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세계

[스크랩] 한옥... 담장

최흔용 2009. 7. 10. 12:21

담장

 

낙선재의 담장

 ▲ 지붕과 굴뚝을 함께 보아야 제멋이 나는 낙선재 꽃담

 

 ▲낙선재 상량정과 꽃담

 

꽃담은 낙선재 행각을 두르고 언덕을 쉬엄쉬엄 타고 올라 상량정 동산에서 멎는다. 지붕을 뚫고 솟아 있는 몇 개의 굴뚝은 꽃담과 썩 잘 어울린다. 바깥 담의 꽃담이라 품위가 있으면서 절도 있게 보이기 위해 밑 부분은 사고석을 고르게 쌓고, 그 위에 다른 무늬 없이 석쇠무늬(귀갑무늬)로 장식했다.

 꽃담은 건물의 벽을 이루는 벽체와 담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낙선재 누마루 밑의 벽체는 눈여겨볼 만하다. 직선과 점선의 무늬도 아니고 육각형이 연이어 있는 석쇠무늬도 아니다. 직선으로 구획하여 사각형, 마름모꼴 등의 무늬를 넣어 기하학적 추상화를 보는 듯 현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꽃담은 문과 어울릴 때 멋이 더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혹은 후원으로 통하는 샛담에는 일각문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문이 딸려 있다. 낙선재에서 석복헌으로, 석복헌에서 수강재로 넘어가는 곳에도 있고 후원 샛담에도 있다.

이 중에 여성들의 전용 통로였을 법한 좁고 후미진 공간에 있는 석복헌 일각문은 한 쪽 담에 포도무늬와 매화나무를 장식해 놓아 눈길을 끈다. 매화는 지조와 절개를, 포도는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인들이 거주하는 건물 뒤쪽에 주로 그려 넣었는데 경복궁 자경전 담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포도나무는 세 송이의 포도를 매달고 있는데 포도송이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한정당과 상량정을 넘나드는 일각문을 가운데 두고 양쪽 무늬를 달리하여 변화를 준 꽃담

왼쪽은 사고석을 높게 쌓고 그 위에 전돌로 점선무늬를 놓았고 오른쪽엔 담 높이의 반은 사고석으로 쌓고 그 위의 반은 다시 세로로 반을 나누어 왼쪽엔 석쇠무늬를, 오른쪽에는 점선무늬를 표현하여 단조로움을 피했다.

 

▲ 만월문과 꽃담

꽃담과 문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 상량정에서 승화루로 통하는 만월문이다. 승화루 쪽 담장 무늬가 더욱 화려하여 볼만하나 만월문이 굳게 닫혀 상량정 쪽에서만 볼 수 있다. 문지방은 화강석으로 쌓고 원은 전돌로 둥글게 쌓았다. 둥그런 문 옆으로 지형의 높낮이에 맞춰 2층의 장대석을 쌓고 그 위에 3층의 사고석을 쌓은 뒤 전돌로 점선무늬를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깔끔한 멋이 난다.

 

▲ 무늬가 끝없이 이어지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꽃담

 낙선재 꽃담의 하이라이트는 상량정이 있는 동산과 낙선재 후원을 구분하는 긴 꽃담이다. 이 담이 담고 있는 표정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직선과 곡선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무늬가 끝없이 이어져 끝도 시작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의미를 담고 있다.

후원의 꽃담과 굴뚝 

꽃담은 화계와 굴뚝과 어울려 더욱 운치를 낸다. 낙선재 후원에는 동산의 지세에 따라 화강암을 곱게 다듬어 몇 단의 화계를 쌓고 화계 위에 굴뚝을 세워 놓았다. 우리는 구들이라는 독특한 난방문화를 가지고 있어 한옥에 굴뚝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구조인데, 굴뚝을 보기 싫다고 하여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 놓아 굴뚝을 하나의 장식물로 여겼다.

굴뚝을 만들더라도 주위 환경, 예를 들어 꽃담의 빛깔과 그 무늬를 고려하여 만든다. 굴뚝은 잘 알려진 대로 경복궁의 아미산의 굴뚝과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을 최고라 치는데 그 색깔은 모두 붉은 황토색을 띠고 있어 화려하게 보인다. 이는 꽃담의 전체적인 색깔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는다.

낙선재의 굴뚝은 꽃담과 같이 전체적으로 잿빛을 띠고 있는데 빛깔과 무늬가 조화를 이룬다. 경복궁의 꽃담과 굴뚝처럼 붉은 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낙선재가 단청을 하지 않은 이유와 같은지 모르겠다.

 

 

1.한국인의 심성이 배인 꽃담

담에 새겨진 자연의 이야기들


여염집이나 궁궐 등 집의 벽체나 담에 형상과 부조 등의 다양한 모양과 무늬를 넣은 꽃담은 한국인의 구수한 심성이 배어 있다. 이런 꽃담에는 자연 속에 사는 마음과 담이 있으므로 해서 생겨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꽃담에 숨겨진 이야기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벽체나 담장에 여러 가지 무늬로 치레를 하였다. 치레하는 것을 ‘무늬놓는다’라고 하며, 무늬를 놓아 장식한 벽면을 통털어 꽃담이라 한다. 우리말로는 꽃담이라 하나 한자어를 차용해 화담, 화초담, 화문담이라 하며, 혹은 무늬담, 그림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메산골 이름 모를 농부가 토담에 꾹꾹 박은 기왓조각의 투박한 솜씨에서 경복궁 대조전 뒤뜰 굴뚝에 전돌로 쌓은 십장생의 꽃담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꽃담은 화려하지만 야하지 않은 우아한 멋을 풍긴다.


언제부터 꽃담을 만들어 그 아름다움을 즐겼는지는 모르지만 <삼국사기> 권 33 ‘옥사’에 ‘진골 계급은 담장을 꾸미지 못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에 꽃담의 역사가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담장이나 벽체에 무늬를 그려 넣기 시작했을까? 담이란 것은 부지의 경계가 정해진 구역에 연속적으로 설치된 가설물로, 통행을 금지하고 도난을 방지하며,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다. 담은 집을 감싸는 역할이 중요한 만큼 점점 튼튼하고 강하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담이 실해지면서 반대로 부드럽고 아름답게 꾸미려는 모습이 보이는데, 해와달, 별을 무늬 놓아 꾸미기도 하고 학, 거
북, 불로초와 같은 십장생을 수놓기도 했다.

이는 대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또한 담이 생기면서 생긴 복잡하고 미묘한 많은 사연들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타인을 철저히 배제하고 접근 금지라는 표정으로 차갑게 서 있는 도심지의 콘크리트 담들 속에서 옛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서로의 이야기를 담았던 꽃담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2.자연의 이야기가 담긴 꽃담

꽃담의 장식에 깃든 자연의 지혜


자연 속에 사는 마음과 인간의 많은 이야기가 담긴 꽃담에는 또한 자연에 대처하고 순응하는 지혜가 깃들어 있다. 악을 멀리 하고 복을 받기 위해 점선과 직선, 면을 응용하여 다양한 무늬를 수놓았으며 흙, 돌, 기와를 이용해 돌각담, 토담, 화문장 등의 담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자연의 시험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어 자연의 이치와 신의 섭리에 대처하고 순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귀신을 쫓아 재난을 막는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다. 꽃담의 무늬는 감상하기 위한 치장이나 장식일 뿐 아니라 이런 맥락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꽃담의 무늬는 점선, 직선, 면을 기본으로 이들을 이용한 다양한 변형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륵사(神勒寺) 구광루(九光樓)의 합각은 회색 삼화토 바탕에 기왓조각을 띄엄띄엄 넣고 그 아랫면을 알맞은 돌들로 구성하여 자연스레 일정 간격을 만드는 점선 무늬로 되어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점선 무늬의 백미는 일월성신(日月星晨)의 무늬이다. 이는 기와로 무늬를 형성하면서 화강석 세 개를 둥글게 다듬어 해, 달, 별을 표현하는 것인데 이로 구성한 예는 조선조 태조의 능에서 찾을 수 있다.

전을 맞이음 하여 화장줄눈을 쓰지 않고 곧은 선을 만든 직선 무늬는 윤곽을 두르거나 강조할 때 쓰인다. 직선무늬는 단순히 일직선으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모서리에서 매듭을 짓듯 꾸미기도 한다.

직선과 면으로 구성된 석쇠 무늬(거북등 무늬)는 그물을 엮은 모양이라 하여 악귀가 이 그물에 걸려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 중앙에 꽃무늬를 넣은 것은 벽사(?邪)한 후 다시 꽃처럼 행운이 가득 하라는 길상(吉祥)의 의미이다.

역시 운기(運氣) 무늬도 직선과 면으로 구성된 것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조화를 담고 있다.
?, ?, ?, ?의 구성 원칙에 따라 7×7 즉, 49칸 속에 3,5 조합으로 조립하면 저절로 卍자 무늬가 드러난다. 이는 천지 조화의 이치를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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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경전의 꽃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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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전 꽃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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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전 꽃담 외부

 


 

 

 

 

 

 

 

 

 

꽃담은 쌓는 재료에 따라 그 구조와 치장이 달라지는데, 제주도 민가나 남한산성에서 볼 수 있는 돌각담은 바닥에 굵은 돌을 놓고 위로 가면서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은 담장이다. 돌과 돌 사이에 흙을 메기거나 줄눈을 치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중간쯤 수키와 두 개를 맞대서 둥글게 만들어 간격을 두고 계속해 나가면 일월성신(日月星晨) 무늬의 담장이 되기도 한다.

토담은 흙덩어리를 빚어 쌓아올리거나 거푸집을 만들어 흙을 채워 다지고 그 위에 다시 거푸집을 만든 다음 흙을 채워 단계적으로 완성해 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눈박이한다’고 하여 돌을 쌓거나 깨진 기와를 넣어 기와의 곡선을 이용한 파상선(波狀線)을 만들기도 하며 간단한 식물의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돌의 크고 작은 데서 오는 차이를 이용하거나 이어져 있는 면적의 차이로 무늬를 넣은 것은 토석담이다.
토석담은 돌과 진흙, 혹은 백토 등과 엇바꾸어 쌓아올려 키를 맞추기도 하고 기왓조각을 넣어 변화를 주기도 한다.

서울 일반 살림집의 안마당 한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문장은 소나무나 십장생 무늬를 넣어 생동감을 준다. 그림담이라고도 불리는데, 돌을 쌓은 부분 위쪽에 사벽질(再砂壁)을 해서 담장의 표면을 평평하게 하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좁은 안마당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생동감과 활력을 주어 아낙네들
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주기적으로 또는 돌연히 쉼없이 변화하는 속에서 오랜 경험과 지혜를 응용한 우리 꽃담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벽사진경(?邪進境)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살아숨쉬는 대자연의 일부로 현대의 그것과는 다른 멋으로 고고히 서 있다.

 

담장

 

  담 대신에 풀이나 나무 등을 얽어서 집을 둘러막거나 경계를 가르는 것을 ‘울(울타리)’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옷과 같은 낱말겨레에 드는 분화어로, ‘위(上)’의 뜻을 의미소로 하는 형태이다. 짐승을 가두기 위하여 둘러막은 공간을 ‘우리’라고도 한다. ‘소 우리, 돼지 우리, 염소 우리’가 바로 그러한 이름들이다.

‘울/우리’는 한정된 공간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운명 지워진 공간과 시간에서 살고 있다. 너와 나를 함께 뭉뚱그린 복수의 개념으로서의 ‘우리’ 또한 소 우리의 ‘우리’와 같은 말에서 발달하여 다른 뜻으로 갈라져 나간 형태라고 하겠다. 물론 우리말의 인칭대명사에 나와 너를 합한 호칭이 없어 이른바 보충법에 따른 공간을 가리키는 ‘우리’가 인칭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특정한 공간을 바탕으로 하여 특정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합쳐서 그냥 ‘우리’라고 했으니, 마치 당호(堂號)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나 같다고 하겠다.(우리말의 상상력 237쪽,정호완,정신세계사)

 

  한마디로 담장은 너와 나를 혹은 우리를 구분 짓고자 만든 울타리로 꽤나 폐쇄적인 우리의 가족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아진다.

담장의 기원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사회의 구성원이 분화되고 사유재산이 생겨남으로써 차츰 만들어져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 옥사조(屋舍條)의 기록을 보면 그 당시 이미 담장이 원래의 기능을 넘어서서 장식적으로 꽤나 발전이 되어 최상지배층인 성골을 제외하고 신분의 차등에 따라 규제를 달리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진골은 회랑(回廊)을 돌릴 수 없으며 담장에 석회를 바르지 못하게 하였고, 그 아래 계층들은 담장의 높이까지도 각각 규제를 받았었다.

이후 고려 때도 한층 성행을 하였고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초창기 세종 때 서울에 큰 화재가 발생한 후로 화재예방을 위한 화방담(火防墻)이 한때 장안에서 유행을 하기도 하였다.

 

 

담장의 유형은 우선 사용된 재료를 기준으로 보면

 

 대나무,싸리나무,억새 등으로 만든 바자울,

 탱자나무나 사철나무 같은 생나무로 된 생울타리,

 

 흙을 사용한 토담,

 

 돌만 사용한 돌각담(강담),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한 토석담,

 

 기와만 사용한 와편담

 

 기와와 흙 등으로 한껏 맵시를 부린 와편토담

 

 전돌을 쓴 전돌담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으며

 

 돌과 기와 등으로 두 가지 이상을 혼용하여 조성하기도 하였다.

 

다음 형태적인 구분으로는

 

 돌각담 중 사고석(四塊石:장정 혼자 네 덩이 정도를 들 수 있는 돌)으로 쌓은 사고석담,

 

 전돌로 여러 가지 상징문양을 새겨놓은 꽃담(花墻), 영롱장(玲瓏墻) 등이 있다.

 

또 방법적인 특징으로 사고석이나 전돌에 우리의 전통적인 면회법(面灰法)이라 하여 서양식과는 반대로 줄눈을 도드라지게 하여 그 줄눈으로 상징이나 글씨를 새겨 넣기도 하였다.

그리고 만드는 기법으로 보자면 홑담(편축)과 맞담(협축)이 있는데,

홑담은 돌을 담 벽면의 한쪽만 쌓고 반대쪽은 다르게 하는 것으로 건물의 화방벽 같은 식이며

 맞담은 돌을 양쪽으로 쌓아올린 것으로 대개의 돌담이 이러하다.

 

 

한국전통 담의 조형성

 

Ⅰ. 서론  

우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의 우리 민족의 생활 양식과 정서를 통하여 표현된 특유의 전통 건축을 가지고 있다.

서양의 건축이 건물만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우리의 생활은 마당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고, 마당과 함께 담(墻)은 건축의

일부가 되며 또한 주변 자연 환경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담(墻)이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을 구획하여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 주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담(墻)은 그러한 기능을 넘어 건축물과의 조화를 생각하며 자연과 신의 섭리에 대처하고 순응하는 선인(先人)의 뜻과 사상을 담아

축조하였음을 알 수있다.

따라서 한국 전통 담(墻)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 특징과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자 담(墻)이 갖는 의미와 발생 및 축조 방법에 관하여 조사하고

조형의식에 영향을 주는 지형적 특징과 사회적, 공간적인 지각경험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주택, 궁궐, 사찰 등의 담(墻)을 중심으로 그 조형성을

연구한다.


Ⅱ. 한국의 담(墻)에 관한 고찰  

1. 담(墻)의 의미와 발생

담(墻)은 건물 대지의 경계 또는 시설물의 주위에 둘러막은 낮은 구축물로 한자로는 ‘墻’이라 쓴다.

이 墻은 ‘牆’의 속자(俗字)이고 이는 ‘牆’이라고도 쓴다.

여기서 牆은 대한건축학사전에 의하면 ‘둘러쌓을 장’이고 ‘墉’은 ‘담, 용’으로 ‘垣也’라하였으니 ‘垣’과 같은 뜻이다.

또 ‘垣’은 ‘낮은담, 원’ 으로 ‘卑墻’의 뜻으로 이는 곧 ‘寮’가 ‘에워쌓은 담, 요’로 풀이 되어 ‘周垣’이라 한 것을 생각할 때 이상 네가지 墻, 墉, 垣, 寮는 모두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공간을 둘러막는 의미와 침입자를 방어(防禦)하는 기능과 함께 시각적인 차폐의 기능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담(墻)의 발생은 수렵시대부터 농경 사회로 들어와 한 곳에 정착하면서 농사를 지어 곡물을 비축하면서 짐승이나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구축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생긴 것이 바로 방어적 성격의 담(墻)이다.

인간이 안식과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할 외적인 수단의 필요성에서 창고와 담(墻)을 만들었던 것이다.

한국의 담(墻) 건축은 문헌상에 나타난 것으로는 중국 문헌인 삼국지위서 동이변진조(三國志魏書東夷辨辰條)에 ‘역유성곽(亦有城郭)’이라 하였다.

이는 담(墻)의 확대물인 성곽의 존재는 곧 담(墻)의 존재를 암시해 주는 것이다.

또 이보다 후인 5세기경 고구려 고분 평남용강안성동대총(平南龍岡安城洞大塚)의 전실남벽루각도(前室南壁樓閣圖)(그림1)에는 조선시대 건축물이나 담(墻)과

다를 바 없는 누각 건축과 담(墻) 건축이 나타나 있다.

이 벽화의 하단 중앙부에는 누각으로 보이는 높은 우진각 지붕의 건물이 있고 그 뒤로 우측에도 두 채의 우진각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이들 건물의 좌우로 맞배지붕을 한 건축물이 보이고 이것은 누각 뒤에 있는 것으로 담(墻)으로 해석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주택 규모를 언급하는 중 ‘원장불시양동(垣檣不施梁棟)’에서 양동(梁棟)은 ‘들보, 양’, ‘들보, 동’으로서 ‘도리’와 ‘들보’를 말한다.

조선시대 궁궐 담장에서 사고석으로 쌓은 후 그 위에 기와로 지붕 마루와 지붕골을 형성, 기와와 지붕을 만든 후 그 처마 밑에 등근 서까래 모양 둥근 보를 수평으로

보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둥근 보가 곧 ‘梁棟’으로 해석되며, 이는 뚜렷이 담(墻)의 존재를 입증하여 주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담(墻) 건축은 더욱 발달하여, 의장적으로도 많은 진보를 보았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장가장(張家檣)이라는 기록이 고려사에 기록된 것을 보아 장대한 규모를 알 수 있으며, 바깥 담(墻)에 화초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고려 말기에 조선시대의 화문담(花文墻) 양식이 건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문헌이나 벽화에 의한 담(墻)의 존재는 제외하고, 현존하는 담으로써 고찰 가능한 것은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이르러서이다.


2. 담(墻)의 분류

담(墻)의 구조는 사용 재료를 어떻게 축조 하였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리 나타난다.

재료들은 각각의 성질에 따라 활용되며 그 특성에 따라 고유한 양상을 나타낸다.

 

담(墻)의 축조 방법에 따라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1)생울(生垣)산간 지방이나 농촌의 주택에서 널리 사용하는 담(墻)으로 살아있는 나무를 (垈地)의 경계선을 따라 심어 그 자체가 하나의 울타리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가시나무, 개나리, 탱자나무 등이 심어지며 주변의 자연 요소와 잘 어우러진다.(그림2)

(2)울타리(籬)보통 ‘울’이라는 것으로 인류의 원시적 주거는 울타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주로 나뭇가지로 만들었으며, 울(籬)은 이락(籬落), 파리(巴籬, 藩籬),

바자울(芭子籬) 등으로 불린다.

이는 나뭇가지, 싸리가지, 수수깡 등을 짜서 만드는 농가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것중의 하나이며 엮는 방법을 달리하여 변화를 준다.

(3)죽책(竹柵)농촌 주택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 담의 형태이며, 대나무로 엮어 만든 울타리를 말한다.

(4)목책(木柵)통나무를 땅에 박아 만든 것으로 농촌 주택에 쓰이며, 방어 시설로서 담(墻)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쓰여졌다. 그 성격은 일반 농가의 담이라기 보다

성곽의 성격이 더욱 뚜렷한 것이다.

(5)판장(板檣)나무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여기에 가로로 인방(引枋)을 보낸 후 널판을 대서 만든 것이다. 이 판장은 과히 아름답지 못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

(6)돌담(石墻)

막돌 허튼층 쌓기 : 지방의 일반 농가에서 널리 이용되며 대부분의 경우 이 돌담의 상부에 초가지붕 혹은 기와 지붕을 설치하여 몸체의 지붕과 조화되도록 한다.(그림3)

다듬은돌 바른층 쌓기 : 사고석(四塊石)을 석회줄눈으로 층을 맞추어 쌓는다.

이 돌담의 상부에는 일반적으로 기와 지붕을 한다.

이는 담(墻)을 이용하는 건축이 궁궐건축, 관아건축, 상류주택 등 높은 수준의 건축이기 때문이다. (그림4)는 사고석 바른층 쌓기로 건축한 관아건축으로 석회와 흙으로 줄을

맞추어 쌓아 나갔다.

(7)토담(土檣)일반 농가에서 널리 사용되는 담(墻)으로 흙과 지푸라기, 석회들을 쌓거나 아니면 여기에 돌을 넣어 쌓기도 하며 이 담(墻)의 상부도 초가지붕 또는 기와지붕을 설치하며,

역시 몸체의 지붕과 같은 재료로 처리한다.

(그림5)는 토담으로 담의 기와 지붕이 주위의 기와 지붕과 어울린다.

(8)벽돌담( 檣)검은 벽돌로 쌓아 만든 담은 중, 상류 주택, 궁궐 등에서, 붉은 벽돌로 쌓은 담은 주로 궁궐건축에서 널리 이용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상부에 기와지붕을 얹었다.(그림6)

(9)복합형돌과 벽돌을 혼용하여 만든 담으로 대체로 아래 부분은 돌로, 윗 부분은 벽돌로 쌓으며, 상부에는 기와 지붕을 한다.(그림7)

[ 그림1 - 안성 동대총 전실 남벽 서부 ]

[ 그림2 - 생울 ]

[ 그림3 - 돌담:구례 화엄사 ]

[ 그림4 - 돌담:종묘 ]

[ 그림5 - 토담:하회 유씨종가 사당 ]

[ 그림6 - 벽돌담 ]

[ 그림7 - 벽돌담 ]

 

Ⅲ. 한국 담(墻)의 조형성  


1. 지형적 영향

우리나라 지형은 대부분 노년기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농촌의 대부분은 뒤로는 산을 업고, 앞으로는 들을보고 있으며 들판 너머에는 다시 산들이 담(墻)을 이루고 있다.

시골 농가의 초가집 지붕의 부드러운 선은 서울의 궁궐 건축에서도, 전통 의상의 선에서도 나타나며 이것은 산과 동산의 능선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주변 환경은 우리 자신을 자연에 친숙하도록 하였으며 자연물을 이용하는데 있어능란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연물을 인격화하여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은 우리의 조형 의식에 있어서 공간을 지각하는데 특정한 사상이나 태도를 갖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기층적 관념 체계를 이루어온 여러 사상중에 풍수지리설은 지형, 지세, 기후,토양 등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그러한 경험들이

하나의 사상으로 정리된 것이다.

지형, 지세, 기후 등에 의하여 형성된 우리 전통 마을의 지형적 특징은 저산성(低山性) 중기복 산지로 어디에서나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이것은 공간 지각에 있어서 하나의 경계로 작용하여 우리의 시선은 그 경계선 밖으로더 이상 진전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이 서 있는 입점에서의 최대한의 지각 공간은 평야 지역이나 해양 문화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공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심리적 긴장감은 원형 공간의 규모가 클수록 커지는 것에 반하여 우리의 원형 공간은 긴장을 느끼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적정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영향은 우리 의식에 안정되고 조화로운 균형감을 제공해 주었다.

이것은 산과 동산으로 이어지는 공간 안에서 이웃은 한 가족으로 지내왔으며 담 안쪽의 공간은 서양의 실내공간과 같은 개념으로, 담은 실내 공간과 실외 공간을 구획짓는 벽의

역할에 가깝다.


2. 사회적 영향

한국의 전통적인 담(墻)은 그 건축주의 사회적 신분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사회적 신분에 따라 그 의장,구조가 달라진다.

즉 서민을 중심으로는 돌담이나 울과 같은 극히 자연적인 형태의 담(墻)을 구성하나, 중, 상류주택에서는 사괴석담(四槐石墻), 벽돌담, 화문담(化紋墻) 등 극히 의장적인 담(墻)을

형성한다.

또 동일한 담이라도 담장에 설치한 지붕구조에 있어 차이가 난다.

즉 초가지붕은 서민 계급에 널리 쓰이고 기와지붕은 중, 상류주택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궁궐 건축의 담은 기와지붕 밑에 둥근 보를 설치함으로써 권위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담(墻)의 높이 역시 신분 계급의 표현적 요소가 되고 있다.

민 주택에서 담(墻)은 대지 안과 대지 밖을 구분하는 단순한 경계물로서의 성격이 짙은 반면, 중, 상류주택의 담(墻)은 대지의 경계는 물론 외부에 대하여 극히 방어적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3. 공간적 특징

3.1. 공간의 분활

우리의 주거 공간에서 행랑채의 담(墻)은 행랑 마당을 위한 것이고 사랑 마당과 안마당 사이의 담(墻)은 이 두 공간이 남녀구별에 의한 공간 분화를 이루도록 한다.

즉 대지 주위를 둘러서 담(墻)을 쌓고 일단 외부 공간과 다른 성격의 공간을 형성한 후 다시 그 속에서 공담(空墻)을 쌓아 그 두 공간을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창덕궁의 연경당에서 처럼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쌓은 공담(空墻)(그림8)은 사랑마당과 안마당이라는 두 공간을 형성지어 주며, 남성적 공간이 되고 후자는 여성적 공간이 됨으로써,

강한 공간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사당(祠堂)의 담(墻)은 제사 공간과 일반 주거 공간의 구별을 이루어 주며 이 공간이 같은 주택 내에서 특히 신성한 공간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담(墻)은 크고 작은 공간으로 분화시켜, 공간마다 특유한 공간 정서를 이루게 한다.

이것은 사찰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 이르게 되기까지 담(墻)과 문에 의해 크고 작은 공간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분화된 공간과 변화하는 공간을 담(墻)은 동일한 재료의 반복과 구조를 통하여 공간들의 통일감을 가져다준다.


3.2. 공간의 침투성

담(墻)은 공간과 공간이 분할된 채 독립성을 유지시키지 않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음으로 우리의 자연주의 사상에 보다 접근하고 있다.

담(墻)에 살창이나 교창을 설치하여 이 마당이 이루는 공간과 저 마당이 이루는 공간이 서로 관입되게 한다.

월성 독락당(그림9)에서 처럼 담(墻)에 살창을 뚫어서 대청에 앉아 살창으로 앞 냇물을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인공공간이 자연 공간에로의 침투를 의미한다.

또 안국동 윤씨가의 담(檣)에 설치된 교창은 이 마당과 저 마당을 상호 관입시키므로 하나의 유기적인 공간이 형성된다.

조선시대의 담(墻)은 적극적 공간(Positive Space)과 소극적 공간(Negative Space)의 교차 반복으로 구성되게 하며, 안채는 적극적인 공간으로서 주위에 소극적인 공간을

갖게 되나 일단 담(墻)을 둘러 쌓음으로 보다 큰 적극적인 공간이 되고 또 그 주위를 소극적 공간이 둘러 쌓게 된다.

결국 적극적인 공간과 소극적인 공간의 교차 반복은 쉽게 이루어진다

(그림10).

이와 같이 한국 전통담(檣)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침투하여 그 범위를 넓혀가며 인공적인 공간에서 자연적인 공간으로 확대되어 간다.


3.3. 공간의 위계성

담(墻)은 인공적 공간인 건축 공간이 자연 공간으로 확대되게 한다. 구릉지에 건축된 담(墻)은 낮으막하고, 또 담(墻) 안의 대지가 담(墻) 밖의 대지보다 높음으로써 외부에서는

담(墻)안이 보이지 않으나 담(墻) 안에서는 쉽게 자연 공간을 감상하고 동화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담에 의해 담안의 공간이 담 밖까지 연장된다.

외부 공간 마저도 내부 공간으로 끌어 들여 인간은 자연 속에 한 부분임을 드러내며, 또한 우리의 지형을 능란하게 이용한 선인들의 지혜가 용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11)은 낙선재 후정담으로서 멀리 있는 숲을 담장 안으로 끌어들이며 지형을 이용한 공간의 위계성을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담(墻)은 율동적인 몸새를 하고 있다. 경사면을 따라 나란하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단을지으며 내려와 미를 일으킨다. 이것은 담(墻)이 갖는 지루함을 깨뜨리고

우리 지형을 이해한 역동적 조형이라 할 수 있다.


3.4. 의장적 특징현존하는 담

(檣)을 살펴보면 그 의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서민의 담장에서도 기와 깨진 조각이나 여러 형상의 돌로 치장했으며 궁궐이나 상류층의 고급스럽게 쌓아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담은 단순히 대지의 경계 혹은 방어를 목적으로 쌓아 올려 지지 않았으며 마당은 실내 공간과 같은 역할을 하며, 담은 벽에 해당하여 늘 바라보는 자연의 일부였기 때문에

벽에 대한 치장을 통하여 높은 우리의 조형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각 담(檣)의 의장적 특징을 분류하여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막돌의 반복막생긴 돌 그 자체를 아무런 가공없이 쌓아 그 자체를 시각적 요소로 하여 획일적으로 반복시킨 것으로, 막돌의 크기로 변화를 주게 된다.

이때 층을 맞추어 쌓는 바른층 쌓기와 층을 맞추지 않는 허튼층 쌓기(그림3)가 있다.

(2)사고석의 반복동일 크기의 사고석을 반복시키기 때문에 그 어느 담(墻)보다 강한 통일성을 가진다. 이는 정사각형 돌들을 막힌 줄눈으로 바른층 쌓기 하는 것으로 궁궐과

중, 상류주택에서 널리 쓰였다.

때로는 토대(土臺) 부분에 사고석 대신 다듬은 돌(長臺石)을 쌓고(그림4), 그 위에 사고석을 쌓아 변화를 기도 한다.

(3)벽돌의 반복동일 크기의 벽돌을 획일적으로 쌓는 방법이다(그림6).

강한 통일성은 있으나 변화는 없다. 따라서 때로 무늬를 맞추어 벽돌을 일부 十자형으로 빼냄으로써 변화를 얻는다.

이 수법은 영롱담(玲瓏檣)이라고 불리우며 상류 주택에서 채택되고 있다.(그림12)

(4)돌과 기와편의 반복중력이 크게 작용하는 담(墻) 아래 부분에는 돌로, 윗 부분에는 흙 한 켜, 기와 한 켜를 세우거나 눕혀서 흙을 섞어 쌓는 방법으로 재질과 크기의 변화로

지방의 주택이나 사찰의 담(墻)에 많이 쓰인다.

독특한 조형성을 가진 해인사의 토석담에 사용된 기와는 깨진 것을 이용하여 이미 사용 되었던 폐품을 적절히 이용하여 아름다운 담장을 만들어낸 흥미있는 담이다.(그림13)

(5)돌과 짚의 반복지푸라기나 새끼줄을 잘라 돌과 함께 쌓는 방법이다.

크기나 재질의 변화로 흥미를 일으킨다. 지방의 주택에 많이 쓰인다.

(6)벽돌, 돌, 둥근 돌의 반복아래 부분을 사고석으로 윗부분을 벽돌로 쌓고 벽돌 중간 중간에 둥근 돌(원형으로 가공한 돌)을 끼워 놓는 방법이다.

재질의 변화와 둥근 돌의 배치가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보통 궁궐 건축의 담(墻)에 이 양식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낙산사의 담은 황토와 벽돌로 켜를 이어 쌓아 올리는 사이에 둥근 돌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의미로 우주의 운행이 그 안에 있고 행복이 다가 오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그림14)

(7)화초담(花草檣), 화문담(花紋檣)상류주택, 궁궐건축, 관아건축 등의 담(墻)에서는 돌, 벽돌, 기와편 등으로 쌓으면서 여러 문채를 구성 장식한다.

이런 장식적인 담(墻)을 화초담(花草檣), 화문담(花紋檣)이라 하며 이것을 통틀어 꽃담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용되는 무늬에는 다음과 같이 여러 종류가 있다.

① 문자무늬(文字紋)

길상문자(吉祥文字)인 수복(壽福), 강령(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만수(萬壽), 쌍희(囍) 등을 벽돌로 무늬를 놓아 쌓는 것이다.

이때 무늬는 대개 벽돌로 구성하거나 때로는 석회줄눈으로 띄를 두룬 후 그 뒤에 청색이나 적색으로 칠을 하게된다.

(그림15)는 해남 대흥사의 외담으로 강가에 흔히 있는 돌을 크기에 따라 쌓아 올리고 기와로 직선의 구획을 한 뒤, 부(富)자를 새긴 길상무늬 담(檣)이다.

② 동물무늬(動物紋)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하는 사슴이나 길조(吉鳥)로 생각하는 학 같은 조류들을 무늬로 하여 장식한다. (그림16)은 경복궁 자경전 동쪽 전축문의 한 부분으로 봉황새 부조 도판이다.

③ 식물문(植物紋)

국화, 매화, 난초와 같은 꽃이나 대나무, 소나무, 석류나무 등을 무늬로 삼는 경우로서 화초담(花草檣)이라 부르게 되는데 꼭 식물문 만이 아니고 동물 무늬를 섞어서 구성 하여도

화초담(花草檣)이라 부른다.

화초담에 나타나는 식물은 동물 무늬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기원을 담고 있다.

매화는 여인의 정절에 비견 되기도 하며, 포도 무늬나,석류문은 다산(多産) 을 의미한다.

또,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는 선비의 굳은 절개를 나타낸다.(그림 17)

④ 기하문(幾何紋)

기하학적 모양으로 육각형의 귀갑문(龜甲文), 완자문, 아자문(亞字文), 영롱문 등과 같은 기하학적인 문채(文彩)로 장식한다.

(그림18)은 낙선재 담(樂善齋檣)으로 완자문과 구갑문의 복합구성과 고저(高低)차에 대한 처리가 뛰어나다.

⑤ 십장생문(十長生紋)

동물과 식물 무늬를 혼합한 것으로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고 생각하는 열가지를 문채화(文彩化)한 것으로 해, 산, 물, 돌, 구름, 솔, 학, 불로초, 거북, 사슴들이 바로 십장생물

(十長生物)로 이를 담(墻)에 장식한 것이다.

이미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십장생 무늬의 역사는 상당한 듯 하다.

[ 그림8 - 창덕궁 연경당 ]

[ 그림9 - 월성 독락당 ]

[ 그림10 - 창덕궁 연경당의 담 ]

[ 그림11 - 낙선재 후정담 ]

[ 그림12 - 영롱담 ]

[ 그림13 - 해인사 토석담 ]

[ 그림14 - 낙산사의 담 ]

[ 그림15 - 해남 대흥사 외담 ]

[ 그림16 - 봉황새 무늬 ]

[ 그림17 - 대나무 무늬 ]

[ 그림18 - 기하문 ]

 

Ⅳ. 결 론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을 중요시하여 자연과 친숙하기를 즐겼고, 자연에 동화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한 생각은 담의 축조에 있어서도 지형에 순응하며 축조 되었으며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우리의 전통 담은 주 건축물의 몸체와 같은 계통의 재료로 통일감을 갖고 있으며, 외부 환경의 여러 구성 요소를 둘러 쌓음으로써 하나의 통일된 공간 속에 융합시켜 준다.

이러한 조선시대 담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한국 전통 담의 조형적 특징을 규정 지을 수 있다.

첫째, 한국 전통 담은 지형적인 영향을 깊이 받고 그러한 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였으며, 신의 섭리에 대처하고 순응하는 사상이나 태도를 갖게 하였다.

이것은 조형적으로 주변의 지형적 환경에 동일한 실루엣을 갖는다.

둘째, 담은 그 시대의 신분 계급을 담의 높이 또 그 의장적 특징을 통하여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일반 서민의 담이 대지의 경계를 구획하는 시설물이라면 상류 주택이나 궁궐에서는 방어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셋째, 담은 공간을 분할하고 분할된 공간은 담에 설치된 교창이나 살창 등을 통하여 관입된다.

담 안쪽의 공간은 담을 통하여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지니며 인공 공간을 자연 공간으로 확대시킨다.

넷째, 담은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기원을 담아 형이상학적 조형을 담장에 표출하였다.

문자를 통하여 만수무강을 기원하였으며 삼라만상을 담장에 새겨넣고, 절개와 다산을 기원하는 무늬를 새겨 넣었는데, 이것은 담장에 아름다운 의장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우리는 높은 조형미를 갖고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전통 담장을 가지고 있다.

전통이란 민족생활 양식이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쳐 형성된 정신을 통하여 형식의 표현, 조형성 및 기법토대로 계승 발전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으로 시련을 겪는 역사 속에서도 주변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특한 조형성을 오늘날까지 이어온 우리의 전통 담을 오늘날 서구화된 생활 양식과

조화되는 독창적방법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출처 : 산바라기
글쓴이 : 산바라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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