 눈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출전은 《사기》 「자객열전(刺客列傳)」.
傍;곁 방 若;같을 약 無;없을 무 人;사람 인
진시황이 막 중국을 통일할 무렵, 위나라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 독서와 검술과 술을
좋아했는데, 위나라에서 등용되지 않자 여러 나라를 방랑하게 되었다. 그는 사람됨이 침착하고
사려 깊었으며, 각지에서 현자와 호걸들을 사귀었다. 연나라로 갔을 때, 그는 개잡는 백정과
축(筑;대나무로 만든 악기)을 잘 연주하는 고점리(高漸離)를 사귀었다. 시중에 나가 술을 마시다가,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로 화답을 했다. 그러다 감정이 극에 이르면, 서로
부여잡고 울었는데곁에 사람이 없는 듯 했다(傍若無人).
얼마 뒤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丹)의 청탁을 받고, 나중에 진시황이 된 진나라 왕 정(政)을 암살하기
위해 진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형가가 떠나는 날, 태자와 빈객들은 상복을 입고 역수(易水) 물가에서
전송했다.
이 때 고점리가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이에 화답하는 비장한 노래를 불렀다.
바람 쓸쓸하고 역수는 차가운데,
장사는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노라.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형가는 진나라로 들어가서 지도에 감추었던 비수로 진왕을 찌르지만 실패하여 죽임을 당한고 만다.
고점리도 나중에 축을 잘 연주한다는 소문을 들은 진왕에게 초대를 받아, 그 자리에서 진왕을 암살해
친구의 원수를 갚으려 했지만 실패하여 죽고 만다.
이 일화에서 보면, 방약무인은 원래 주변을 의식치 않고 자기 감정에 빠져있는 것 이다. 요즘처럼
<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 것 같지는 않다. 또 형가가 부른
<풍소소혜역수한>의 노래도 고사로서 유명하다.
배수진(背水陣)
<강을 뒤에다 두고 진을 친다.> 강을 뒤에다 두고 진을 치는 것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싸우는 군사는 사력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곳에서 결사적으로
항전하는 것을 <배수진을 치고 싸운다>고 말한다. 출전은《사기》「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
背;등 배 水;물 수 陳;진칠 진
한나라와 초나라가 패권을 다툴 때의 일이다. 한나라가 팽성(彭城)에서 초나라에게 패하자, 다른
제후국들이 초나라를 가까이하려 했다. 그러자 한나라 왕 유방은 한신을 시켜 이 제후국들을 정벌케 했다.
한신은 위(魏)나라를 정벌한 후, 조(趙)나라를 치려고 나섰다.
그러나 조나라를 치려면 정경(井徑)이라는 좁은 길을 지나야 했다. 이때 조나라의 이좌거(李左車)는
함안군(咸安君)을 이렇게 설득했다.
「한신의 군대는 식량을 천리 밖에 있는 본국에서 실어옵니다. 그런데 정경의 길은 너무 좁아서 일렬로
지나갈 수밖에 없으니 식량을 운반하는 부대는 자연히 뒤쪽으로 쳐지게 됩니다. 나는 기습부대를
이끌고 이 부대를 차단할 테니 당신은 진지를 지키면서 적과 싸우질 마십시오. 그리하면 적은
식량보급이 끊겨 자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함안군은 그러한 술수를 사도(邪道)라 치부하고 정면 대결을 원했다. 결국 한신은 1 만 명을 먼저
진군시켜 매복시킨 다음 강을 등지고 진을 쳤다(背水陣). 조나라 군대는 이 광경을 보고 한신을 병법을
모르는 자라고 비웃었다. 날이 밝자 한신의 군대는 정경 입구에서 적을 유인하여 강가의 군대와 합류한
다음 결사적으로 조나라의 군대와 항전했다. 조나라 군대는 이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한신의 군대를
쉽게 격파하질 못했다.
그 사이에 한신이 매복해 놓은 병사가 조나라 성을 함락하고, 여세를 몰아 조나라 군사를 격파했다.
함안군은 죽고 이좌거는 포로로 잡혔다. 한신은 이좌거를 동쪽에 앉히고 자신은 서쪽에 앉아 이좌거를
스승의 예로 대우했다.
싸움이 끝난 뒤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산을 등지거나 오른쪽에 끼고, 강이나 늪은 앞이나 왼편에 두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강을 등지고 싸웠는데 이것은 어떤 전법입니까?
한신이 대답했다.
병법에군사를 사지(死地)에 빠뜨려야 사는 길이 있으며 군사를 반드시 절망적인 상황에 놓아야 살아남는
길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나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졸을 끌고 싸워야 했다.
그래서 군사를 사지에 내몰아 스스로 결사항전 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한신의 <배수진> 전략이다.
오늘날에도 사업상의 경쟁이나 운동 시합 등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운다>는 식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백락일고(伯樂一顧)
<백락의 한 번 돌아봄.> 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보듯이,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출전은 《전국책》.
伯;맏 백 樂;즐길 락 一;한 일 顧;돌아볼 고
백락은 말을 잘 감정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한사람이 백락에게 말을 감정해 달라고 찾아왔다.
「제게준마가 한 마리 있습니다. 사정이 생겨서 이 말을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사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선생께서 한번 시장에 나와 말을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례는 후히
드리겠습니다.」
백락은 승락을 하고, 시장에 나가 말 주위를 돌면서 살폈다. 백락은 털 색깔이나 허리, 목 등을 감탄하는
눈길로 가만히 살피기만 했다. 그러다가 발길을 돌려 돌아가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이리저리 미련이
남는다는 듯이 이리저리 살폈다.
백락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이내 그 말이 명마인 걸 알고서 다투어 서로 사려고 했다. 그 때문에 말
값은 순식간에 열 배 이상으로 뛰었다.
한유가 지은 《잡설(雜說)》에도 백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천리마는 언제나 있지만, 이를 알아보는
백락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아무리 뛰어난 영웅, 호걸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평생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느니만 못하다.> 말로만 듣는 것보다는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는 뜻. 출전은 《한서》「조충국전(趙充國傳)」.
百;일백 백 聞;들을 문 不;아니 불 如;같을 여 見;볼 견
한나라 선제(宣帝) 때, 변방의 유목민족인 강(羌) 족이 난을 일으켰다. 한나라는 이들을 토벌하려고
했으나 싸움에 져 실패로 돌아갔다. 사태를 우려한 선제는 조충국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 토벌군 장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어보도록 했다. 조충국이 말했다.
「내 비록 늙기는 했지만, 나 이상 가는 자는 없소.」
조충국은 무제 때 흉노족 토벌에 참가했다가 적군에 포위당하자, 겨우 백 명의 군사로 적진을 뚫고
전군을 구출한 장수다. 그는 용맹하고 지모가 깊었으며, 병법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민족 사정에도
밝았다.
선제는 조충국을 불러 물었다.
「강족을 토벌하는데 어떤 전략을 쓸 것이오? 또 병역은 얼마나 필요하오?」
조충국이 답했다.
「백 번 듣는 것은 한번 보느니만 못합니다(百聞不如一見). 군대의 일이란 현지 사정을 살피지
않고서는 계책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당장 현지로 가서 사정을 살펴본 뒤 대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족은 오랑캐로 하늘의 뜻을 어겼으니 머지않아 멸망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노신을 믿고 너무
심려하지 마소서.」
결국 선제는 조충국의 계책을 받아들여 강족의 난을 진정시켰다.
41. 백발백중(百發百中) 백번을 쏴도 백번 다 맞춘다
<백번을 쏴도 백번 다 맞춘다.> 활을 쏘는데서 유래됐지만, 요즘에는 시험을 칠 때 답을 모두 맞추거나, 게임이나 놀이를 하는 데서도 쓰인다. 《사기》「주기(周紀)」에 실려 있다.
百;일백 백 發;필 발 中;가운데 중, 맞을 중
춘추시대의 유명한 변설가 소진(蘇秦)의 동생 소려(蘇勵)가 주나라의 난왕에게 한 이야기이다.
진나라의 장군 백기(白起)는 한나라와 위나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위나라의 장군 사무(師武)를 죽였다. 또 북쪽의 인(藺)과 이석(離石)을 빼앗은 뒤, 위나라 수도 양(梁)을 공격하려고 했다. 양을 뺏기면 주나라가 위태로워질 걸 걱정한 난왕은 사람을 보내 백기 장군을 설득했다.
초나라의 양유기(養由基)는 활을 잘 쏘았다. 그는 백보 떨어진 곳에서 활을 쏘아도백번 쏘면 백번 다 맞추었다 (百發百中).사방의 수천 관중들이 다활을 잘 쏜다고 말하는데, 한 사람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잘 쏘는군. 활 쏘는 법을 가르칠만한데.」
이 말을 들은 양유기가 화를 내면서 활을 버리고 칼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내게 활을 가르쳐 주겠는가?
그 사람이 말했다.「나는 활 쏘는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말한 것이 아니오. 백보 떨어진 곳에서 버들잎을 백발백중 맞춘다 해도 사람들이 잘 쏜다고 말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좋소. 만약 계속 쏘다가 기운이 떨어지고 팔 힘도 없어지면, 활도 기울고 화살도 빗나가게 될 거고, 화살 하나라도 빗나가게 된다면, 지금까지 백발백중이던 것도 다 소용없어질 거요.」
이 이야기는 백기 장군이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면서 다시 양을 공격해 뺏으려고 하지만, 만약 단번에 뺐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공로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니출전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권고한 것이다.
42. 백전백승(百戰百勝)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이긴다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이긴다.> 싸울 때마다 언제나 승리한다는 뜻이다. 흔히 스포츠나 게임에서 백전백승이란 말을 쓸 때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보다 못한 차선책을 지칭할 때 쓰인 말이다. 출전은 《손자병법》.
百; 일백 백 戰; 싸울 전 勝; 이길 승
유명한 손자(孫子)가 쓴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용병(用兵)의 법도에서 최선책은 적국을 온전히 둔 채로 굴복시키는 것이고, 차선책은 적국을 깨트려서 굴복시키는 것이다. 또 적의 군(軍)을 온전히 둔 채로 굴복시키는 것은 최선책이고, 적의 군을 깨트려서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 적의 여(旅)를 온전히 둔 채로 굴복시키는 것은 최선책이고, 적의 여(旅)를 깨뜨려서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 적의 졸(卒)을 온전히 둔 채로 굴복시키는 것은 최선책이고, 적의 졸을 깨뜨려서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 적의 오(伍)를 온전히 둔 채로 굴복시키는 것은 최선책이고, 적의 오를 깨트려서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 그러므로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百戰百勝)해도 최선책은 아니니, 싸우지 않고 적의 병사를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선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군(軍), 여(旅), 졸(卒), 오(伍)는 손자 시대의 군대 편제인데, 1만2천5백 명을 <군>, 5백 명을 <여>, 1백 명을 <졸>, 5명을 <오>라고 하였다.
<실력이 비슷비슷해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 곧잘 <백중지간>이란 말을 쓴다. 그러나 백중(伯仲)은 원래 형제간의 순서에서 나온 말이다. 가장 맏형을 백(伯), 그 다음을 중(仲), 셋째를 숙(淑), 그리고 맨 끝을 계(季)라고 한 것이다. 형제간은 비슷하여 닮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출전은 《예기(禮記)》 「단궁(檀弓)」편에 기록된 주나라의 관례에 보인다.
伯;맏 백 仲;버금 중 之;어조사 지 間;사이 간
자식이 태어나면 3개월 만에 이름을 짓고, 스무 살이 되면 성인이 되는 관(冠)을 씌우고(그래서 20살을 약관(弱冠)의 나이라고 한다) 자(字)를 짓는다. 나이 쉰 살이 되면 자(字) 위에다 백(伯), 중(仲) 등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고, 죽으면 시호를 내린다. 이것은 주나라의 관례이다.
공자의 탄생을 기록한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를 보면 공자의 할아버지가백하(伯夏)와 숙량흘(淑梁紇)을 낳았고, 이 숙량흘이 안씨의 여자와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백하가 맏형이고 숙량흘이 셋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백중지간 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위(魏)나라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문인끼리 서로 경시하는 것은 옛날부터 그랬다. 부의(傅儀)와 반고(班固)는 서로 백중지간일 뿐이다.」
<넓적다리에 살이 붙은 것을 한탄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는 것을 한탄한 말이다. 또 능력을 발휘하고 싶으나 기회가 오지 않는 걸 한탄한 말이기도 하다. 출전은 《삼국지》 선주전주(先主傳注)
비;넓적다리 비 肉;고기 육 之;어조사 지 嘆 탄식할 탄
삼국 시대 때, 조조는 허창(許昌)에서 스스로 대장군이라 칭하면서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유비도 조조의 주선으로 좌장군에 임명되었지만, 조조를 죽이려던 계획이 탄로나자 허창을 탈출했다. 각지를 6년간 전전한 끝에 형주 땅의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했다. 조조가 하북을 평정하는 동안, 유비는 신야(新野)라는 작은 성을 지키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나이는 이미 오십이 가까웠다.
어느 날 유표와 술을 마시다가, 유비는 변소를 가게 되었다. 변소에서 그는 자기 넓적다리에 살이 두둑이 붙은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자리에 돌아오자, 유표가 그의 처연한 표정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다.
유비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늘 말을 타고 돌아다녀서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을 타지 않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살이 붙었습니다. 세월 가는 것이 이토록 빨라 몸은 늙는데 아직도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슬퍼하는 것입니다.」
유비는 <비육지탄>을 수년 더 계속했으나, 마침내 적벽의 싸움에서 명성을 떨친 뒤 양자강 중류의 요충지대인 강릉(江陵)까지 진출하였다. 유비가 강릉까지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는 망연자실하여 글씨를 쓰던 붓을 자기도 모르게 떨어트렸다고 한다. 유비는 그 뒤 촉한(蜀漢)을 세워 삼국의 하나로서 확고부동한 기반을 구축한다.
<온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온다.>는 뜻이다. 완전히 궁지에 몰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일 때 사면초가라는 말을 쓴다. 출전은 《사기》「항우본기(項羽本紀)」.
四;넉 사 面;얼굴 면 楚;초나라 초 歌;노래 가
초나라 왕 항우와 한나라 왕 유방의 패권 다툼은 초기에는 항우에게 유리하다가 후기로 가면서 유방에게 유리했다. 항우는 유방에게 강화를 청하여 홍구(鴻溝)를 기점으로 천하를 이분하였다.
강화를 체결한 항우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갔다. 유방 역시 서쪽으로 가려는데, 참모인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반대했다.
「지금이야말로 한나라와 초나라의 세력 판도가 분명합니다. 이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한신을 비롯한 한나라 군사들은 항우의 군대를 추격하여 해하(垓下)까지 이르렀다. 항우의 군대는 해하성에 들어박혔으나, 군대는 적고 식량도 다 떨어졌다. 게다가 한나라 군대는 성을 몇 겹으로 포위하고 밤마다 초나라 노래를 불렀다. 항우는 크게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군사가 이미 초나라를 정복했는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이것은 한나라 군사가 초나라 노래를 불러 해하성의 항우와 그의 군사들을 고립시키려는 심리전술이다.
밤이 되자 항우는 스스로 이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항우는 비분강개하면서 시 한 수를 지었다.
힘은 산을 뽑아버리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는데
시세가 불리하니 추(騅)도 가려 하지 않는구나.
추도 가려하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우미인아, 우미인아, 그댈 어찌할 것인가?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추不逝
추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이 시에서 말하는 <추>는 항우의 애마(愛馬)를 말하며, <우미인>은 항우의 애첩을 가리킨다. 시를 읊고 난 항우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고 좌우의 사람들도 모두 슬피 울었다.
<뱀의 발>. 뱀을 그리는데 발을 덧붙이다(畵蛇添足)를 줄인 말.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을 덧붙임으로써 일을 그르칠 때 <사족을 붙인다>고 말한다. 또 책을 다 쓰고 나서 뒤에 몇 마디 덧붙일 때 겸양의 표현으로 사족이라고 한다.
蛇;뱀 사 足;발 족
출전은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
초(楚)나라의 재상 소양(昭陽)은 위(魏)나라를 쳐서 군대를 와해시키고 여덟 개의 성을 빼앗은 뒤, 다시 선봉부대를 돌려 제나라를 공격했다.
그때 제나라에서 진진(陳軫)이라는 세객(說客;유세하는 선비)을 사자로 보냈다. 그는 소양을 만나 전쟁에 이긴 것을 축하한 뒤 이렇게 물었다.
「초나라의 법에서 장군을 죽이고 군대를 와해시켰을 경우 벼슬은 어떻게 됩니까?」
소양이 답했다.
「벼슬은 상주국(上柱國;최고의 공로를 세웠을 때 주는 벼슬),작위는 집규(執珪;최고의 작위)가 될 것이오.」
「그보다 높은 지위는 무엇입니까?」
「오직 영윤(令尹;재상)일 뿐이오.」
「영윤은 고귀한 지위입니다. 그래서 왕도 영윤을 두 사람씩 두지는 않습니다. 암암리 비유를 통해 당신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초나라의 제사를 맡은 사람이 임금의 시종들에게 큰 잔에 술을 담아 주자, 시종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몇 사람이 마시기엔 모자라지만, 혼자 마시면 충분할거요 .땅에 뱀을 그리는데 제일 먼저 그린 사람이 마시도록 합시다.>
그래서 한 사람이 먼저 뱀을 그렸습니다. 그는 술을 마시려고 왼손으론 잔을 잡고 오른 손으론 뱀을 그리면서 <난 발까지 그릴 수 있어>라고 말했죠. 그러나 그가 발을 그리고 있는 사이 또 한사람이 뱀을 그린 뒤 술잔을 뺏으면서 말했습니다.
<뱀은 원래 발이 없네. 발을 그리면 안되는 걸세.>
이렇게 말하고는 그 술을 마셔버렸습니다. 뱀의 발 (蛇足)을 그리던 사람은 결국 술을 마시지 못한 겁니다.
지금 당신은 초나라의 재상으로 위나라를 공격해 장군을 죽이고 군대를 와해시켜 여덟 개의 성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세를 몰아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제나라는 당신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명성을 떨쳤으며, 더 오를 벼슬도 없습니다.
전투에서 패하는 일도 없고, 더구나 멈출 줄을 모르는 자는 조만간 그 몸은 죽고 벼슬은 후임자가 맡게 될 것입니다. 뱀의 발을 그리는 일과 똑같습니다.」
소양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군대를 철수시켰다.
우리는 <살신성인의 자세>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자신의 이익이나 영달보다는
殺;죽일 살 身;몸 신 成;이룰 성 仁;어질 인
보다 큰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자세를 말한다. 원래의 말 뜻은<자신을 희생하여 인덕(仁德)을 이룬다>인데,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말했다.
「뜻있는 선비(志士)와 인덕이 있는 사람(仁人)은 자신의 삶을 위해 인(仁)을 해치는 일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희생하여 인(仁)을 성취한다.」
여기서 <지사 (志士)>는 도에 뜻을 둔 사람이고, 인인(仁人)은 어진 덕을 갖춘 사람이다. 원래 인을 닦는 데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지사나 인인(仁人)은 늘 인(仁)을 성취할 것을 생각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도 즐거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 번 초가집을 돌아보다. 사람을 맞이할 때 모든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출전은 《삼국지》「제갈량전」.
三;석 삼 顧;돌아볼 고 草;풀 초 廬;띠집 려
조조에게 쫓기고 있던 유비에게 서서(徐庶)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유비는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서로 좋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서서가 말했다.
「제갈공명은 숨어있는 용(臥龍)입니다. 장군께서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유비가 말했다.
「당신이 모시고 오시오.」
「그 분은 가서 뵈어야 하지, 불러들일 수는 없습니다. 직접 저와 함께 가서 뵙지요.」
그리하여 유비는 마침내 제갈량을 찾아 가게 된다. 그것도 세 번을 찾아가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삼고초려의고 (顧)는돌아보다 는 뜻인데, 원래 「제갈량전」에는 <찾아가다> 는 <왕(往) 자가 쓰였다. 즉<세 번 초가집을 찾아갔다>는 뜻이다. 다만 제갈량이 유비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서 겸손의 표현으로 <고>자를 썼기 때문에<삼고초려>가 된 것이다.
<새옹의 말>이란 뜻. 새옹은 변방에 사는 늙은이. 인간의 길흉화복은 일정치 않아 예측할 수 없으니, 화(禍)도 슬퍼할게 못되고 복(福)도 기뻐할게 못 된다는 의미이다. 흔히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로 쓰인다. 출전은 《회남자》「인간훈(人間訓)」편.
塞;변방 새 翁;늙은이 옹 之;어조사 지 馬;말 마
국경 요새 근처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노인의 말이 아무 이유 없이 오랑캐 땅으로 들어갔다. 이웃 사람들은 그를 딱하게 여겨 위로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조금도 꺼리는 기색 없이 말했다.
「이 일이 어찌 복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리오.」
과연 몇 달이 지나자,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사람들은 모두 노인을 축하했다. 하지만 노인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어찌 재앙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리오.」
노인의 집에는 좋은 말들이 점점 불어났다. 헌데 노인의 아들이 승마를 좋아하다가, 그만 다리뼈를 부러뜨렸다. 절름발이가 된 아들을 불쌍히 여긴 이웃들이 노인을 위로하자, 노인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어찌 복이 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있으리오?」
1년이 지나자, 오랑캐가 국경을 침입해 들어왔다. 건장한 사람들은 모두 나가 싸워 열에 아홉은 죽고 말았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라서 무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법이다. 그 변화는 끝간 데가 없어 예측할 수 없다.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절친한 사이. 원래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였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쓰인다. 출전은 《삼국지》 「촉지(蜀誌)」.
水;물 수 魚;고기 어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삼국 시대 때, 조조는 강북의 땅을 평정하고 손권은 강동에서 세력을 얻어 기반을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유비는 아직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관우나 장비 같은 뛰어난 장수가 있었지만, 천하를 도모할만한 지략이 뛰어난 재사가 없었다. 그러다가 삼고초려를 한 끝에 제갈공명을 얻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유비는 제갈공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당시 공명의 나이는 젊었지만, 유비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함께 침식을 했다. 그러자 관우와 장비는 젊은 사람에게 너무 과분한 대우라고 불만을 품었다. 그때 유비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게 공명이 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에 있는 것과 같다. 다시는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기 바란다.」
관우와 장비는 더 이상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 어느 한쪽이 멸망하면 다른 한쪽도 위태로워지는 관계를 말한다. 출전은 《춘추좌씨전》.
脣;입술 순 亡;잃을 망, 망할 망 齒;이빨 치 寒;찰 한
춘추 시대 때, 진나라 헌공(獻公)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병합해 나갔다. 그는 괵(虢)나라를 치려고 했는데, 그러자면 우나라를 지나가야 했다. 그래서 헌공은 괵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주면 많은 재물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우공이 진나라에게 길을 내주려고 하자 신하 궁지기(宮之奇)가 간했다.
「괵은 우나라의 외곽입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진나라에게 길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됩니다. 전에 한번 길을 내준 것도 심한 경우인데, 어찌 다시 할 수 있습니까? 속담에 <수레의 바퀴와 그 바퀴에 대는 보조 판자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다(脣亡齒寒)>고 말했는데, 이는 바로 우나라와 괵나라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나라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공은 궁지기의 말을 따르지 않고 우나라에 길을 내주었다. 화가 미칠 걸 두려워 한 궁지기는 가족들을 이끌고 우나라를 도망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나라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과연 진나라는 괵을 멸망시킨 뒤,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공격해서 멸망시켰다.
순망치한 은 순치보거(脣齒輔車)로도 쓰이는데, 이 말은 위에 나온 속담 전체를 축약한 것이다.
<쓸데없는 말>, <거짓말>을 뜻한다. 말만 앞세우고 실천이 따르지 않을 때, <식언한다>, <식언을 밥 먹듯이 한다>는 표현을 쓴다. 출전은 《서경》「탕서(湯誓)」편.
食;먹을 식 言;말씀 언
<탕서(湯誓)>는 <탕왕의 맹서>이다. 은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의 잔학무도함을 응징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면서 백성들에게 맹서한 말인데, 그 끝에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바라건대, 하늘의 벌을 내릴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시오. 내 그대들에게 큰 상을 줄 것이오. 그대들은 반드시 믿을지니, 짐은 결코 <식언>을 하지 않소. 」
<사실에 입각해서 올바름을 구하다>. 학문을 탐구할 때 관념적인 논의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의 사실을 확인하고 경험함으로써 올바름을 끌어내는 태도를 말한다. 출전은 《한서(漢書)》 「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
實; 열매 실 事; 일 사 求; 구할 구 是; 옳을 시, 이 시
한나라 경제의 아들 중 하나인 유덕(劉德)은 하간헌왕이라고도 하는데, 평생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즐기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어느 날 유덕이 당시의 황제인 한무제(유덕의 형인 유철(劉徹))와 학문을 논했는데, 한무제는 그의 학문과 학문에 임하는 태도를 크게 찬양하였다. 《한서》를 지은 반고(班固)는 이 유덕의 학문을 이렇게 평가했다.
「학문을 닦고 옛 것을 좋아했는데, 실제 사실에 입각해서 올바름을 구하였다(修學好古 實事求是).」
그리고 이 <실사구시>에 대하여 당 나라 때의 학자 안사고(顔師古)는 이렇게 주석을 붙였다.
<사실에 입각하는 것으로써 매양 참되고 올바름을 구하는 것이다.>
학문이 현실과 동떨어진 공론(空論)에 머물 때는 이를 개혁하기 위해서 늘 실사구시의 정신을 표방했는데, 송나라 때의 성리학도 실사구시를 내세웠고 조선 후기의 실학파도 도학(道學)의 공리공론을 피하기 위해서 실사구시를 표방한 실학을 주장하였다.
<눈 속의 못>. 자기에게 장애나 방해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눈에 가시라는 우리말과 같은 뜻. 출전은 《오대사(五代史)》 「조재례전(趙在禮傳)」.
眼;눈 안 中;가운데 중 之;어조사 지 釘;못 정
당나라 말기, 천하는 어지러워지고 관리들의 횡포는 극에 이르렀다. 탐관오리 조재례는 뇌물을 바쳐 출세한 뒤, 송주(宋州)의 절도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송주 땅의 백성들은 그의 착취로 인해 심한 고통을 겪었다. 나중에 벼슬을 그만두고 떠나게 되자, 송주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눈 속의 못(眼中之釘)이 빠졌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말을 들은 조재례는 다시 1년간 유임할 수 있도록 청원하였다. 그의 뜻대로 청원이 받아들여지자, 그는 발정전(拔釘錢못을 빼는 돈)을 발행해 더욱 착취를 했으며, 내지 않는 자는 형벌에 처했다.
같은 뜻으로 정(釘) 대신 정(丁)을 쓰기도 한다. 이때의 정(丁)은 정위(丁謂)라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내용은 「속자치통감장」편에 나온다.
남송 때의 사람 정위는 구공(寇公 구준을 말함)을 참소하여 깎아 내렸다. 그러자 천하 사람들이 이렇게 노래를 지어 불렀다.
「천하의 안녕을 이루고 싶다면, 반드시 눈 속의 정위(眼中丁)를 뽑아버려야 한다.
천하의 태평 시절을 이루고 싶다면, 구공을 불러들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원래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 (懸羊頭賣狗肉)>는 말을 줄인 것이다. 겉으로는 좋은 간판을 내걸지만 속으로는 나쁜 물건을 판다는 뜻이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양 머리를 걸어놓고 말고기를 판다>, 소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판다>, <소뼈를 문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판다> 등이 있다.
羊;양 양 頭;머리 두 狗;개 구 肉;고기 육
출전은 《항언록(恒言錄)》이지만,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실려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춘추 시대 때 제나라 영공(靈公)은 아름다운 미녀를 남장 시켜놓고 감상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자 곧 제나라에는 남장한 미녀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결국 영공은 궁중 밖에서는 여인들이 남장을 하지 못하게 영을 내렸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영공이 그 이유를 안자에게 묻자 안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께서는 궁중 안에서는 남장을 허용하면서도 궁중 밖에서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소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어째서 궁중에서도 남장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습니까? 안에서 금지한다면 궁 밖에서도 감히 남장하질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영공은 궁 안에서도 남장하는 것을 금했다. 그러자 하루도 안 되어 전국에서 남장여인이 사라졌다고 한다.
<양포의 개>. 겉모습이 바뀐 것을 보고 알맹이도 다른 것이라 판단할 때 양포지구라는 말을 쓴다. 출전은 《한비자》 「세림(說林)」편.
楊;버들 양 布;베 포 之;어조사 지 狗;개 구
양주(楊朱)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다>는 위아설(爲我說)로 유명한 전국시대의 사상가이다.
그에게는 동생이 있었는데, 이름을 양포라 했다.
하루는 양포가 흰옷을 입고서 외출을 했다. 그런데 하늘에서 비가 내리자, 흰옷을 벗고 검은 옷을 입고 돌아왔다. 그러자 집에서 기르는 개가 양포를 알아보지 못하고 짖었다. 양포가 화가 나서 개를 때리려고 하자, 그것을 본 양주가 말했다.
「개를 때리지 마라. 가령 너의 개가 흰 모습으로 갔다가 검은 모습으로 돌아오면, 너라고 어찌 괴상하게 생각지 않겠느냐?」
<어부의 이익>. 둘이서 이해를 다투다가 제3자가 그 이익을 차지할 때 <어부지리>를 취했다고 말한다. 출전은 《전국책》.
漁;고기잡이 어 父;아비 부 之;어조사 지 利;이익 리
전국시대 때 연나라는 서쪽으론 조나라, 남쪽으론 제나라와 인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양국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어느 해 연나라에 흉년이 들자, 이를 기화로 조나라는 연을 침략하려고 했다. 연나라 소왕(昭王)은 많은 병사를 제나라로 보냈던 터라 조나라와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대(蘇代)를 보내 조나라 왕을 설득토록 했다. 소대는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의 동생으로 그 역시 연나라에서 세객(說客)으로 활약했다. 그가 조나라 혜왕을 찾아가 말했다.
「이번에 제가 이리로 오는 길에 역수(易水)를 건너다가, 큰 조개 하나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쬐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황새 한마리가 날아와 조개의 살을 쪼자, 기겁을 한 조개는 입을 다물어 황새의 주둥이를 물었습니다.
황새가 말했습니다.
<오늘도 비가 오지 않고 내일도 비가 오지 않는다면, 너는 말라 죽을 거야.>
그러자 조개도 황새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도 놓지 않고 내일도 놓지 않는다면, 너야말로 죽고 말겠지.>
둘은 서로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어부가 둘을 모두 잡아 버렸습니다.
지금 조나라는 연나라를 치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나라와 연나라가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면, 강대한 진나라가 어부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부디 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혜왕은 즉시 침공 계획을 중지했다.
여기서 조개와 황새가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양보하지 않는 형세를 방휼지세 (蚌鷸之勢)라 한다. 방휼지세를 틈 타어부지리를 얻는다면, 남들이 팽팽하게 싸우는 틈을 타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58. 역린(逆鱗) 거꾸로 박힌 비늘
<거꾸로 박힌 비늘>이란 뜻. 원래 임금의 분노를 살 때, <역린을 건드렸다>고 말한다. 요즘은 상대의 아픈 곳을 건드린다는 폭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출전은《한비자》 「세난(說難)」편.
逆;거스를 역 鱗;비늘 린
용이라는 동물은 부드럽게 다스리면 타고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용의 목구멍 아래에는 직경 한자쯤 되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다. 만약 사람이 그 비늘을 건드리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군왕 중에서도 <거꾸로 박힌 비늘>을 가진 사람이 있다. 군왕을 설득하려는 자가 그 군왕의거꾸로 박힌 비늘 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설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비자》의 「세난」편은 군왕 설득의 어려움을 기술한 것이다. 다음은 그 첫머리 구절인데, 설득의 어려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대가 명예나 지조를 추구하는데 이익으로 설득하려 한다면, 상대는 자신을 천하게 생각해 멀리할 것이다.
상대가 이익을 추구하는데 명예나 지조로 설득하려 한다면, 세상일에 어둡다고 간주해버릴 것이다.
상대가 속으론 이익을 도모하면서도 겉으로만 명예와 지조를 추구한다면, 설사 명예와 지조로 설득한다 해도 겉으로만 받아들이지 속으로는 싫어한다. 또 이익으로 설득한다 해도 속으로만 받아들이지 겉으로는 저버릴 것이다.
상대가 속으론 이익을 도모하면서도 겉으로만 명예와 지조를 추구한다면, 설사 명예와 지조로 설득한다 해도 겉으로만 받아들이지 속으로는 싫어한다. 또 이익으로 설득한다 해도 속으로만 받아들이지 겉으로는 저버릴 것이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 터무니없이 불가능한 일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출전은 《맹자》 「공손추장」.
緣;연할 연 木;나무 목 求;구할 구 魚;고기 어
맹자는 인의를 중심으로 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장했는데, 이는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제패하려는 패도정치(覇道政治)와는 대립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제나라 선왕(宣王)은 맹자에게 춘추시대 때 패업을 이루었던 제환공과 진문공의 일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제후국의 통일이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신하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나라와 원수가 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오, 좋을 리가 있겠소. 하지만 그렇게 하려는 것은 내게 커다란 바람이 있기 때문이오.」
「그 바람이 무엇인지 들려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선왕은 맹자가 인의에 따르는 왕도정치를 말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웃기만 하고 말하지 않았다. 맹자가 다시 말했다.
「살찐 고기와 맛있는 음식이 부족하십니까, 가볍고 따뜻한 옷이 부족합니까? 아니면 아름다운 빛깔을 감상하는 게 부족하십니까?」
「아니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오.」
「그렇다면 왕께서 바라시는 걸 알겠습니다. 영토를 확장하여 진나라나 초나라 같은 큰 나라를 굴복시키고, 나아가 중국 전체를 지배함으로서 오랑캐까지도 복종시키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무력을 통해 그러한 욕망을 이루려는 것은 마치<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 (緣木求魚)>과 같습니다.」
「그게 그토록 터무니없는 일이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보다 더 힘들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짓은 고기만 얻지 못할 뿐, 후환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은 백성들을 괴롭히고 나라를 망쳐 재난을 초래할 뿐입니다.」
<오 리나 되는 안개 속에 있다.> 안개가 오 리나 뻗쳐 있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고 만다.이 뜻이 바뀌어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 어찌할 줄을 모른다 는 뜻으로 쓰인다. 출전은 《후한서》 「장해전(張楷傳)」.
五;다섯 오 里;마을 리 霧;안개 무 中;가운데 중
장해는 뛰어난 학자로 덕행이 높았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그 명성도 높았지만, 관직에 나가는 걸 싫어해 산속에 은거했다. 황제인 순제(順帝)가 불렀지만, 병을 이유로 나가지 않았다.
장해는 도술을 좋아해서 오 리나 되는 안개를 일으킬 수 있었다. 당시 배우(裵優)라는 사람도 삼 리의 안개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는 장해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그를 따라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장해는 모습을 숨기면서 그를 보려하지 않았다.
나중에 배우는 자기가 일으킨 안개를 이용해 악행을 하다가 체포됐는데, 장해로부터 도술을 배웠다고 진술했다. 장해도 결국 투옥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장해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어 석방이 되었다. 그는 70세까지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여기서 장해가 일으킨 오 리의 안개에서오리무중 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한 배에 타다.> 원수나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함께 있는 경우를 오월동주라 한다. 출전은 《손자》 「구지(九地)」편.
吳;오나라 오 越;월나라 월 同;같을 동 舟;배 주
춘추시대 때,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오나라의 군사전략가로 후세까지 이름을 남긴 손무(孫武)는《손자병법》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군사를 통솔하는 데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마지막 지(地)를 사지(死地)라 하는데, 두려움 없이 나가 싸우면 살길이 있고 겁을 먹고 위축되면 패망하는 필사의 지이다. 따라서 사지에서는 군사와 장수가 한마음 한뜻이 되서 싸워야 한다.
사지에 있을 때, 유능한 장수는 군사를 솔연(率然)처럼 부린다. 솔연은 상산(常山)에 사는 큰 뱀인데, 머리를 치면 꼬리로 반격하고 꼬리를 치면 머리로 덤벼들며, 몸 한가운데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덮친다고 한다. 이처럼 유능한 장수는 세력을 하나로 합쳐서 운용한다.
옛부터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를 미워한다. 하지만 두 나라 사람이 한 배를 타고 가다(吳越同舟) 비바람을 만난다면 두 사람은 평소의 적개심을 잊고 서로의 손발이 되서 도울 것이다. 이처럼 전차와 말을 꽉 붙들어 매어 방비를 튼튼히 한다 해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군사들의 필사적으로 뭉친 마음이다.」
이 일화에서 보듯이, 적대 관계에 있는 사이라도 필요할 때는 서로 돕는 것을 오월동주라고도 한다. 또 <상산의 뱀>은 앞뒤가 상응하는 불패의 진용, 전혀 틈이 없는 만반의 준비태세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까마귀 떼와 같은 무리> 원래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군대를 말한다. 지금은 통솔이 잘 되지 않는 일반군중을 가리킬 때도 이 말을 쓰는데, 흔히 <오합지졸>이란 말로 자주 쓰인다. 출전은 《후한서》 「경감전(耿엄傳)」.
烏;까마귀 오 合;합할 합 之;어조사 지 衆;무리 중
왕망이 세운 신(新)나라가 망하자,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 중 한나라 황제 성제(成帝)의 아들이라고 사칭한 왕랑(王郞)은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황제라 칭하면서 그 위세가 당당하였다. 그래서 왕망의 신나라를 멸망시킨 유수(劉秀;나중에 후한 광무제가 됨)는 군사를 이끌고 그를 정벌하러 나섰다. 평소 유수를 흠모하던 경감은 그의 휘하에 들어가려고 군대를 이끌고 달려갔다. 그러나 부하인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반대하면서 말했다.
「왕랑은 성제의 아들로서 한나라 혈통의 직계입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어디로 가자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경감은 화가 나서 칼을 뽑으며 말했다.
「왕랑은 황제의 이름을 사칭하면서 난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돌격대로 공격하면, 왕랑의까마귀 떼 같은 군대 (烏合之衆)를 격파하기란 썩은 나무를 쓰러트리듯이 쉬운 일이라서, 반드시 놈을 생포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놈과 한패가 된다면 얼마 안가 패망해서 일족이 몰살될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도주해서 왕랑에게 갔고, 경감은 유수에게 가서 수많은 공훈을 세워 후한을 건국하는 데 일조를 했다.
<옛 것을 익히고 나서 새로운 것을 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나 학문 등을 먼저 충분히 익히고, 그 바탕 위에서 오늘의 새로운 사실을 습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출전은 《논어》 「위정(爲政)」편.
溫;따뜻할 온 故;옛 고 知;알 지 新;새로울 신
공자가 말했다.
「옛 것을 익히고 나서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공자가 말한 예 것은 주나라 때의 문물(文物), 특히 예(禮)와 악(樂)을 말한다. 공자는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는 어지러운 시대에 주나라의 제도문물과 그 정신을 되살리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이러한 옛 전통 위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제대로 된 정치와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64. 와신상담(臥薪嘗膽) 장작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
<장작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 딱딱한 장작 위에서 자거나 쓰디쓴 쓸개를 맛보는 등, 자기 몸에 고통을 주어서라도 피맺힌 원한을 잊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다. 또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채찍질하는 말로도 쓰인다. 출전은와신(臥薪)은 《십팔사략》, 상담(嘗膽)은 《사기》 세가(越世家)이다.
臥;누울 와 薪;장작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오나라 왕 합려(闔閭)는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공격했으나, 월나라 왕 구천(勾踐)에게 패배를 당해 죽음을 맞이했다. 임종에 이른 그는 아들 부차(夫差)를 불러 당부했다.
「부차야, 너는 월나라가 네 아비를 죽였다는 걸 잊지 말아라.」
「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부차는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늘 <장작에 누워(臥薪) 잠을 잤다. 그리고 출입구에 사람을 세워놓고 이렇게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나라가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잊었는가?」
한편 월나라 왕 구천은 부차가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먼저 오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부차가 이끄는 오나라 군대에게 패하자, 나머지 5천 명을 이끌고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쳤다. 부차는 그를 추격해서 포위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구천은 모든 재물을 부차에게 바치고, 자신과 아내는 노비가 되겠다고 애원하면서 화친을 청했다. 오나라 재상 오자서(伍子胥)는 월나라를 멸망시켜 화근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부차는 결국 구천의 화친을 받아들였다.
구천은 자기 나라로 돌아오자, 일부러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혔다. 즉 쓸개를 옆에 놓고, 앉으나 누울 때나 쓸개를 핥았으며, 음식을 먹을 때도 쓸개를 핥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회계산의 치욕(會稽之恥)을 잊었는가?」
결국 20 년쯤 흐른 뒤, 구천은 오나라를 격파했으며, 오나라 왕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패배의 치욕을 일컫는회계지치(會稽之恥)라는 말도 이 고사에서 나왔다.
<용머리와 뱀 꼬리>.처음 시작할 땐 화려하고 거창하나 끝으로 갈수록 보잘 것 없어진다는 뜻. 출전은 「벽암록(碧岩錄)」.
龍;용 용 頭;머리 두 蛇;뱀 사 尾;꼬리 미
「벽암록」은 송나라 때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가 선사들의 선문답을 모아놓은책이다. 이 책은 선문제일서(禪門第一書)라고 불려지며, 선 수행자에겐 가장 중요한 교과서 같은 책이었다. 용두사미는 이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느 날 목주 화상에게 한 승려가 찾아왔다. 목주가 그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그 승려는 꽥하고 일할(一喝)을 했다. 목주가 말했다.
「허허, 노승이 그대에게 일할을 당하고 말았군.」
이 말이 끝나자마자, 그 승려는 다시 꽥하고 일할을 했다. 목주가 그를 살펴보니 아직 수행이 설익은 것 같아서 이렇게 말했다.
「비슷하긴 하지만 정확치가 않아. 용머리에 뱀 꼬리군(龍頭蛇尾). 자네가 세 번, 네 번씩 할을 한 다음에는 어찌하겠는가?」
승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목주 화상이 그 승려를 후려치면서 말했다.
「에라, 이 멍텅구리야.」
<우공이 산을 옮기다>.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이는 목표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뜻. 출전은 《열자》 「탕문(湯問)」편.
愚;어리석을 우 公;귀인 공 移;옮길 이 山;뫼 산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은 기주의 남쪽과 하양 북쪽에 위치한 산이다. 그런데 북산의 우공이라는 90세 먹은 노인은 늘 이 두 산을 마주 대하고 살았는데, 두 산이 길을 막아 출입할 때마다 돌아다니기가 번거로웠다.
어느 날 노인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난 너희들과 힘을 합해 저 산을 깎아서 남쪽으로 길을 트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족들 전부가 찬성했지만, 아내만이 반대를 했다.
「당신 힘으로 태행산이나 왕옥산 같은 큰 산을 어떻게 없애요? 게다가 파낸 흙이나 돌은 어디다 버립니까?」
다른 가족들이 말했다.
「발해나 북쪽 지방에 갖다버리죠.」
그리하여 우공은 아들과 손자와 함께 돌과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 땅에다 갖다버렸다. 한번 갖다 오는데 꼬빡 1년이 걸렸다. 그들이 하는 짓을 본 어떤 사람이 웃으며 말렸다.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늙은 나이에 산의 흙과 돌을 어쩌겠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공은 태연히 말했다.
「당신은 너무나 소견이 좁소.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에겐 손자가 있으며, 손자도 또 어린애를 낳고, 그 어린애가 다시 아이를 낳아 대대로 이어질 것이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올 것이오.」
나중에 우공의 진심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역신(力神)의 두 아들에게 두 산을 업어다 옮기도록 명령했다. 그래서 태행산은 삭주 동쪽으로, 왕옥산은 옹주 남쪽으로 옮겨졌으며, 원래 있던 곳에서는 사라졌다고 한다.
<원앙의 서약>. 금슬이 아주 좋은 부부 사이를 <원앙지계>라 한다. 출전은 《수신기(搜神記)》.
鴛;원앙 원 鴦;원앙 앙 之;어조사 지 契;서약 계, 맺을 계
전국 시대 때 송나라의 강왕(康王)은 폭군이었다. 그는 신하 한빙(韓憑)의 아내 하씨(何氏)가 절세미인인 것을 보고 애첩으로 삼아버렸다. 한빙이 자기 처사에 원한을 품자, 왕은 화가 나서 그를 변경 수비를 하면서 성을 쌓는 형벌에 처했다. 절망에 빠진 한빙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하씨도 강왕과 함께 성벽에 올라갔을 때 몸을 던졌다. 곁에 있던 신하가 황급히 옷소매를 잡았지만, 옷소매만 남고 하씨는 떨어져 죽었다. 하씨의 띠에는 유언이 남아 있었는데, 남편과 함께 묻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화가 난 강왕은 두 사람의 무덤을 마주보게 해놓고 말했다.
「죽어서도 서로 사랑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두 무덤을 하나로 해보시지.」
며칠 뒤, 두 무덤 끝에서 가래나무가 솟아나, 서로 줄기가 가까워지고 뿌리와 가지가 엉켰다. 또 나무 위에서는 원앙새 한 쌍이 늘 서로 목을 휘감고 슬프게 울었다.
송나라 사람들은 두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한 쌍의 원앙은 한빙 부부가 새로 태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애타게 사모하는 <상사(相思)>라는 말도 이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책을 맨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짐. 책을 몇 십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나머지 그 책을 맨 끈이 끊어져버렸다는 뜻으로서 독서를 열심히 하는 걸 말한다. 출전은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
韋; 가죽 위 編; 엮을 편 三; 석 삼 絶; 끊을 절
공자는 만년에 이르러 현실 정치에서 물러난 뒤에는 《역경》을 애독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역경》의 뜻을 설명한 십익(十翼)을 저술하게 되었는데,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늘이 나에게 몇 년의 수명을 더 주어서 역(易)의 이치를 배울 수 있다면, 역의 도리를 더 분명히 깨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역경》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배우길 좋아하는(好學) 공자의 면모와 진리 탐구의 진지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69.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이 굳센 것을 제압할 수 있다
<부드러움이 굳센 것을 제압할 수 있다.> 한 방울의 물이 굳센 바위를 뚫을 수 있듯이, 가녀린 뿌리가 딱딱한 돌을 파고들듯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는 뜻. 병서인 《삼략(三略)》이 출전인데, 이 같은 사상은 특히 《노자》 에 많이 나온다.
柔;부드러울 유 能;능할 능 制;다스릴 제 剛;굳셀 강
전략의 승패를 예언적으로 서술한 병법서 《삼략(三略)》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 《군참(軍讖)》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부드러움이 굳센 것을 제압할 수 있고, 약함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 부드러움이란 덕(德)이요, 굳셈이란 도적이다. 약함이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며, 강함이란 사람의 공격을 받는 것이다.」
*
또 《노자》 78장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천하에서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는 물 이상 가는 것이 없다. 더구나 굳세고 강한 것을 꺾는 데는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 어느 것도 물의 본성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기는 것을 천하가 모를 리 없건마는 실천을 하지 못하는구나.」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극복한다는 이유제강 (以柔制剛), 이유극강 (以柔克剛)이란 말도 같은 뜻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 원래는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글이나 말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마음을 통해 전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요즘은 일상생활에서도 말없이 서로 통할 때는 <이심전심>이란 말을 흔하게 사용한다. 예를 들면 <나와 그녀는 이심전심으로 잘 통해. 서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알지>하는 식이다.
以;써 이 心;마음 심 傳;전할 전
출전은 《전등록》, 《오등회원》.
어느 날 석가모니불은 영산(靈山)에서 대중들에게 불교의 진리를 설하고 계셨다. 석가모니불은 연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대중들에게 보이셨다. 아무도 그 뜻을 몰라 잠자코 있었는데, 오직 가섭 존자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석가모니불은 가섭 존자를 인정하시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 올바른 진리를 갖추고 있음)과 열반 묘심(涅槃妙心 열반 상태의 미묘한 마음)과 실상무상(實相無相 변화하는 생멸의 세계를 떠난 진리)과 미묘법문(微妙法門 진리로 가는 미묘한 길)이 있는데, 문자를 통해 표현치 않고 교리 밖에 별도로 전하는 것이다. 내 이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이처럼석가모니불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인 데(華示衆) 대해 가섭이 미소(微笑)로 답하자, 부처와 가섭 간에 마음이 서로 통하였는데, 이를 <이심전심>이라고 한다. <염화시중의 미소> 또는 <염화미소>도 이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 중에서 용.> 용은 동물 중에서 가장 신령한 동물로 숭배를 받고 있다. 이처럼 사람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비범한 사람을 가리켜 인중지룡이라고 한다. 출전은 《진서》 「송섬전(宋纖傳)」.
人;사람 인 中;가운데 중 之;어조사 지 龍;용 룡
진나라의 송섬은 원대한 뜻과 지조를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주천(酒泉)의 태수인 마급이 와도 만나길 거부하고 내다보지 않았다. 마급이 탄식하며 말했다.
「명성은 들을 수 있어도 몸은 만나볼 수 없고, 덕은 우러러 볼 수 있어도 형체는 볼 수가 없으니, 선생께서 진정 사람 중의 용(人中之龍)인 줄 알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석벽에다 시를 새겨 놓았다.
<일편단심의 벼랑(丹崖)은 백장의 높이요,
푸르른 지조의 벽(靑壁)은 만 길의 깊이로다.
기이한 나무들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니,
마치 등림(鄧林;초나라 북쪽에 있는 숲)과 같구나.
그 인물됨도 마치 옥과 같아서
진정 이 나라의 보배로구나.
방은 가까우나 사람은 멀리 있으니,
정말로 내 마음을 괴롭히누나.>
이 시에서 나오는 단애청벽(丹崖靑壁)은 비범하고 고결한 인품을 가진, 한 번 뵙기도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 쓰는 말이다.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기는 것.> 동작 하나하나를 통틀어서 말할 때 <일거수일투족>이라 한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국민의 관심사가 된다>, <저 용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 등으로 쓰인다. 당시 과거를 치르는 서생들은 미리 글을 지어 시험관에게 보내서 자기 실력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자기소개서>라고 하겠다. 한유의 이 편지글도 시험관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一;한 일 擧;들 거 手;손 수 投;던질 투 足;발 족
나는 큰 바다에 사는 괴물로서, 강이나 작은 바다에 사는 고기나 조개 따위와는 다르다. 하지만 하늘로 오르려면 물이 있어야 하며, 물이 없으면 필경 말라죽어 남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좋은 물에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 당신으로서는 그저 <손 한번 들고 발 한 번 옮기는 (一擧手一投足)> 수고에 불과하지 않은가?
위 내용에서 보듯이일거수일투족 은 원래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기는>수고를 뜻하는 것으로,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말했다. 이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하나하나의 동작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물 하나로 남김없이 소탕하다.> 요즘도 범죄자들이나 부정을 저지른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면서일망타진이라는 말을 쓴다. 출전은 《십팔사략》.
一;한 일 網;그물 망 打;두드릴 타 盡;다할 진
송나라 인종(仁宗)은 인재를 등용하고 학술을 장려하여 내치에 힘썼다. 당시의 명신 중에는 범중엄, 구양수, 사마광, 주돈이, 장횡거, 정이천, 정명도 등 후세에 알려진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당시 인종의 정치를 <경력(慶曆)의 치(治)>라고 하여 당 태종의 <정관(貞觀)의 치>와 함께 칭송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대신들의 주장이 난무하여 통제가 잘 되질 않았다. 급기야 대신들은 서로 당파를 지어 붕당 정치를 일삼았다. 사람들은 이를 <경력의 당의(黨議)>라고 불렀다.
개혁 세력인 두연(杜衍)이 등용됐을 때의 일이다. 당시 관습 중에 황제가 대신들과 상의치 않고 마음대로 조서를 내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내강(內降)>이라 했다.
하지만 두연은 이 관습이 올바른 정치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내강이 내려오면 깔고 앉았다가 10여장이 모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돌려보냈다. 두연의 이 같은 행동은 황제의 성지(聖旨)를 왜곡하는 것이라 하여, 조정 내외의 비난을 샀다.
마침내 두연은 뜻밖의 사건에 연루되면서 궁지를 맞게 되었다. 즉 사위인 소순흠(蘇舜欽)이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초대해 주연을 베푸는데 공금을 유용했다는 것이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두연의 반대파 왕공진(王拱辰)은 즉시 소순흠 일당을 하옥하고 두연을 탄핵했는데, 당시 왕공진은 손뼉을 치고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물 하나로 모조리 소탕하였다(一網打盡).」
두연은 이 사건으로 70여 일 만에 사직을 하게 됐고, 그의 당파도 벼슬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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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해치고(自暴) 자신을 저버리는(自棄) 행위>.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예의를 비난하는 것을 <자포>라 하고, 인의에 입각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을 <자기>라 한다. 출전은 《맹자》 「이루(離婁)」편.
自;스스로 자 暴;사나울 포 棄;버릴 기
맹자가 말했다.
「스스로를 해치는(自暴) 사람과는 함께 대화를 할 수 없다. 스스로를 저버리는(自棄) 사람과는 함께 행동을 할 수 없다. 말로서 예의를 비난하는 것을 <자포>라 하고, 인의에 입각한 실천을 행하지 못하는 것을 <자기>라 한다. 인(仁)은 사람이 사는 편안한 집이요, 의(義)는 사람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살지 않으며, 올바른 길을 버려두고 가지 않으니, 너무도 슬프구나!
그러나 요즘에 와서 <자포자기>는 좌절하거나 실의에 빠졌을 때 자기자신을 아무렇게나 다루는 것을 뜻한다.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것>을 <전전긍긍>이라고 한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전전긍긍한다>고 표현한다. <전전>은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모양, <긍긍>은 몸을 삼가고 조심하는 모양이다. 출전은 《시경》 「소민(小旻)」의 일절.
戰;싸울 전, 두려울 전 兢;조심할 긍
감히 맨손으로는 호랑이를 잡지 못하고
감히 걸어서는 큰 강을 건너지 못하는 법.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이 있다는 건 알지 못하누나.
두려움에 떨며 조심조심해야 할지니,
마치 깊은 연못가에 다다른 듯 하고
얇은 얼음을 밟고 가는 듯이 해야 하리.
이 시는 폭정을 한탄한 시이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는 것을 <포호(暴虎)>라 하고, 걸어서 큰 강을 건너는 것을 <빙하(馮河)>라 한다. 폭정에 대놓고 덤벼들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함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뒤에 재앙이 따르는 걸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폭정 하에서는 항상 두려움 속에서 조심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마치 깊은 연못가에 서있거나(如臨深淵), 얇은 얼음을 건너는 것처럼(如履薄氷).
<끊고 닦고 쪼고 가다>. 원래 학문을 부지런히 닦고 덕을 기르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은 어느 분야에서나 노력과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권할 때 쓰인다. 출전은 《시경》 <위풍>(衛風)의 시 <기오(淇奧)>.
切;끊을 절 磋;닦을 차 琢;쫄 탁 磨;갈 마
저 기수(淇水) 물가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구나.
빛이 나는 군자여,
마치 끊는 듯이 하고 닦는 듯이 하며(切磋),
쪼는 듯이 하고, 가는 듯이 하는구나(琢磨).
물가에 무성한 푸른 대나무처럼 군자는 늘 덕과 학문을 갈고 닦는다는 걸 노래한 시이다. 이 시는 《논어》 「학이」편에도 인용되고 있다. 공자와 자공의 문답인데, 절차탁마 의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 소개한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훌륭하다. 그러나 가난해도 도를 즐기고, 부유해도 예절을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니라.」
「시경에 말하기를, 끊는 듯이 하고, 닦는 듯이 하고, 쪼는 듯이 하고, 가는 듯이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바로 그런 뜻입니까?」
「사(賜;자공의 이름)야, 비로소 너와 시를 논할 만하구나. 지난 것을 일러주니, 앞으로 올 것까지 아는구나.」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고생한 아내.> 조는 술지게미, 강은 쌀겨인데, 모두 거친 음식을 말한다. 출전은 《후한서》 「송홍전(宋弘傳)」.
糟;술지게미 조 糠;쌀겨 강 之;어조사 지 妻;아내 처
후한 광무제 때 벼슬한 송홍은 덕이 높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당시 광무제의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가 미망인이 된 후, 은근히 송홍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공주가 광무제에게 말했다.
「송공의 의연한 풍모와 인품은 다른 신하들이 미칠 바가 못 됩니다.」
광무제는 누이의 속뜻을 알고서 이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광무제라도 대놓고 누이를 아내로 삼아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병풍 뒤에 누이를 미리 앉혀 놓고 송홍을 불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광무제는 지나가는 말로 송홍에게 물었다.
「속담에 <귀한 지위에 오르면 교제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던데, 인지상정이 아니겠소?」
송홍이 대답했다.
「신은 가난할 때의 교제를 잊지 않아야 하고, 거친 음식을 먹으며 함께 고생한 아내(糟糠之妻)는 안방에서 내쫓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송홍이 물러간 뒤, 광무제가 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아침에 법령을 내렸는데 저녁에 고친다.> 법률이나 규칙은 한번 정하면 지속적으로 지켜져야 하는데 너무 자주 뜯어고치면서 이랬다저랬다 할 때 이 말을 쓴다. 출전은 한나라의 문제(文帝) 때 조착(조錯)이 상소한 <논귀속소(論貴粟疏;곡식의 귀중함을 논한 상소문)>.
朝;아침 조 令;명령 령 暮;저물 모 改;고칠 개
「지금 다섯 명의 식구가 있는 농가에서는 부역(賦役)이 과중하기 때문에 부역에 따르는 자가 두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경작의 수확도 백 무(畝)가 고작으로 백 무의 수확은 기껏해야 백 섬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부역에 징발되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쉴 날이 없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를 기르고 병자를 위로하는 등 일이 많습니다. 게다가 홍수나 가뭄의 재해를 당하게 되면 갑자기 조세와 부역을 강요당합니다. 시기를 정하여 세금과 부역을 내지 않으니, 마치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치는(朝令暮改)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논밭과 집을 내놓거나 자식을 팔아 빚을 갚는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淸)나라의 왕념손(王念孫)은 <조령모개>가 아니라 <조령모득(朝令暮得)>,즉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서 저녁에 거두어 들인다>로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맥에 비추어 볼 때 왕념손의 주장이 옳은 것 같지만, 어쨌든 <조령모개> 는 이제는 <법령을 이랬다저랬다 자주 고치는> 뜻으로 관용적으로 쓰이고 있다.
79. 조삼모사(朝三暮四) 아침에 셋, 저녁에 넷
<아침에 셋, 저녁에 넷>.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출전은《열자》「황제(黃帝)」편.
朝;아침 조 三;석 삼 暮;저녁 모 四;넉 사
송(宋)나라에 원숭이를 기르는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다. 원숭이를 사랑하여 매우 많이 기르고 있었다. 그는 원숭이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원숭이도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은 집안 식구의 양식까지 줄여가면서 원숭이들의 욕망을 채워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되었다. 저공은 원숭이들의 양식을 줄이려 했지만, 원숭이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꾸며 말했다.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면 만족하겠니?」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일어나 화를 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면 만족하겠니?」
그러자 모든 원숭이들이 기뻐했다.
《열자》에서는, 뛰어난 지혜를 갖춘 성인이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힘들이지 않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 마치 저공이 어리석은 원숭이를 다루듯이 상대가 눈치 채지 않게 교묘히 다스릴 수 있다는 실례로서 <조삼모사 (朝三暮四)>를 들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교묘한 속임수를 써서 사기 치는 것을 가리킬 때 <조삼모사>를 쓰고 있다.
<술로 만든 연못과 고기로 만든 숲>이란 뜻이다. 상식을 벗어난 호사스런 잔치를 말한다. 옛날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이 여자에 빠져 밤낮없이 향락만 일삼고 정사를 돌보지 않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출전은 《사기》「은본기(殷本紀)」.
酒;술 주 池;못 지 肉;고기 육 林;수풀 림
하(夏)나라의 걸왕은 말희(말嬉)에게 마음을 뺏겨, 그녀를 위해 온갖 보배와 상아로 장식된 궁전을 지었다. 그리고 안에다 별실을 마련해 밤마다 말희와 쾌락을 즐겼으며, 또 말희의 소원대로 3천 명의 미녀를 뽑아 화려한 옷을 입힌 뒤에 춤과 노래를 즐겼다.
이것도 모자라, 걸왕은 궁전 한쪽에 큰 연못을 파고 바닥에 하얀 자갈을 깔은 뒤에 향기로운 술을 부어놓았다. 그리고 연못 주변에는 고기로 산을 쌓고 숲을 만들었다. 왕은 말희와 함께 술연못(酒池)에서 뱃놀이를 하고 고기 숲(肉林)에서 육포를 씹으면서, 삼천 미녀의 춤과 노래를 즐겼다.
이처럼 걸왕의 사치를 극한 생활은 재정파탄과 민심의 이반을 초래하여 하왕조의 멸망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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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 주왕도 술과 여자를 좋아하여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다. 애첩 달기(달己)에 빠져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었다. 달기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진기한 보배를 거둬들이고 온갖 동물들을 궁전에서 길렀다.
또 악사에게 명하여 음탕한 곡조가 담긴 <북리의 춤>과 <미미의 음악>을 만들게 한 뒤, 총애하는 신하나 미녀들을 불러 모아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겨 그 속에서 쫓고 쫓기는 경주를 했다. 그들은 연못에서 술을 퍼마시고, 숲을 이룬 고기를 뜯어먹었다. 이 같은 향연은 120일간 계속된 적도 있어 장야지음(長夜之飮)이란 말까지 생겼다.
백성의 원망과 제후의 반란이 잇따르자, 그는 형벌을 더욱 무겁게 하여 포락(炮烙)의 형벌을 실시했다. 이것은 기름 바른 구리 기둥을 벌겋게 달구어 사람을 건너게 한 뒤,필경에는 불 속에 떨어죽게 하는 형벌이었다. 불에 타죽는 희생자의 모습은 달기의 음욕을 유발했다고 한다.
주왕 역시 주나라 문왕의 혁명으로 최후를 맞이하면서, 은왕조는 종말을 고했다.
<죽마를 함께 타고 놀던 옛 친구.> 어릴 적부터 함께 사귀어 온 절친한 친구를 말한다. <죽마(竹馬)>는 두 개의 대나무에다 적당한 높이의 발판을 만들어 타고 놀 수 있도록 만든 대나무 말이다. 출전은 《후한서(後漢書)》「곽급전(郭伋傳)」
竹;대 죽 馬;말 마 故;옛 고 友;벗 우
후한서 (後漢書) 곽급전(郭伋傳)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저마다 죽마를 타고 길에서 서로 맞이하는 절을 한다.」
이를 보면 서기 전후해서 죽마 놀이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어린 시절부터의 친구라는 뜻을 가진 <죽마고우>는 진(晉)나라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이 제갈정(諸葛정)에게 처음 말한 것이다.
제갈정의 아버지 제갈탄(諸葛誕)은 당시 조정에서 전횡을 일삼던 무제의 아버지 사마소(司馬昭)에게 반기를 들다가 살해당했다. 그리고 제갈정은 오(吳)나라에 인질로 가있다가 오나라가 멸망하자 진나라로 돌아왔다.
진나라는 그를 대사마(大司馬)로 임명했지만 그는 부임하지 않았다. 진나라 황실을 늘 원수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제는 제갈정과 어릴 적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그가 벼슬에 부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에겐 숙모이자 제갈정에겐 누님이 되는 제갈비(諸葛妃)에게 부탁하여 그를 불러오게 했다.
제갈정이 누님을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무제는 그 자리에 나타나 제갈정과 오랜만에 만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주연이 벌어졌을 때 무제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는 예전 죽마를 타고 다니던 좋은 시절이 생각나지 않는가?」
제갈정이 대답했다.
「신(臣)은 <숯을 삼키지도 못하고 몸에 옻칠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다시 폐하를 뵙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제갈정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무제는 그의 마음을 알고서 그와 만나려고 억지로 핍박한 것이 부끄러워 밖으로 나갔다.
여기서 <숯을 먹고 몸에 옻칠을 한다>는 것은 전국시대 때 진나라의 예양(豫讓)이 은인의 원수를 갚으려고 숯을 먹어 목소리를 바꾸고 몸에 옻을 칠해 문둥이로 변장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즉 제갈정이 아직 부모의 원수를 갚지 못한 사실을 말하면서 은근히 무제를 힐책한 것이다.
82. 중과부적(衆寡不敵) 적은 숫자로는 많은 숫자를 대적할 수 없다
<적은 숫자로는 많은 숫자를 대적할 수 없다>는 뜻. 나아가 상대의 실력이 나의 실력보다 뛰어나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때 쓰이는 말이다. 출전은 《맹자》 「양혜왕(梁惠王)」.
衆; 무리 중, 많을 중 寡; 적을 과 不; 아닐 부 敵; 대적할 적, 원수 적
전국 시대 때 맹자는 열국의 왕들에게 왕도(王道)를 역설했는데, 그는 제나라의 선왕(宣王)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천하의 패권을 잡겠다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겠다[緣木求魚]>는 것과 같습니다.」
제선왕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과인의 행동이 그토록 나쁘단 말이오?」
「나쁘다 뿐입니까?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것은 실패해도 해로울 것이 없지만, 임금의 정책이 실패하면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가령 지금 작은 나라인 추(鄒) 나라가 강한 나라인 초나라와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기겠습니까?」
「물론 초 나라가 이기겠죠.」
「그렇다면 <적은 숫자로는 진실로 많은 적들을 이길 수 없고>[衆寡不敵]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를 대적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 천하에는 사방 천리의 땅을 가진 강한 나라가 아홉 개 있는데, 제나라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한나라가 나머지 여덟 나라와 싸워서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것은 결국 추나라가 초나라에게 대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어진 덕으로 다스리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폐하를 우러러 볼 것이며, 그때 천하는 폐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오직 왕도를 따르는 자만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83.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 옳지 못한 것을 위압적으로 강요하여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는 것을 <지록위마>라 한다. 출전은 《사기》 「진시황본기」.
指;손가락 지, 가리킬 지 鹿;사슴 록 爲;할 위 馬;말 마
진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趙高)는 조서를 꾸며 진시황제의 맏아들 부소(扶蘇)에게 죽음을 내리고, 대신 호해(胡亥)를 황제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는 정적인 승상 이사(李斯)마저 죽인 뒤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마침내 조고는 황제까지 물리치면서 모반을 일으킬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정의 대신들이 호해를 따르고 있는지, 자기를 따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슴을 황제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이것은 말입니다.」
황제는 웃으면서 말했다.
「승상은 이상한 말을 하는군. 어째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指鹿爲馬) 것이오?」
이렇게 말하면서 황제는 좌우의 대신들에게 사슴인지 말인지 물어보았다. 어떤 신하는 얼굴을 숙이고 잠자코 있었다. 또 어떤 신하는 말이라고 하면서 조고에게 아첨을 했다. 그러나 사슴이라고 직언하는 자도 있었는데, 조고는 이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누명을 씌워 제거했다.
그 뒤부터 모든 신하들이 조고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84.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 하늘이 높고 맑으며, 말의 식욕도 왕성해져서 살이 찌는 계절, 즉 가을을 말한다. 지금은 좋은 계절로서 가을을 말하지만, 원래의 뜻은 그렇지 않다.출전은 《한서》 「흉노전(匈奴傳)」.
天;하늘 천 高;높을 고 馬;말 마 肥;살찔 비
흉노는 은나라 초부터 위진남북조 시대까지 약 2천 년간 중국을 침공한 사나운 민족이다. 진시황이 쌓은 만리장성은 이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바람같이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고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북쪽의 광대한 초원에서 흉노는 목축과 수렵으로 살아갔는데, 특히 교통수단으로서 말이 중요했다. 말은 봄부터 여름에 걸쳐 대초원에서 풀을 배불리 먹기 때문에 쾌청한 가을철이 오면 살이 투실투실 찐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혹한으로 먹을 것이 없어 말도 마르고 사람도 굶주린다.
그래서 흉노들은 가을에 겨울 양식을 구하러 따뜻한 남쪽으로 쳐들어온다. 좋은 가을 날씨에 살찐 말을 잡아타고, 그들은 해일같이 밀려든다.
《한서》 「흉노전」은 이렇게 말한다.
「흉노는 가을에 온다. 말은 살찌고, 활은 굳세다.」
가을이 오면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은 성채에서 칼을 갈고 화살을 다듬으면서 경비를 강화했다.
결국 <천고마비>의 원래 의미는 쾌청한 가을날 살찐 말을 타고 쳐들어오는 흉노족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이것이 요즘은 <천고마비의 계절>하는 식으로 의미가 바뀐 것이다.
85. 천재일우(千載一遇) 천 년에 한번 만나다
천재일우(千載一遇)
<천 년에 한번 만나다.> 아주 귀중한 만남이나, 그 만남의 기회를 말할 때, 천재일우나<천재일우의 기회>라는 말을 쓴다. 출전은 원굉(袁宏)이 지은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 삼국을 건국한 명신 20명에 대해 찬양하는 시와 서문을 쓴 글이다.
千;일천 천 載;해 재 一;하나 일 遇;만날 우
여전히 백락(伯樂)을 만나지 못했다면
천년이 지나도 천리마는 없으리라.
만 년에 한 번 기회가 오는 것은
인생의 일반적인 법칙이며,
천 년에 한 번 만나는(千載一遇) 것은
현자와 지혜로운 자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그 만남에는 기쁨이 없을 수 없는 것인데,
그 기회를 잃는다면 어찌 개탄치 아니하리오.
백락은 주나라 사람으로 명마를 잘 식별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백락은 뛰어난 인물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임금이며, 천리마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명신이다. 이러한 임금과 신하의 만남은<천 년 만에 오는 기회>라는 것이다.
<철판을 깐 얼굴.> 부끄러움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을 가리킨다. 출전은 《북몽쇄언》.
鐵;쇠 철 面;얼굴 면 皮;가죽 피
왕광원(王光遠)은 과거에 합격할 정도로 학식이 있었지만, 대단한 출세주의자였다. 그는 권세 있는 집에 수시로 출입하면서 온갖 아부를 했다. 남이 보던 말든 대놓고 아첨을 했으며, 상대가 술에 취해 무례를 범해도 웃어 넘겼다.
한번은 술에 취한 상대가 매를 손에 들고 말했다.
「당신을 때려도 좋은가?」
「귀하의 매라면 기꺼이…….」
이렇게 말하면서 왕광원은 등을 내밀었다. 술에 취한 상대방도 정말 매질을 하였다. 그런데도 왕광원은 화를 내지 않고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 주었다. 그 자리에 함께 참석했던 친구가 나중에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정말 수치를 모르는가? 그런 모욕을 당했는데도 가만있다니.
하지만 왕광원은 태연히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것 없지 않은가?」
당시 사람들은 이 왕광원을 평하여 이렇게 말했다.
「왕광원의 얼굴은 두껍기가 열 겹 철판을 깐 것 같다.」
철면피 (鐵面皮)는 바로 이 말에서 나온 것이다.
<맑은 하늘의 벼락>. 요즘 흔히 쓰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과 같은 말이다. 뜻밖의 사태, 급격한 변화, 돌발적인 충격을 뜻한다. 원래는 붓글씨의 필세가 자유분방하고 약동하는 것을 가리킴. 출전은 육유(陸游)가 지은 시 <구월사일계미명기작(九月四日鷄未鳴起作;9월 4일 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서 짓다)>.
靑;푸를 청 天;하늘 천 霹;벼락 벽 靂;벼락 력
방옹(放翁;육유 자신)은 병이 들어 가을을 보내다가
갑자기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먹을 갈았네.
진정 동혈(洞穴) 속에 오랫동안 칩거한 용인 양
푸른 하늘에 벼락을 날리듯(靑天霹靂) 붓을 움직였지.
비록 기이하고 괴상하게 보인다 누가 말해도
이제껏 오래 참고 침묵해온 탓이라고 할 밖에.
혹시라도 이 늙은이가 하루 아침에 죽게 된다면
그때는 천금을 주어도 이 글씨를 얻지 못할 걸.
<푸른빛(靑)은 쪽빛(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청출어람으로 줄인 말이 더 많이 쓰인다. 스승보다 제자가 더 뛰어날 때 쓰는 말이다. 출전은 《순자 (荀子)》 「권학(勸學)」편.
靑;푸를 청 出;나올 출 於;어조사 어 藍;남색 남
군자는 이렇게 말했다.
「배움은 중단해서는 안 된다. 푸른빛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89. 초미지급(焦眉之急) 눈썹이 타는 절박한 상황
<눈썹이 타는 절박한 상황>. 매우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을 <초미의 급한 일>이라고 한다. 출전은 송나라 승려 보제(普齊)가 지은 <오등회원(五燈會元)>
焦;태울 초 眉;눈썹 미 之;어조사 지 急;급할 급
한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절박한 한마디(一句)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불이 눈썹을 태우는 것이다.」
이 문답에서 나오는 절박한 상황은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 의미가 전이되어 지금은 절박하고 중요한 일이나 사건을 말할 때 많이 쓰인다.
90.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산의 돌
<다른 산의 돌>. 다른 산에서 나오는 돌은 보기 흉하고 별로 쓸모도 없지만, 그래도 옥을 가는 데는 소용이 된다는(他山之石 可以攻玉) 말에서 유래했다. 쓸모없게 보이는 것도 쓰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으며, 또 남의 잘못된 행실도 자기 수양의 거울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출전은 시경 (詩經) 소아(小雅)에 나오는 학명(鶴鳴;학의 울음)이라는 시.
他;남 타 山;뫼 산 之;어조사 지 石;돌 석
학은 깊은 산 속에서 울어도
그 소리는 온 들녘까지 들리누나.
물고기는 깊은 연못에 잠겨있어도
때로는 물가로 나와 논다네.
동산에는 향기로운 박달나무 있어서
그곳에서 즐겁고 편안케 지내지만,
아래로는 더러운 낙엽이 흩어져있네.
다른 산(他山)에 있는 조악한 돌이라도
옥을 가는 숫돌로는 쓸 수 있으리.
학은 깊은 산 속에서 울어도
그 소리는 하늘까지 울려퍼지네.
물고기는 물가에 나와 있어도
때로는 연못 속에 잠겨있다네.
동산에는 향기로운 박달나무 있어서
그곳에서 즐겁고 편안케 지내지만
아래에는 형편없는 닥나무라네.
다른 산(他山)에 있는 조악한 돌이라도
옥을 가는 숫돌로는 쓸 수 있으리.
이 시에 나오는 학이나 물고기는 숨어있는 현자를 비유한 것이며, 동산을 노래한 세 구절은 현명한 임금 밑에도 소인(小人)이 있을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구절은 숨어있는 현자를 불러들일 것을다른 산에 있는 조악한 돌 (他山之石)조차 숫돌로 쓸 수 있다는 비유로 암시한 것이다. 이 의미가 확대되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일지라도 자기 수양의 거울로 삼을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도 삶아진다.>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는 쓸모 있었지만 일단 목표를 이룬 뒤에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버려진다는 뜻. 남에게 이용만 당하고 아무 소득도 없을 때 쓰이는 말이다. 출전은 《사기》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
兎;토끼 토 死;죽을 사 狗;개 구 烹;삶을 팽
항우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이긴 유방은 제위에 올라 한나라 고조(高祖)가 되었다. 그는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한신을 초왕(楚王)에 봉했다.
그런데 한신 휘하에는 명장 종리매(鍾離昧)가 있었는데, 그는 원래 항우의 장수였다. 과거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종리매로 인해 숱한 고초를 겪은 유방은 그를 미워해서 한신에게 체포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한신은 옛 친구를 차마 체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숨겨주었다.
이 사실을 안 어떤 사람이 <한신에겐 모반의 징조가 보인다>고 상소했다. 유방이 이 일을 진평과 상의하자, 진평은 이렇게 말했다.
「초군은 정예부대며, 한신은 비할 데 없는 명장입니다. 폐하께서 운몽호(雲夢湖)로 행차하셔서 제후들을 초나라 서쪽 경계로 집합하도록 명령하십시오. 한신도 나올 것이니, 그때를 틈타 체포하시죠.」
명령을 받은 한신은 반란을 일으킬 것인지, 아니면 유방을 배알할 것인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신 하나가 한신에게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베서 갖고 가신다면, 폐하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게만 하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신은 그럴듯한 생각이 들어 종리매에게 이야기했다. 종리매가 말했다.
「유방이 초나라를 공격치 못하는 건 내가 있기 때문일세. 자네가 나를 죽여 유방의 환심을 사려 한다면, 자네도 얼마 안가 화를 볼 걸세. 내가 자네를 잘못 보았어. 내 기꺼이 죽어주지! 자네 같은 사람은 남의 위에 설 그릇이 못 되네.」
이렇게 한신을 꾸짖고는 종리매는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한신은 그의 목을 갖고 유방을 뵈었으나, 과연 모반자로 체포되고 말았다. 한신은 비분강개하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민첩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도 삶아지고(狡兎死走狗烹),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도 사장되며, 적국이 무너지면 지혜 있는 신하도 망하게 마련이다>라고 하던데, 과연 그 말이 맞구나. 천하가 이미 평정됐으니, 나 역시 사냥개처럼 삶아지는구나.」
한신은 낙양으로 압송됐지만, 유방은 나중에 그를 용서해 회음후로 좌천시켰다.
92. 파경(破鏡) 깨진 거울
흔히 부부가 이혼할 때 파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깨진 거울>이란 뜻을 갖는 이 말은 원래 깨진 거울을 다시 합쳐 완전해짐을 의미하는파경중원 (破鏡重圓)에서 나온 말이다. 파경중원은 헤어져 있던 부부가 다시 만나 합치는 것을 말한다. 출전은 《태평광기》.
破;깰 파 鏡;거울 경
남조(南朝)의 신하인 서덕언(徐德言)의 아내 낙창공주(樂昌公主)는 미모와 글솜씨가 뛰어난 여인이었다. 그러나 남조는 수나라 대군의 공격으로 멸망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예로부터 멸망한 나라들의 여자들은 적국의 권력자에게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서덕언은 수나라 대군이 임박했을 때 아내를 불러 말했다.
「당신의 미모와 재주를 보아하니 나라가 멸망하면 반드시 적의 손에 넘어갈 것이오. 살아 생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나,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때를 위해…….>
그리고 서덕언은 옆에 있던 거울을 두 조각으로 깨Em려 한쪽을 아내에게 주었다.
「이 거울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정월 보름날 시장에 내다파시오. 내가 살아 남는다면 반드시 그 거울을 찾을 것이오.」
결국 남조는 수나라에게 멸망하고, 낙창공주는 수나라의 일등공신 양소(楊素)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녀는 타고난 아름다움과 재주로 이내 양소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결코 남편이 주었던 거울을 잊지는 않았다.
한편 서덕언은 거지 노릇을 하면서 1년이 지나서야 장안에 도착했다. 약속한대로 정월 보름날 시장에 가보니 소리를 지르면서 반쪽 거울을 파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러나 한 푼 가치도 없는 반쪽 거울을 누가 사겠는가?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지나갔다. 서덕언은 이내 그 거울을 사겠다고 한 후, 그 사나이를 자기가 머무는 곳에 데려가 거울에 얽힌 내력을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자기의 거울을 꺼내 맞춰보니 두 조각이 딱 들어맞았다. 서덕언은 거울 한쪽 편에 시 한수를 써서 그 사나이에게 돌려보냈다.
거울과 사람 모두 가버리더니
거울은 돌아왔는데 사람은 오지 않네.
더 이상 항아(姮娥)의 그림자 보이지 않는데
밝은 달빛만 무심히 비추누나.
사나이가 건네 준 거울을 본 낙창공주는 그 뒤부터 먹지도 않고 울기만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소는 두 사람의 애정에 감동해, 즉시 서덕언을 불러 낙창공주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 흔히 전쟁이나 운동 경기에서 상대의 진영을 거침없는 기세로 쳐들어갈 때 <파죽지세>라고 한다. 출전은 진서 「두예전(杜預傳)」.
破;깰 파 竹;대나무 죽 之;어조사 지 勢;세력 세
삼국시대가 끝나고 진나라와 오나라가 대치할 때다. 진나라의 장군 양고(羊고)는 남쪽 오나라를 정벌할 것을 여러 차례 상소했지만, 북쪽 흉노의 남하를 걱정한 조정 대신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뒤 양고는 죽으면서 두예(杜預)를 무제에게 천거했다. 두예는 양고처럼 오나라 정벌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장군이 된 두예는 먼저 오나라의 명장 장정(張政)의 군대를 격파한 뒤, 두 번에 걸쳐 남벌할 것을 상소했다. 결국 무제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벌을 결행했다. 두예의 군대가 오나라의 형주를 점령한 뒤, 장군들의 작전회의가 열렸을 때 한 사람이 말했다.
「지금 단번에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소. 더욱이 지금은 봄철이라 비가 많이 내리고 병에 걸리기도 쉬우니, 일단 작전을 중지하고 겨울까지 기다립시다.」
두예가 대답했다.
「옛날 악의(樂毅)는 단 한 번의 싸움으로 강대한 제나라를 합병했소. 지금 우리 군대의 위세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破竹之勢)과 같소. 몇 마디만 쪼개고나면 나머진 다 칼날만 닿아도 쪼개질 것이니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을 것이오.」
결국 두예의 말대로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가자 오나라 군대는 싸움도 하지 않고 항복해왔으며, 다음 해 3월 진나라는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다. 훗날 작전 중지를 요청한 장군은 두예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과했다고 한다.
한단지몽(邯鄲之夢)황량일취몽(黃粱一炊夢)
<한단 지방에서 꾼 꿈>. 인생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말하는 꿈이다. <일장춘’(一場春夢)>과 같은 뜻. 출전은 《침중기(枕中記)》.
邯;땅이름 한 鄲;땅이름 단 之;어조사 지 夢;꿈 몽
당나라 현종 때, 도사 여옹(呂翁)은 한단 지방의 주막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낡은 옷차림을 한 노생(盧生)이라는 청년도 쉬고 있었다.노생은 자신의 허름한 옷차림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가난에 찌들리는 이 꼴이 무엇입니까?」
여옹이 말했다.
「즐겁게 얘기하다가, 갑자기 가난을 탓하다니 어찌된 일인가?」
「저는 그저 목숨만 붙어있을 따름이라 조금도 즐겁지 않습니다.」
「그런 어떻게 해야 즐겁겠는가?」
노생은 출세를 해서 부귀영화를 누려야 사는 보람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생은 점점 잠이 오는 걸 느꼈다. 여옹이 자루 속에서 베개를 꺼내 노생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걸 베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테니.」
그 베개를 베고 잠이 든 노생은 꿈을 꾸었다.
어느 부호의 집에 도착한 그는 그 집 딸에게 장가를 들었다. 그후 출세의 운도 틔어, 정사를 잘 다스리고 훌륭한 무공도 세워서 중요한 직책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는 청렴하고 덕망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모함을 받아 일시 좌천되었다가 3년 뒤 다시 조정으로 올라가 천자를 보필하는 명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또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모함을 받아 잡혀가게 되었다. 노생은 울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내 집은 본래 산동 땅이요. 좋은 밭 몇 마지기가 있어 추위와 굶주림은 면할 수 있었소. 어째서 벼슬을 하려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료. 차라리 다시 낡은 옷을 입고 푸른 망아지를 타고 한단의 길을 가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게 되었구려.」
이렇게 말하면서 칼을 뽑아 자살하려고 했지만, 아내가 말려 죽지 못했다. 같이 잡힌 사람은 모두 사형당했지만, 그는 변방으로 좌천되었다가 몇 년 뒤 무죄가 판명되어 다시 재상이 되었다. 그후 50년 동안, 노생은 다섯 명의 아들과 열 명의 손자, 그리고 미녀들 틈에서 극진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았다. 마지막 임종시에는 황제가 보낸 명의의 보살핌 속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노생이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옹이 있었고, 잠들기 전 밥을 짓고 있던 집주인은 여전히 밥을 짓고 있었다. 모든 게 전과 다름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 모든 게 꿈이었든가?」
여옹이 웃으며 말했다.
「인생 만사가 다 그런 거라네.」
노생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윽고 감사를 드리면서 말했다.
「영화와 치욕, 부귀와 빈곤, 삶과 죽음을 다 겪어 보았습니다.이는 선생께서 제 욕망을 막아주신 것입니다. 다시 가르침을 받지 않더라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노생은 여옹에게 두 번 절하고 떠나갔다.
이 꿈이 한단 지방에서 꾸었기 때문에 <한단지몽>이라고 하고, 밥을 한 번 짓는 동안 꾸었다고 해서 <황량일취몽(黃粱一炊夢)>이라고도 한다.
95. 형설지공(瑩雪之功) 반딧불과 눈의 공덕
<반딧불과 눈의 공덕>.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시험을 합격했을 때, 형설의 공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동진(東晉)의 차윤(車胤)과 손강(孫康)의 고사에서 나왔다. 출전은 「몽구(蒙求)」.
瑩;반딧불 형 雪;눈 설 之;어조사 지 功;공훈 공
손강은 집안이 가난하여 등잔불을 밝힐 기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눈(雪)에 반사된 빛으로 책을 읽었다. 젊어서부터 청렴하고 지조가 있어 조잡하게 놀지를 않았으며, 벼슬이 어사대부까지 이르렀다.
진나라의 차윤은 항상 공손하고 부지런했다. 박학다식하고 견문이 넓었지만, 집안이 가난해 기름 살 돈이 없었다. 여름 날 밤이면, 얇은 비단 주머니에다 반딧불(瑩) 수십 마리를 잡아넣어 그 빛으로 책을 읽었다. 나중에 벼슬이 이부상서에 이르렀다.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형설이라고 한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가장하다>. 소인배들이 권력을 등에 지고 멋대로 구는 것을 말한다. 우리 말에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노릇 한다>고 하는데,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말이다. 출전은《전국책(戰國策)》.
狐;여우 호 假;빌릴 가 虎;호랑이 호 威;위세 위
전국시대 때, 초나라 선왕(宣王)이 대신들에게 물었다.
「짐은 북쪽에 있는 나라들이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소해율은 초나라의 재상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위나라에서 강을(江乙)이라는 사람이 초나라에 유세하러 왔는데, 그는 소해율 때문에 선왕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북쪽 나라들이 무엇 때문에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원래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습니다. 어느 날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는데, 그때 여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 잡아먹어선 안 된다. 천제(天帝)께선 날 백수의 왕으로 정하셨다. 만약 날 먹으면, 그건 천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잠깐 내 뒤를 따라오라. 모든 짐승이 날 보고 도망치는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보기 바란다.>
호랑이는 그럴듯한 생각이 들어 여우를 따라 갔습니다. 짐승들은 이들을 보자마자 모두 도망쳤습니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보고 도망치는 건 모르고, 여우를 보고 도망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 왕의 영토는 사방 5천리요 병력은 백만인데, 이걸 소해휼 한사람에게 맡겨두고 계십니다. 그래서 북쪽 나라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인즉 왕의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마치 짐승들이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랑이가 노려보듯이 본다.> 호랑이가 사냥감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것처럼 방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출전은 《역경》.
虎;호랑이 호 視;볼 시 眈;노려볼 탐
《역경》 이괘(頤卦)의 효사(爻辭)에 나온다.
「거꾸로 길러져도 길하다. 호랑이가 노려보듯(虎視眈眈) 주의하면서 욕망을 쫓는다면 잘못이 없으리라.」
천자를 보좌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지위에 있지만, 아랫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때 호랑이가 노려보듯 방심하지 않고 위엄을 갖춰 정중하게 대한다면, 아랫사람도 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고 싶은 욕망을 쫓아간다면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어서 허물이 없을 것이다.
<나비의 꿈>. 장자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데서 유래했다. 자연과 나의 구별을 잊고 자연과 하나된 만물일체의 경지를 뜻한다. 또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출전은《장자》 「제물론(齊物論)편」.
胡;오랑캐 호 蝶;나비 접 之;어조사 지 夢;꿈 몽
장자는 <천지는 나와 함께 태어나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일체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만물이 한 몸임을 주장하는만물제동 (萬物齊同)의 사상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대립적인 것, 이를테면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가난과 부귀, 귀함과 천함, 참과 거짓 등은 만물일체의 경지에서 보면 무차별이라고 말한다. 이를 우화로 나타낸 것이 <호접지몽>이다.
옛날에 장주(莊周;장자의 이름)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기분 내키는 대로 날아다니면서도 자신이 장주인 줄은 몰랐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깨보니 변함없는 장주였다. 도대체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건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꾼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현상에선 구분되고 있으니, 이를 소위 <사물의 변화>라고 일컫는 것이다.」
<용 그림에 눈동자를 찍다>. 사물의 가장 핵심적인 곳을 나타낼 때, 또는 어떤 일의 마지막 끝마무리를 할 때 <화룡점정>이란 말을 쓴다. 반대로 <화룡점정이 결핍되어 있다>고 할 때는 전체적인 꼴은 갖추었지만, 가장 핵심되는 알맹이를 빼먹었다는 뜻이다. 출전은 《수형기(水衡記)》.
畵;그림 화 龍;용 용 點;점찍을 점 睛;눈동자 정
남북조 시대, 양(梁)나라의 장승요(張僧繇)는 신의 경지에 이른 그림 솜씨로 유명했다.
어느 날 그는 금릉(金陵)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의 주지로부터 용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사방의 벽면에 용을 그렸는데, 그 비상할 듯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단 하나 이상한 점은 용에 눈동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벽을 뚫고 날아오를 것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갑자기 우fp가 치고 번개가 번쩍이면서, 용은 벽을 걷어차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제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벽을 쳐다보니, 한 마리는 그곳에 없고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100. 환골탈태(換骨奪胎) 뼈를 바꾸고 태를 탈바꿈하다
<뼈를 바꾸고 태를 탈바꿈하다>. 원래는 도교에서 연단(煉丹)을 통해 신선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후에 황정견(黃庭堅)이 옛사람의 시구를 본뜨는 것을 <환골(換骨)>, 그 시의 어구를 고쳐서 표현한 것을 <탈태>라 한데서 유래했다. 또 통상 용모나 차림새가 몰라보게 좋아졌을 때환골탈태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출전은 《냉제야화(冷齊夜話)》.
換;바꿀 환 骨;뼈 골 奪;빼앗을 탈 胎;태 태
황정견이 말했다.
「시의 뜻은 다함이 없으나, 사람의 재능은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능으로 다함이 없는 뜻을 좇는 것은 도연명이나 두보라도 전부 터득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의 뜻을 바꾸지 않고 말을 만드는 것을 환골법(換骨法)이라 하고, 그 뜻을 모범으로 삼아 시구를 고쳐 표현하는 것을 탈태법(奪胎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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