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굴뚝은 아궁이에 불을 때고 구들밑의 연도를 통해 나오는 연기나 그을음 등을 배출하고 연소에 필요한 공기를 공급하는 기능을 하는 구조물을 말한다.
[구당서]에 "고구려백성들은 움집에 구들이 설비되어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 시대 이래로 아궁이와 구들과 굴뚝 등의 난방 장치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굴뚝은 지체와 신분 사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구들을 만드는 재료는 전돌, 기와파편, 돌과 흙, 옹기, 산간지방에서는 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경우도 있다.
굴뚝의 모양도 담벼락에 붙여 쌓은 일반적인 형태에서 양반집이나 궁궐처럼 후원의 한 장식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서민 가옥의 굴뚝으로 옹기를 이어붙여서 만든 굴뚝
양반 사대부가의 전돌로 쌓은 규모있게 모양새 있는 굴뚝
양반사대부가의 후원의 장식 기능까지 한 규모있는 굴뚝
양반사대부가의 전돌로 쌓은 굴뚝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뒷뜰에 아미산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정원
모두 4단으로 기기묘묘한 화초와 석조물과 괴석들을 둔곳 하지만 이곳 아미산에서 제일 볼거리는 굴뚝 처음의 것은 4각의 붉은 벽돌로 굴뚝을 아무 장식없이 만들어 놓았는데 굴뚝의 기와지붕 부분이 담장의 기와지붕과 연결되어 있는듯
▲ 경복궁 아미산 굴뚝. 화려함 측면에서 세계 제일의 굴뚝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꽃담의 경우라면 경복궁 아미산 굴뚝과 자경전 십장생 굴뚝처럼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멋이 나도록 만든다. 흔히 굴뚝의 백미로 손꼽히는 이 굴뚝들은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하나의 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나의 정원 조각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라도 우리 조상은
그 실용성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멋을 부릴 줄 알았다.
사고석담과 어울리는 굴뚝은 절제미가 돋보이는 회색 벽돌굴뚝이다. 예로부터 벽돌로 만들어진 굴뚝은 식복(食福)이 좋다 하여 단단한 살림살이를 뜻하기도 한다. 궁궐의 경우 화려한 색보다는 회색벽돌을 사용하여 세련되게 만든다.
화강암을 곱게 다듬어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회색벽돌을 일정 높이 만큼 쌓아 올린 후 주황색 벽돌을 쌓아 경계를 만들고 다시 회색 벽돌을 쌓아 올려 멋을 낸다. 면 가운데에는 네모난 테를 두르고 중심에 길상문자나 장생류, 꽃 등을 새겨 넣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듯 공을 들인다. 토석담이라도 조선시대 상류집은 본채와 떨어진 곳에 온갖 장식을 다한 벽돌굴뚝을 세우기도 했다.
아미산의 굴뚝 육각형으로 만들고 각면마다 나무와 꽃들을 조각해 두었군요 ...
그리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곳은 아름답게 기와지붕으로 처리하고 ...
붉은색으로 굴뚝을 만들어 주위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더욱 집중해서 보면 굴뚝인지 벽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자경전 십장생무늬 굴뚝
담의 한쪽부분을 돌출시키고 그곳에 굴뚝을 만들어 놓은것이...
아래위로 성스러운 문양을 조각하고 그사이로 길게 한면을 채우고 십장생을 조각해 둔것이 ...
하지만 굴뚝의 지붕을 기와로 덮고 그위로 다시 연기가 빠지겠금 만든 벌통모양의 환기구가 더더욱 보기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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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전(慈慶殿)은 흔히 말하는 대비전(大妃殿)이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의 2단계 조영(造營) 당시 고종의 양어머니가 되었던 조대비(趙大妃, 神貞皇后)를 위하여 지은 것이다. 그러나 자경전은 건립이후 두 번에 걸친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고종 25년(188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자경(慈慶)’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어머니 혜경궁(惠慶宮)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자경전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의미는 ‘자친(慈親)’으로 임금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안어른께 경사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자경전의 뒷마당의 십장생 굴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로부터 십장생 무늬는 우리민족의 가장 토속적인 무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이 많은 분들을 위로하는 잔치에는 불노장생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십장생이 그려진 병풍을 많이 사용하였다. 흥선대원군도 자기 자식(고종)에게 나라를 넘겨 준 조대비를 위해 그의 침전 뒷마당에 조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성의를 보였던 것이다.
십장생 굴뚝은 보물 제810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굴뚝은 담장 일부분을 장방형으로 구획하여 마당 쪽 앞으로 한 단을 돌출시켜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벽돌을 쌓고, 그 위에 기와지붕과 연가(煙家)를 얹은 형태다.
벽면의 너비는 3.81미터이고 높이는 2.36미터, 두께는 65센티미터 이다.
벽면의 제일 아래 부분에는 좌우에 불가사리 벽사상(?邪像)을 전(塼)으로 만들어 배치하고, 그 위 벽면의 중앙 부분에 가로3.03미터와 세로 88센티미터의 직사각형 공간의 회벽(灰壁)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불노장생을 상징하는 해?구름?산?바위?소나무?대나무?소나무?거북?사슴?학?불노초 등을 제각기 다른 조형전(造型塼)으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특히, 이 회벽에는 십장생 외에 수련의 아름답고 고결한 문양과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포도 문양을 추가해 화면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다시 이 회벽 위로 올라가면 가운데에 나티의 벽사상(?邪像)을 또 두고, 그 좌우에 영지(靈芝)를 입에 문 학(鶴)을 배치하였다.
굴뚝 옆면도 그냥 비워두지 않고 당초문양과 복을 가져다주는 박쥐 문양을 넣었다.
범어사의 굴뚝 -굴뚝도 3층으로 멋스럽게 지어져 있다.
민가의 야외화덕의 작은 굴뚝으로 가마솥으로 굴뚝의 덮개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굴뚝에 대한 단상(斷想)은 그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에 따라 다양하다. 전시용으로 복원한 굴뚝은 어쩐지 메말라 보이고 폐가의 굴뚝은 김용철의 시구(詩句)처럼 '목구멍이 까맣게 말라' 보인다. 눈이 휘날리는 들판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외딴 집 굴뚝은 따뜻해 보이고 이육사의 시에 나오는 '살랑살랑 감자 굽는 내가 솟아나는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은 정겨워 보인다.
▲ 굴뚝에 대한 단상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토속적, 서민적이지만 어딘지 목구멍이 말라 보인다.(일산 밤가시 마을초가)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웬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 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윤동주-굴뚝>
고향에서 돌아오는 길, 하얀 연기가 솟는 토담집 굴뚝을 보면 마음이 아려 온다. 저녁밥을 짓고 있는 허리 굽은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어느새 눈가엔 눈물이 고이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들킬새라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게 된다. 굴뚝에 대한 나의 단상은 애달픔이다.
집안 형편에 따라 굴뚝에서 나는 연기의 때깔도 달라진다.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생나무나 솔방울고지배기 혹은 잔가지를 땔 수밖에 없는 집의 굴뚝에서는 습하고 매캐하며 진한 회색 연기가 솟는다. 잘 마른 장작을 때는, 제법 살만한 집의 굴뚝에서는 건조하고 파아란 연기가 나고 숯을 사용했다는 궁궐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잘사는 집이든 못사는 집이든 모두 굴뚝을 갖추고 있다. 이는 구들이라는 우리의 독특한 주거문화에서 온 것이다. 식생활에서 신분의 높낮이를 떠나 모두 된장, 고추장을 먹는 독특한 장문화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굴뚝은 집의 규모나 생김새에 어울리게 만들어진다. 주로 담장과 조화를 이루는데 토담집 또는 일부 절집의 경우 황토흙에 깨진 기와나 막돌을 찔러 넣어 투박하게 만든다. 초가의 경우 펑퍼짐한 치마를 두르듯 굴뚝 허리에 짚가래를 둘러 초가의 지붕과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 전시용으로 지은 집 굴뚝이라 인위적 냄새가 나지만 토석담과 옹기굴뚝은 무척 잘 어울린다.(용인 민속촌)
울타리 집과 어울리는 굴뚝은 나무판자 네 개로 통을 만들어 세운 나무굴뚝이다. 돌이 많은 지역이라면 돌을 쌓아 굴뚝을 만들기도 한다. 담과 굴뚝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주변에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벽돌로 된 고급 굴뚝 말고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깨진 기와나 황토흙 나무 돌 짚 등을 이용해 만들었고 벽돌굴뚝은 궁궐이나 상류층 집이나 되어야 볼 수 있었다.
▲ 울타리와 잘 어울리는 나무굴뚝(용인 민속촌
▲ 창경궁 굴뚝, 절제미가 돋보인다
굴뚝을 만들 때도 담장 하나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굴뚝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색과 모양, 크기, 치장 등을 달리한다. 아미산 굴뚝은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의 후원이며 여성 전용공간인 아미산에 세워져 있고 자경전 굴뚝은 조대비가 거처하던 자경전 뒤편에 있다.
아미산 굴뚝은 화강암 지대석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았고 육각의 각 면에 구워 만든 무늬판을 박아 넣어 장식하였다. 위에는 목조건축처럼 처마를 만들고 그 위에 기와지붕과 연가를 얹어 놓았다. 화려한 붉은 벽돌을 사용하였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사각형을 버리고 볼륨감과 안정감을 주는 육각형을 택하였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은 네모난 틀 속에 십장생, 다산의 상징인 포도, 연꽃 등을 장식하여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나타내었다.
선비집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리 높지 않게 돌을 쌓아 암팡지게 만들었다. 암팡진 모습은 그 집 주인의 인품을 드러내고 높지 않은 굴뚝은 검소한 생활을 통해 유학적 덕목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 선비집의 굴뚝, 돌로 낮게 암팡지게 만들었다.(예산 김정희 생가
하지만 한옥문화원장 신영훈 선생의 말을 빌리면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는 아궁이에서 시작하여 고래를 타고 개자리(방구들 윗목에 깊이 파 놓은 고랑)에 머물며 티끌과 먼지를 털어 낸 다음 굴뚝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개자리를 통과한 연기는 깨끗하기도 하려니와 방충역할도 해 모기 등 해충을 없애 주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낮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한옥의 한 정취이면서 삶의 지혜로도 볼 수 있다.
만든 이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 나는 굴뚝은 뭐니뭐니 해도 절집의 것이라 할 것이다. 여주 신륵사 적묵당 굴뚝이 대표적인데 시인 묵객이 묵어 가며 자연을 노래했던 집처럼 개성이 강하다. 부서진 기와로 둥글게 쌓아 올리고 위에는 두 눈을 만들기라도 하듯 두 개의 동그란 무늬를 놓았다. 세워 놓은 제비집 같아 보인다.
▲ 여주 신륵사의 적묵당 굴뚝
옹기 굴뚝의 또 다른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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